진짜 나를 믿는다는 것
고민이 있어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날. 친구는 한참 내 말을 듣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넌 할 수 있을 거야. 힘내!”
친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때는 그 말이 힘이 됐고, 나를 믿어주는 친구의 마음이 매우 고마웠으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결과는 친구의 말과 달랐다. 결국 나는 하지 못했고, 실패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는 여전히, “아니야, 널 믿어.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 솔직히 이쯤 되자 친구에게 서운했다. 지금 내 상황은 너무 심각한데 친구는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못난 마음이 들어 ‘그런 번지르르한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지만, 서운한 감정은 한동안 앙금이 되어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 두려워. 걱정돼. 나는 못 할 것 같아.”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털어놓은 하소연이자 진심 아닌 진심. 너무도 쉽게 듣는 일상 속 언어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행동하라고 조언하면 효과가 있을까.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의 내 반응처럼, ‘그걸 내가 몰라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잘 되는 사람들 이야기는 왜 그렇게 기적 같은지. 마치 딴 나라 이야기 같고 현실성도 없다. 분명 누군가는 이룬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는 절대 될 수 없는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덧 나도 예전에 친구에게 느꼈던 서운한 감정을 잊었다. 그래서 지금은 ‘안돼’만 외치는 사람에게 ‘괜찮아’라고 말하고, ‘될까?’ 하며 의심하는 사람에게 ‘될 거야!’라고 말하고, ‘못 하겠어’라며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것이 정신승리라고 눈총받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말로 비난을 받게 만들더라도 말이다.
어느 날 동영상을 보다가 신기한 것을 알게 됐다. 동영상 속 여자는 농구를 해본 적이 없다. 진행자는 여자에게 농구공을 주며 자유투를 해보라고 한다. 물론 공은 링을 통과하지 못한다. 다음에는 여자의 눈을 가리고 자유투를 해보라고 한다.
‘눈을 뜨고도 성공하지 못하는데 눈을 가리고 한다고? 말도 안돼.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이성이라는 녀석이 이것저것 분석하더니 스스로 안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진행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또 하나의 장치를 마련한다. 관객을 동원해 여자가 농구공을 던질 때마다 마치 성공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게 한 것이다.
여자는 눈을 가렸기 때문에 자신이 자유투를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보지 못하고, 귀에 들리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자신이 자유투를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실험. 이번에는 안대를 벗고 자유투 하기. 놀랍게도 10번의 시도 중 4번을 성공한다.
물론 실험에 참여한 여성이 자유투를 하는 동안 약간 놀라운 신체 능력을 발휘해 자유투에 대한 감을 익혔다고 치더라도 그 결과는 놀랍다.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함으로써 실제로 그렇게 되게 만든다니. 동영상의 끝은 이렇게 끝났다. “할 수 있다 믿는 것도 실력이다.”
일을 안 되게 만들고, 못하게 만들고, 현실을 걱정스럽게 혹은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내 능력이 없어서? 진짜 현실이 지옥 같아서?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어떤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영역이지 않은가. 내 능력이 부족했는지, 현실이 도와주지 못했는지 분석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진짜 원인은 무능력과 처참한 현실이 아니라 나를 믿지 못한 나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할 수 있다 생각하고 될 것이라고 믿는 낙관성이, 정말 독이 될까?
낙관성의 근원에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평온한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미 심리적으로 단단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낙관적인 사람은 좋은 면을 최대로 인식한다. 좋은 면이 없으면, 그러니까 문제 상황을 만나면 되는 방법을 찾고 시도한다. 비난거리를 찾는 것이 아닌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는 것이다.
낙관성이 정신승리나 근자감으로 치부되는 이유는 낙관적으로 생.각.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바라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낙관이 아니다.
아까의 실험으로 돌아가서, ‘나는 자유투를 성공할 거야.’라는 생각만 가지고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나를 믿는다고 한들 자유투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노력과 행동이 따른 믿음이 자유투의 성공확률을 높이고, 그런 노력이 작은 실패에도 무너지는 가짜 믿음이 아닌, 태풍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 진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눈을 감고 던지든 그렇지 않든 자유투의 성공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정신승리네, 근자감이네 하며 위로와 용기의 말을 밀어내기 전, 한 번만 생각해보자. 믿는 것도 능력이라면, 그 능력이 없어서 나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능력은 타고날 수도 있지만, 타고 나지 않았더라도 노력해서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나를 믿는 능력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