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가 네게 전해진다면
나에게는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J.
어쩌다 집으로 가는 날이면, 유일한 중학생 때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나는 J가 생각났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을까.
한번 만나러 가볼까.
연락을 해볼까.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어느 것 하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J의 행복을 기도했다.
‘잘 살아, 행복하게.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말고.’
J는 참 안타까운 아이였다. 내게 누군가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자격이 주어진다면, 나는 J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을 것이다.
J는 아들 둘을 끔찍이 여기는 부모의 밑에서 자랐다. 자신보다 동생이었지만, 아들이라는 이유로 밥을 먼저 먹고, 좋은 옷을 사고, 두둑이 용돈을 받고, 좋은 침대에서 잘 때 J는 모든 면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여자였으니까. 딸이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언니의 딸이었으니까.
J는 이모 부부의 손에 자랐다. J의 엄마는 지적 장애인이었고, 아빠는 J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J는 자신을 키워줄 능력이 없는 친엄마와 자신을 차별하는 또 다른 엄마의 손에서 자랐다.
생각하기만 해도, 옆에서 지켜보았을 때 J의 환경은 나만큼이나 가여웠다. 어쩌면 나는 J와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되는 힘든 일을 겪으며 자라야 하는 운명. 그 가혹한 운명에 욕 한 바가지 퍼붓고 싶어지는 현실 속에 사는 J를 동정했고, 한편으로는 그런 J를 보며 힘을 냈다.
그렇지만 J는 밝은 아이였다. 잘 웃고, 활발하고, 마음이 여린 친구. 자신의 엄마가 둘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당당한 친구. J는 공부도 제법 잘해서, 아니 꽤나 잘해서 서울에서 일등으로 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이런 J가 기특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세속적이게도, 내게 S대에 다니는 친구가 하나쯤 있어서 좋았다. 물론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J가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S대 출신이라는 명함이 J에게 ‘지금보다는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J를 응원했다.
내 바람대로 J는 잘 살고 있었다.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듬뿍 받았고, 대학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J를 만나기 위해 올라간 서울에서 느낀 분위기, 그러니까 지방엔 없는 온갖 신기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것들을 대면할 때마다 J의 삶이 성공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거대한 도시에서 잘 살고 있는 J에게 ‘이제 걱정은 없겠구나’ 하는 안심마저 들었다. 그 무렵, 서로 사회 초년생이 되어 만났을 때 우리는, 시시콜콜한 회사 일을 주고받으며 걱정이랄 거 없는 젊음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떤 어둠의 그림자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점점 J와의 연락이 뜸해졌다. SNS를 통해 엿보는 J의 일상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여서 나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말은 내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세상의 지혜였다.
그러던 어느 날, J가 SNS로 대화를 남겼다.
“경미야. 나 아파. 그래서 여수로 내려가는 중이야.”
J의 글을 읽은 나는 아픈 이유를 심한 감기나 장염 정도 걸린 것으로 생각했다. 워낙 일이 바쁘다 보니, 아프면 환자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니까 휴가차 쉬러 오는가 싶었다. 나 역시 이미 고향을 떠난 터라 J를 만나러 갈 상황도 아니었고, J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이렇게 답장을 남겼다.
“에고, 아프지 마. 얼른 나아! 조만간 얼굴 한번 보자.”
나의 무심한 답장에 J는 답변이 없었다. 얼굴 한번 보자는 한국인이 흔히 하는 인사말 중 하나이니까, 딱히 연락을 해서 만날 날짜를 잡지 않은 채 J의 메시지는 점점 잊혀갔다. 그 무렵 나는, 현재 직장의 한계와 박봉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던 탓에 J에게 연락할 여유가 없이 시간만 야속하게 흘러갔다. 문득 J가 떠올랐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하며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내 중학교 친구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J, 암에 걸려서 죽었대. 이미 일 년 전에 장례를 치렀대.”
20대 꽃다운 나이에 J는 세상을 떠났다.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길 바랐던 친구 J는 마지막 가는 길을 어떻게 떠났을까. J의 핸드폰 속 저장된 그 친구들 중 몇 명이나 그 마지막 길에 함께 했을까. 내가 아프다는 J의 메시지에 전화라도 했다면, 그래서 연락이 끊기지 않았다면 J의 부고라도 전해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소중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그 길에 배웅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J의 이름을 너무나도 불러보고 싶지만, 이제는 J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을 이름이니까. 부르지 않는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J는 내가 기억했던 마지막 모습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언제 J를 보러 가야겠다. J가 잠들어 있는 그곳에 가서 꽃 한 다발이라도 놓고 와야겠다. 언젠가 내가 생각나서 샀다며 건넨 그 해바라기 꽃 한 다발을.
‘늦게 와서 미안해. 그곳에선 꼭 아프지 말고, 행복해야 돼.’
(사진 출처: Bruno / Germany from Pixab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