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기다림.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by 임경미


봄 풍경이 낯설다. 어딘가 줄곧 비어있다. 달력은 어느덧 3월 중순을 지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쯤 되면 이런 기대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따뜻한 계절이, 드디어, 내게.’


때가 되면 기대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서른 번 넘게 일 년의 사이클을 고스란히 살면서 경험으로 배운 것들. 봄에는 꽃이 피길, 장마철에는 비가 오길, 가을에는 낙엽이 지길, 겨울에는 눈이 내리길. 오랜만에 엄마 집에 찾아갈 때면 맛있는 한 끼 식사를 기대하고, 안녕하고 뒤돌아서는 네 눈빛에 담긴 애정을 보고 우리는 조금 더 특별한 관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때론 어떤 것들은 기대하지 않았어도 틀림없이 온다. 그래서 기대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우려로 더 다채로워진다. 여름이면 극성을 부리는 모기와 초파리 같은 것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원하는 것을 놓치는 순간, 소유를 상실하는 순간, 그리고 점점 늘어가는 주름과 검버섯 들 같은 것. 이런 것들은 기대하지 않았어도 찾아와 한바탕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사라진다.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어두운 하루에 한 줄기 빛이 되고, 기대하지 않은 것이 올 수 있다는 기대는 삶에 오묘한 감정을 더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후자는 기대가 아닌 걱정이자 두려움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같다. ‘기대’라는 단어로 인해 파생되니 말이다.

기대한 것이든, 기대하지 않은 것이든, 기대하는 것 자체가 팍팍한 일상에 쉼을 주고, 무료한 일상에 색채를 더한다. 끊임없이 기대하고 실망하면서도 또 기대하게 되는 것은 그 풍요로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기대는 지금보다 더 나아지길 바라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자, 존재가 여전하길 바라는 소망이자, 좋은 걸 원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오늘도 기대할 것이고, 내일도 역시 기대로 가득 찰 것이다. 기다리고 싶은 것들을 찾아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기대하는 순간의 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다. 고도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이즈음이면 찾아올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달랐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왜 기다리는지 알고 있었고, 언제쯤 올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명확한 기다림, 분명한 기대. 그래서 기다림은 점점 희망을 키우고, 희망은 마음을 부채질했다. ‘슬슬 올 때가 됐어.’

그러나 그해 봄날의 기다림은 유난히 길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대감과 불안감은 함께 부풀어 올랐다.




그해 봄날, 나는 노랗게 필 개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봄날의 온기를 듬뿍 받았으니 노란 개나리며 분홍 진달래며 봄을 알리는 작은 존재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 터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봄은 여전히 조용했고, 풍경은 아직 쓸쓸하고 황폐한 지난 계절에 머물러 있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일 년 전, 이곳에는 분명 노란 개나리가 이미 만개해있었다.


왜, 개나리가 피지 않지?

개나리가 왜, 피지 않지?

개나리가 피지 않아, 왜? 도대체, 왜?


왜 개나리가 피지 않는지 되뇌다가 덜컥 겁이 났다. 언제부턴가 주변 건물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더니, 몇 개월 전부터는 빨간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공가’.

낯선 단어를 한참 곱씹다가 그 의미를 유추했다. 아, 빈집이라는 뜻이구나. 하지만 저 단어에 담긴 의미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을 테다. 저 빨간 스티커를 붙이기까지 누군가는 생업을 그만두어야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정붙이며 살았던 곳을 떠나야 했으리라. 그렇게 붙은 빨간 스티커 속 단어에는 이곳에는 더는 사람이 살지 않으니 언제 허물어도 상관없다는, 그리고 침입하지 말라는 경고마저 담겨 있을 터였다.


지금은 비어있는 건물에서도 예전엔 사람 소리가 들렸고, 그곳에 사는 누군가도 역시 개나리를 기다렸을 것이고, 무언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다. 어제의 존재가 오늘의 부재가 된 자리에는 새로운 자리 잡았다. 건물을 헐고 새로운 건물이 올라오면 돈을 벌 것이고, 좋은 집이 생길 것이라는, 현실적이고 욕망이 가득한 그런 기대들.

도대체 왜, 언제부터 이런 종류의 기대가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을까. 기대가 점점 단조로워지고, 획일화되는 세상에서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기대도 유행을 타서 그때그때 변하는 건지, 어떤 기대를 하는 게 좋은 건지, 나는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개나리를 떠올린다.




개나리는 왜 아직 피지 않은 것일까. 혹시 저 빨간 스티커에 담긴 기대가 개나리가 설 자리도 없애버린 것일까. 새로운 기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람이 떠나야 했듯 개나리마저 떠나야 했을까. 아니면, 어디론가로 개나리들이 무사히 옮겨 갔을까.

문득 개나리 나무의 허리가 날카로운 전기톱 소리와 함께 반토막 나고, 채 맺지 못한 꽃봉오리들이 길바닥을 나뒹구는 끔찍한 상상을 하다가 고개를 휘휘 저어 생각을 바꿔본다.

설마, 그럴 리 없다. 지난겨울이 유난히 추웠으니 늦겨울이 평소보다 조금 더 길어서 일 거라고, 늦겨울이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이른 봄이 이르게 오지 못해서, 봄이 아직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그래서 아직 개나리가 피지 못한 것이라고, 조금은 그럴싸해 보이고, 위로가가 되는 여러 이유를 찾아냈다. 이런 이유로 텅 빈 봄이 주는 가득한 불안을 애써 다독거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며.


어떤 기대는 그저 기대로 사라지고, 어떤 기대는 실제로 이뤄지던데, 그렇다면 이 기대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이변이 없다면 답은 후자일 것이다.


‘그래, 늦어도 봄은 올 거니까. 개나리는 분명 노랗게 만개할 거니까.’

나는 지금보다 더 진하고, 더 향긋하고, 더 포근한 봄을 내내 기다릴 것이다. 완연한 봄을 기다리며, 개나리가 만개하길 기다리며, 사실 나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희망찬 소식을 기다리고,

기대했던 소식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림이란, 아직 오지 않아서임을, 불투명해서임을, 명확하지 않아서임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기다림은 지연된 도달이고, 연기된 만족이지 않던가. 그래서 봄을 기다리며, 노랗게 피어날 개나리를 기다리며, 추운 겨우내 기다렸던 소식을 기다린다. 봄이 없는 사계절을 상상할 수 없고, 개나리가 피지 않는 봄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기다리기를 포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서 잠시, 아니, 조금 더 기다리기를 택한다.

그렇게 우리는 바랐던 그 무엇인가를 여전히 기대하고, 기다린다. 그것을 차마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지연된 도달이 더 큰 좌절로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봄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더욱 차갑고 비극적으로 만드니까.


지난봄, 비와 함께 일찍 땅에 떨어져 버린 노란 꽃송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

더 아름답게, 더더욱 오랫동안. 그때보다 더 소중하게.


나는 그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지난 시간을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온 너와 내게는, 그리고 우리에게는 분명 그 시간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봄 풍경이 향기롭고 따스하게 가득 채워질 그 시간이.





며칠 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노란 꽃이 피었다. 이제 이 작은 노란 꽃송이들은 꽃무덤을 이루며 만개할 것이다. 나의 기대는 결국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질 것이다.


그 봄, 노란 개나리가 피길 기대하며, 따뜻한 계절이 오길 기다렸던 나는, 사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듯, 내게도 그런 변화가 오길 기대했다. 오랫동안 노력한 일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기대, 설령 결실을 맺는 순간이 더디 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래서 인생의 봄날이 따뜻해질 것이라는 기대.

결국, 그해 봄에도 노란 개나리는 피어났다. 조금 늦게 꽃 피운 개나리처럼 그 봄날 품었던 소망도 피어나 만개할 것이다. 당신이 그토록 바라며 기다렸던 그 기대도 말이다.



Q. 당신의 마음속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있나요?



(픽사베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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