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두려운 나에게

실패를 이겨낼 문장을 찾습니다

by 임경미


실패는 언제나 무섭다. 사실은 그렇다.

나는 많은 책을 통해, 그리고 내 글을 통해 실패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꿨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실패는 나를 다시 예전의 나로 안내했다.)

실패는 내 인생을 망가뜨리는 운명의 얄궂은 장난이었고, 그 나락에 떨어졌을 때 나는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어떤 실패의 순간이 있었을까.

병에 걸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 3년 동안 준비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공무원 시험, 연인과의 이별, 친구와의 다툼.

그리고 또... 거금을 들여 산 옷을 다음해 입으려고 보니 작아져서(내가 살이 찐 것이 아니라 옷이 줄어든 것이라고 주장해본다...;;) 못 입게 되었을 때, 다이어트 하려고 밥을 굶고 운동도 했는데도 살이 1킬로그램 더 쪘을 때?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물을 얻지 못했을 때는 너무나도 많다. 여튼 나는 스스로 실패라고 규정한 이런 것들을 통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점점 키우고 있었다. 실패의 순간을 내 인생에 초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내 인생에 찾아온 불청객일 뿐이었다.




그랬던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실패의 나락에서 벗어나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하게 되면서 실패라는 것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실패는 자신이 실패라고 규정하는 순간 실패가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내가 실패로 생각하지 않는 일은 절대 실패가 되지 않는다는 것.

설령 내가 실패로 규정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엇이든 의미 있는 가르침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 그러므로 결코 쓸모 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것.

실패의 순간이 찾아와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실패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의미를 찾고 나니 이렇게 생각을 바꾼 뒤 나는 실패라는 것과 제법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실패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 순간은 내게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에 나오는 주인공 앤의 사연과 너무 닮았다. 앤은 신문사에서 사망 소식 전문 기자(?)로 일한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에세이를 쓰는 작가가 되는 것.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그런 자신을 상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앤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에 변수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조바심 내지 말고 나아가보자 생각해도 문득 찾아오는 불안한 생각들을 마주해야했다.

나는 불안이 끌어당기는 대로 끌리고, 불안을 밀쳐내는 대로 거리를 두며 불안과의 아찔한 춤사위를 이어갔다.




실패에 대한 걱정을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의 또 다른 주인공 해리엇은 실수가 두려워 걱정하고 있는 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실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야. 실수가 너를 만드는 거야.

실수는 널 더 강하고 자립적으로 만들어. 앞으로 크게 자빠져. 실패해. 아주 어마어마하게 실패해보라고.”


해리엇의 조언을 들은 앤은 조금씩 도전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노력을 한다. 해피엔딩이다. 이 정도면. 누군가에게는.


그러나 나는 아직 실패가 두렵다. 뛰어들 때는 과감히 뛰어들지만 마음껏 뛰어노는 동안 문득 그 끝이 걱정된다. 이런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떤 말을 해야 더 몰입하며 뛰어놀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드엔딩도 아니다. 나는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낼 나만의 답을 분명 찾을 거니까. 어느 날 찾아오는 두려움의 순간. 그것을 가볍게 해소하고 금방 평온해질 수 있는 마법 버튼 같은 그 문장을.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죽기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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