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게 프린트된 검은 선을 따라 서걱서걱 날이 선 칼날을 움직였다. 본래 한 덩어리였던 갈색 종이에서 앉은 고양이 한 마리가 떨어져 나오고 꽃잎이 한 잎 두 잎 피어났다.
나는 칼날이 움직일 때마다, 선과 선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나는 머뭇거리며 조심스러워했다. 베어도 그만, 잘려도 그만인 종이 한 장이 아쉬워 1mm씩 전진하고 라인을 타 넘으며 손을 움직였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종이 한 장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고양이가 있었고, 펭귄이 있었고, 꽃이 있었고, 창문이 있었다. 내가 찾아온 오직 너, 단 하나의 존재였다. 그래서 더욱 전전긍긍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단 하나뿐인 게 어디 이것뿐일까.
단 한 명뿐인 나라는 존재로 태어나, 지금뿐인 오늘을 살아가며, 세상에 둘도 없는 너라는 사람을 알아가고,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을 알아차릴 방법은 많지만, 알아차릴 대상은 단 하나뿐이기에 그래서 인생이 더 전전긍긍해지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뿐인 인생이기에, 틀렸다고 다시 뒤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더 조바심을 내고 더 걱정하고 더 잘하기 위해 애쓴다.
어떻게 해야 더 나은지, 어떤 선택이 더 최선인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번뿐인 인생,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게 정답인 걸까.'라고 고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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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라며 시무룩해 있던 너에게 마치 답은 정해져 있다는 양 잘난 체를 했었더랬다. 한번 사는 인생이기에 ‘어차피’ 모드가 발동되기 어렵다는 그 마음을 몰라준 채.
갈팡질팡 하며 의심할 시간에 그냥 부딪혀 보는게 어때?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믿어, 나는.
영원한 진리도, 불멸의 참된 정답도 없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잠시 닫아두고, 인생을 살아갈 방법마저 하나일 것이라고 착각에 빠진 채, 그렇게 매정하게 딱 잘라 말했더랬다. 이런 걸 위로이자 조언이랍시고 말이다.
나아가길 주저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이 무섭지 않다고,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이렇게 살아야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이 마음의 짐을 이제 그만 내려놓고, 더 행복한 하루를 살길 바랐다.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 알을 깨고 나와, 친구야.”
네 세상은 좁은 알 속이 아니라, 알을 품어주는 이 넓은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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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엉거주춤하고, 쭈뼛쭈뼛하는 게 뭐 어떨까.
1mm씩 칼날을 옮기고 나서야, 직선은 직선답게 곡선은 곡선답게 손을 움직여야 비소로 하나의 고양이도, 토끼도, 꽃송이도 탄생하지 않았던가. 엉거주춤하고 쭈뼛거리는 당신의 발걸음도 분명 다른 길로, 그리고 지금보다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지금은 그런 당신을 지켜보고 응원할 뿐이다.
넘어져 아프면 조금 더 앉아있어도 돼.
아직 두려우면 조금 더 숨을 내쉬어도 돼.
아직 그럴 마음이 없다면 조금 더 나를 돌아봐도 돼.
그리고 그럴 마음이 든다면 그때 움직이면 돼.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는 길의 끝에 더 멋진 결과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누구보다 더 빠르고 그 어느 때보다 값진 결과물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꾸만 재촉했던 그날, 내 말을 바로 잡으며, 네게 하지 못했던 또 다른 말을 건네 본다.
(사진 출처: 이미지 by Miguel Á. Padriñá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