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프로 균형러

by 임경미


학교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하루일과 중 하나였던 내가 좋아했던 놀이기구는 바로 시소였다. 친구와 양쪽 끝에 마주 보고 앉아 돌아가면서 발을 구르면 한 명이 ‘슝’하고 위로 올라갔다 내려온다. 그러면 아래에 있던 맞은편 친구가 하늘로 ‘슝’하고 올라간다. 서로를 가장 높이 올려주기 위해 있는 힘껏 힘을 주어 반동의 힘을 크게 만드는 것이 그 당시 친구 간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시소를 탈 때 기본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양쪽에 앉은 사람의 몸무게가 균형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몸무게의 차이가 크면 시소는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균형이 맞으면 즐겁게 시소를 탈 수 있다.


우연히 놀이터 옆을 지나다가 옛 추억에 이끌려 시소에 앉았다. 조용한 놀이터, 혼자 앉은 시소. 시소는 내가 앉은 쪽은 땅으로 푹 꺼지고 반대편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아무리 발을 굴러도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야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으니, 땅에 달라붙은 듯 내려앉아 움직이지 않는 시소에 나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래, 움직일 리 없지, 균형이 안 맞잖아, 균형이.’


어쩌면 움직이지 않은 시소처럼 내 삶에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졌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밀려드는 일의 홍수 속에서 일에 치여 살았다. 그때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오후 8시 무렵 퇴근 시간까지 일에 매진했다. 주말에도 출근했고, 새벽 2시까지 일을 한 적도 다반사였다.

열심히 일하는 것의 좋은 점은 연봉이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매년 연봉이 오른다고 내 삶의 만족도가 오르지는 않았다. 연차가 쌓이고 연봉이 오를수록 업무 부담도 함께 늘었고,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러나 사람이 돈과 일로 인해 얻는 성취감으로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때로는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자기 계발의 시간도 가져야 한다. 이것을 간과한 채 나의 모든 시간을 일하는 데에 써온 나는 결국 번 아웃에 빠졌다.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과로로 인해 몸도 망가진 상태였다. 입사 이래 최초로 멈춤 버튼이 눌러진 순간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 치료를 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살지 말자. 내 인생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모든 것에는 균형점이 있다. 하늘로 치솟아 서 있는 건물에도, 길가에 뿌리 내린 나무에도, 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커피잔에도 균형점이 있어서 그것들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균형이 깨지면, 어느 것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일과 일상, 나와 대인관계, 현실과 미래, 꿈과 이상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시소를 탈 수 없고, 결국에는 균형점을 잃은 것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만다. 오랫동안 시소를 타기 위해서는,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들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서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일을 하면서도 내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면서 그만큼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며, 꿈을 좇아가면서도 현실의 내가 괴롭지 않게, 현실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서로 상반된 것들을 시소 위에 올려놓았을 때, 내 인생의 시소가 즐겁게 움직일 수 있다.


나는 내 인생의 시소에 무엇을 올려 놓을까. 물론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사람이 더 중요한 사람이 있고,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 있고, 돈이나 명예가 더 중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을 시소 위에 올려 놓든 그 균형을 잘 유지하며 살길 바란다. 그것이 내 인생의 시소를 즐겁게 오래오래 타는 방법이니까.


(이미지 출처: by Manfred Antranias Zimm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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