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이 어땠어?

도전하는 나에게 묻는 말

by 임경미


등산이 싫었다. 차오르는 숨과 말을 듣길 거부하는 허벅지를 달래며 올라가는 시간이 고통이었고, 수시로 변하는 기온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것 같았다. 정상에서의 기쁨은 언제나 짧았다. 한두 시간 기껏 올랐더니 다시 하산. 눈에 뻔히 보이는 긴 고통 그러나 짧은 환희. 긴 과정의 고통과 짧은 결과의 기쁨 간의 격차는 등산을 멀리하기 충분한 이유였다.



나는 등산이 싫은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움이 싫었다. 인내해야 하는 그 순간이 견딜 수 없었다.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랐다.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초행자에게 찾아오는 고통.

‘잘 할 수 있을까. 무사할 수 있을까. 이 길이 맞을까?’ 그리고 나아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걱정은 무럭무럭 자라 초행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설렘은 쉽게 불안이라는 녀석에서 잡아 먹혔다.


도전은, 거창하든 사소하든 언제나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깜박거리는 신호등 초록불을 보면 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 건너기도 전에 빨간 불로 바뀔 것이 걱정돼서.

타야 하는 버스가 저 멀리 있으면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버스가 출발해버릴까봐 걱정돼서.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내 생각만큼 이룰 수 없을까봐 걱정돼서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아니, 다 핑계였다. 도전이 고통스러워서 쉽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나란 사람은 안정을 원했고, 내 체면이 중요했다. 실패와 좌절보다 무서웠던 것은 그로 인해 무너져 내릴 내 체면이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사실 즐거움이었지만, 그로 인해 혹시 발생할지 모를 미지의 문제상황, 그것이 두려워 몸을 사렸다.


버스를 놓치는 것보다 버스를 놓치고 나서 찾아오는 민망함이 더 싫었고, 하고 싶은 일이 성패보다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했을 때 자책하고 자존심 상할 내 모습이 싫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느것도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주하며 애써 내 마음을 포장하고 포장해서 본심을 저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있었다. 알아차리지 못하게 꽁꽁 싸매놓고 등산이 싫고, 도전하는 것은 귀찮고 두려운 일이라며, 이렇게 사는 삶도 괜찮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 생각의 길이를 늘이며,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라도 내 마음을 알았으니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체면이나 안정 따위 사실 별거 아니니까 모두 내려놓으라고?

우리는 언제나 미지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생의 초행자니까 두려움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얼마 전, 어쩌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 등산을 다녀왔다. 분명 번거로운 상황도 있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 전, 횡단보도 도착 50m 전에 바뀐 파란불을 보고 재빨리 뛰어 버스를 탔다. 기껏 뛰었는데 버스를 놓쳤다면 역시나 민망해했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뛰어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달리기가 썩 빠르지는 않아도 신호등의 파란 불 시간은 건너기에 충분했으니까.

세상일도 다 그랬겠지. 내 능력이 썩 뛰어나지 않아도, 적당히 이뤄내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내 콧대를 저 높이 세우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뭐, 여하튼, 생각해보니 막상 시도해보니 별것 아니었던 경험들. 이런 경험들의 누적을 통해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거봐, 해보니까 괜찮지? 그러니까 두려워 하지 않아도 돼. 마음껏 도전해”라고. 그렇게 내가 바뀌길 바라며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은 하지 않은 게 낫겠다. 그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용기를 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그러는 동안 네 마음은 어땠어?”라고.

바뀌길 바라는 용기보다는 바뀔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경험한 내 마음이 어떤지, 도전에 성공했다는 짜릿함에 감춰진 그 속마음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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