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의 개화
오랜만에 꽃 시장을 갔다. 형형색색의 자태로 아름다움을 뽐내며 눈길을 사로잡는 꽃들 사이에서 내 마음을 강한 자석처럼 이끄는 녀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양귀비. 들판에 핀 쨍한 색감의 양귀비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던 나는 이번에는 이 녀석을 데려가기로 결정하고, 습관처럼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 양귀비 오래 펴요?”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내공깨나 쌓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장님께서는 얼마 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죽을 때까지는 피어있어요.”
당연한 말이었지만, 사장님의 말씀에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기준과 잣대를 들고 있구나.’
그날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양귀비)의 삶을 들이면서 상대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대로 판단하고, 내 기준에 부합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랬으니 어쩌면 금방 시드는 것이 운명인 양귀비의 삶을 부정하고, 1주 동안 피어있기를 혹은 2주 동안 피어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내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면, 며칠 피었다 시들어버릴 양귀비의 삶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함께 간 남편은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일찍 시드나 보다. 어떻게 할 거야? 살 거야?”라며 내심 사지 말라는 의미를 담으며 물었지만, 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양귀비꽃 한 단을 구입했다. 사장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그래. 네가 죽을 때까지는 피어있겠지. 그동안의 너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리고 그날 오후 사 온 꽃을 화병에 대강 꽂아두고, 꽃 감상 모드에 돌입했다. 이제 막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한 아이의 머리 같기도 하고, 키위 같기도 한, 그러면서도 왠지 투박하고 두꺼워 보이는, 꺼슬꺼슬한 촉감의 꽃봉오리의 속이 내심 궁금했다.
‘저 뻣뻣한 겉옷 안에서 부드러운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혹시 이대로 시들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런 내 우려와는 다르게 따뜻한 방안에 옮겨진 양귀비는 기온이 잘 맞았던 덕인지(아니면 안 맞았던 탓인지) 빠르게 봉오리를 터트리고 꽃잎을 세상에 내보였다. 좁은 봉오리에 구겨져 있던 얇은 종이 같은 꽃잎이 밖으로 나오며 햇빛과 온기와 수분을 흡수했고, 이내 꽃잎을 활짝 피어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양귀비 꽃잎의 구김과 주름이 옅어지고 꽃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수레바퀴 모양의 수술은 노란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대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건조한 느낌을 전할 것 같은 양귀비 꽃잎은 예상 외로 촉촉하고 부드러웠으며 얇고 여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여린 꽃잎은 금방 축축 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양귀비는 하나 둘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남편의 예상처럼 양귀비의 개화는 짧았지만, (그래서 조금은 서운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꽃의 생을 일부분 바라보면서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는 또 얼마나 고맙고, 기쁜 일인가.
줄기가 잘리고, 뿌리에서 떨어져 나와도 영양분을 흡수하며 꽃을 피우는 생명력은 정말로 위대하다.
어느 하나, 같은 것 없이 다양한 모양새를 뽐내는 모습에는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여린 꽃잎은 두꺼운 껍질을 벗고 나와 마음껏 잎을 늘이며 에너지를 흡수하고, 벌을 유혹하고(물론 공교롭게도 이 방 안에는 없지만), 기쁨과 행복감을 주고 제 생을 끝낸다.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 제 삶을 충실히 살아간 꽃을 보면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다.
네가 그러하듯 나도 그럴 것이라는 위로를 주니까.
너처럼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용기를 주니까.
“꽃은 죽을 때까지 피어있다.
그러니 너도, 죽을 때까지 피어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