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덩어리 돌연변이 인간

'나'라는 순종의 시작

by 임경미

나는 쌍꺼풀이 있고, 혈액형이 AB형이고, 머리카락은 곱슬기가 있으며, 고교 시절엔 여드름이 가득했다.

(-지금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도 판명된 것도 있지만) 이것들은 ‘열성’이라고 구분된 특징들이었다. 나는 열성인자 덩어리였다.


열성의 열(劣)은 ‘못하다, 남들보다 뒤떨어지다’라는 뜻이고, 우성의 우(優)는 ‘넉넉하다, 뛰어나다’라는 뜻이었으니, 뭐가 떨어지고 뭐가 뛰어난지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스스로 열성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사람들이 화살처럼 쏘아보낸 말도 한 몫 했다.


생물 시간에 혈액형에 대해 배울 때면 AB형은 다른 혈액형에 수혈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생각이 어렸던, 철부지 반 아이들은 AB형인 나를...

“야, 너는 다른 혈액형의 사람들에게 피를 나눠줄 수 없다며? 그건 AB형 피가 더러워서 그런 거야.”라며 놀렸다.


저런 말을 되받아칠 지식이 없었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열성 투성이인 것도 모자라, 피가 더러워서 같은 AB형끼리가 아니면 피를 주고받을 수도 없는 나라는 존재가 참 싫었다.

무한한 진화의 시간 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미숙하게 태어난 것일까.


그때의 나는 우성은 뛰어나고, 숫자가 더 많거나 발현하기 쉬운 성질로 알고 있었고, 그렇지 못한 열성은 생존에 불리한 조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열성 요인을 가지고 있는 나의 존재를 하찮음 그 자체였다.

신체적 특징뿐만 아니라 성격도 뭔가 달랐다.


남들보다 예민했고, 까칠했고, 화를 잘 냈으며, 콤플렉스 때문인지 자존심도 셌다. 삐지기는 또 얼마나 잘 삐졌던지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았니?” 하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열성 덩어리인 내가, 성격마저 이래서 돌연변이 취급까지 받았으니 ‘세상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나도 잘 살아남았고, 아직도 이렇게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며 살고 있다. 열성이었다면, 돌연변이였다면 금방 도태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는 내 우려와는 다르게 말이다.

(아니, 어쩌면 열성이기 때문에 남보다 더 노력했고, 그랬기에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열성이든, 돌연변이든 나는 살아남았고, 아직도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나아져서 내가 미워하고 외면했던 열성인자들을 받아들일 줄도 알고, 잘못 알았던 것들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을 수도 있게 됐다.




유전형질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돌연변이는 순종을 낳는다.
그러므로 돌연변이가 진화의 동인이 된다.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내 열성인자들을 받아들이기 급급했던, 그러면서도 나를 돌연변이라고 인식했던 과거의 행태를 떠올렸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내 형질들은 ‘나’라는 순종의 시작인 것이다. 돌연변이는 기존의 것들과 비교하면 특이하고 다른 것이지만,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것의 시작이자 다양성의 발로이다.


내가 마음속 깊이 거부했었던 열성이거나 돌연변이 같은 것들은 그렇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이던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릎을 탁 치고,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문장 덕에 내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있었던 열성과 돌연변이 콤플렉스의 마지막 흔적을 지워낼 수 있었고, 이제 더는 내가 우성인지 열성인지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내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더는 그 출처가 궁금하지도 않다.




나는 오직 나라는 존재의 순종으로 태어났으니.

내가 생겨 먹은 대로, 내 성격대로 그렇게 살고, 살아남으면 된다.

그 삶의 과정을 잘 보내고 나면, 그러니까 도태되지 않고 잘 살아내면 나라는 돌연변이는 확장해서 순종의 시초가 될테니 말이다.


곱슬머리도, 쌍꺼풀도, 보조개 없는 볼도, AB형인 혈액형도, 누굴 닮았는지 모를 성격도 다 상관없다.

그것들은 나라는 존재의 특징일 뿐이니까.


something special 한 나, 참 사랑해.




이전 04화떫은감과 회복탄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