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죽을 때까지 피어있으라

양귀비의 개화

by 임경미

오랜만에 꽃 시장을 갔다. 형형색색의 자태로 아름다움을 뽐내며 눈길을 사로잡는 꽃들 사이에서 내 마음을 강한 자석처럼 이끄는 녀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양귀비. 들판에 핀 쨍한 색감의 양귀비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던 나는 이번에는 이 녀석을 데려가기로 결정하고, 습관처럼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 양귀비 오래 펴요?”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내공깨나 쌓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장님께서는 얼마 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죽을 때까지는 피어있어요.”



사진 출처: 픽사베이, 수잔 스톨클리


당연한 말이었지만, 사장님의 말씀에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기준과 잣대를 들고 있구나.’


그날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양귀비)의 삶을 들이면서 상대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대로 판단하고, 내 기준에 부합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랬으니 어쩌면 금방 시드는 것이 운명인 양귀비의 삶을 부정하고, 1주 동안 피어있기를 혹은 2주 동안 피어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내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면, 며칠 피었다 시들어버릴 양귀비의 삶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함께 간 남편은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일찍 시드나 보다. 어떻게 할 거야? 살 거야?”라며 내심 사지 말라는 의미를 담으며 물었지만, 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양귀비꽃 한 단을 구입했다. 사장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그래. 네가 죽을 때까지는 피어있겠지. 그동안의 너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리고 그날 오후 사 온 꽃을 화병에 대강 꽂아두고, 꽃 감상 모드에 돌입했다. 이제 막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한 아이의 머리 같기도 하고, 키위 같기도 한, 그러면서도 왠지 투박하고 두꺼워 보이는, 꺼슬꺼슬한 촉감의 꽃봉오리의 속이 내심 궁금했다.

‘저 뻣뻣한 겉옷 안에서 부드러운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혹시 이대로 시들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런 내 우려와는 다르게 따뜻한 방안에 옮겨진 양귀비는 기온이 잘 맞았던 덕인지(아니면 안 맞았던 탓인지) 빠르게 봉오리를 터트리고 꽃잎을 세상에 내보였다. 좁은 봉오리에 구겨져 있던 얇은 종이 같은 꽃잎이 밖으로 나오며 햇빛과 온기와 수분을 흡수했고, 이내 꽃잎을 활짝 피어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양귀비 꽃잎의 구김과 주름이 옅어지고 꽃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수레바퀴 모양의 수술은 노란 꽃가루를 잔뜩 묻히고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대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건조한 느낌을 전할 것 같은 양귀비 꽃잎은 예상 외로 촉촉하고 부드러웠으며 얇고 여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여린 꽃잎은 금방 축축 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양귀비는 하나 둘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남편의 예상처럼 양귀비의 개화는 짧았지만, (그래서 조금은 서운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꽃의 생을 일부분 바라보면서 소소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는 또 얼마나 고맙고, 기쁜 일인가.

줄기가 잘리고, 뿌리에서 떨어져 나와도 영양분을 흡수하며 꽃을 피우는 생명력은 정말로 위대하다.

어느 하나, 같은 것 없이 다양한 모양새를 뽐내는 모습에는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여린 꽃잎은 두꺼운 껍질을 벗고 나와 마음껏 잎을 늘이며 에너지를 흡수하고, 벌을 유혹하고(물론 공교롭게도 이 방 안에는 없지만), 기쁨과 행복감을 주고 제 생을 끝낸다.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 제 삶을 충실히 살아간 꽃을 보면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다.

네가 그러하듯 나도 그럴 것이라는 위로를 주니까.

너처럼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용기를 주니까.

“꽃은 죽을 때까지 피어있다.

그러니 너도, 죽을 때까지 피어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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