떫은감과 회복탄력성

'답게'가 중요하다고~

by 임경미


가을철 시장에 가면 검정 그물망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황색 과일을 흔히 볼 수 있다. 바로 단감이다.

그런데 개중 요상한 녀석이 한둘 섞여 있다. 한 입 씹는 순간, 혓바닥을 마비시키는 것 같은 강력한 떫은맛을 가진 녀석들.

어떤 감은 푸르딩딩해도 달콤한데, 어떤 감은 주황색으로 잘 익어보여서 방심하고 먹었다가 느닷없는 떫은맛의 공격을 받아 못생긴 얼굴을 하게 만들었다.

방심하다 경험한 떫은맛이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강력한 시련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세상의 이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정도의 능력을 주지 않고, 동일한 강도의 고통을 주지 않을 테니, 이것도 역시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겠지.

어려운 문제 앞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온 시련 앞에서 쩔쩔매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재미난 장난감이라도 만난 것처럼 전투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그러지는 않겠지만, 전자는 후자가 부럽다. 나의 소심함과 나약함이 원망스럽다.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홍시를 떠먹다가 그 달콤함이 이끄는 사색의 길로 빠졌다. 그것 아는가? 우리나라에 ‘떫은감협회’가 있단다. 떫은감협회는 감이 달지 않고 떫다고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현실을 인식한 데서 출발했을 테다(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떫은감협회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떫은감은 단감과는 다릅니다. 떫은감은 홍시나 곶감이 되었을 때 먹는 감입니다. 홍시가 되면 떫은맛이 사라지고, 단맛은 더 강해집니다.


나에게는 떫은감을 홍시로 만들어 먹은 기억은 없지만(대봉을 홍시로 만들어 먹은 적은 있어도), 단감을 홍시로 만들려고 했던 기억은 있다.

냉장고에 오랜 시간 보관되어 김치 다음으로 오래 묵힌 단감을 두고, ‘저렇게 두면 언젠가 홍시가 되지 않을까’ 했었다. 그런데 단감은 물컹해질 뿐 흐물흐물 흘러내리는 달달한 홍시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떫은감이고, 너는 단감이라면 우리의 차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왜 떫지? 나는 왜 계속 딱딱하지?’ 하면서 서로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회복탄력성이 유난히 낮은 내가, 회복탄력성이 높은 누군가를 따라 하려는 것은, 그렇기에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쉽게 가능하다면 떫은맛을 인내하며 먹거나 딱딱함을 물컹하다고 착각하면서 먹어야 한다. 다시 말해 나답지 않게 행동하며 무리하고 있음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회복탄력성이 크면 좋겠다. 그래서 상처 입고 두려운 순간에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나를 인정하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다. 내 회복탄력성은 강한지 약한지, 나는 어떤 부분에서 강하고 어느 부분에서 약한지, 나를 약하게 하는 것은 혹은 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떫은감이라면 곶감이나 홍시가 되기 위한 과정을, 단감이라면 맛있는 단감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떫은감이면 떫은감답게, 단감이면 단감답게 즐기듯, 나의 회복탄력성도, 너의 회복탄력성도,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키워가면 좋겠다. 그게 진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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