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주고 속상하다면
친구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했다.
예쁜 꽃 그림에 시가 한 편씩 어울려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일하고 아이 키우느라 바쁜 일상이니까 긴 글을 읽을 시간은 없을 테고, 짧은 시라면 하루에 3분, 길어도 5분이면 읽을 수 있겠지 싶었다. 거기에 꽃도 그려 있으니 메마르고 건조한 일상을 촉촉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시를 읽으며, 그림을 보며 저처럼 예쁜 너라는 존재와 네 삶의 아름다움을 더 느끼길 바랐다.
선물을 보내는 내 마음이 너무 거창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선물과 함께 잘 전달되기를 잔뜩 기대했다.
며칠이 지나고 책에 대해 물었을 때, 친구는 선물 받은 날 몇 페이지 뒤적거린 뒤로는, 바빠서 읽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내게 미안했던지,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대강 봐도 얼마나 좋은지 알겠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래, 바쁘면 어쩔 수 없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바꿔봐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애써 밝게 통화를 마쳤지만, 전화를 끊고서도 속상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3분 정도의 짬도 안 나는 건가? 사실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괜찮은 척하는 것은 그렇게 흉내 내는 것일 뿐,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까. 척한다고 해도 서운함을 느낀 진짜 내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 친구에게 책을 선물할 때,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며 행복했다. 내가 책을 선물함으로써 너를 이렇게나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선물을 주고 난 뒤에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에 서운했다.
애초에 친구의 의사를 묻지 않고 보낸 선물이었으니 이후에는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선물이 마음에 들지, 시간을 내어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친구의 몫이었다. 내가 책을 선물함으로써 친구에게 마음의 여유와 책을 읽을 시간을 함께 선물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내 마음대로 주고, 또 마음대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서운해하는 요상한 원맨쇼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주고받는다. 때로는 물질을 주고받고, 때로는 마음을 주고받고. 주고받는 것이 익숙하다보니 무언가를 받으면 줘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리기도 하고, 매번 주고만 있을 때면 받는 것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것은 마음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작아서 받지 못하는 것에 서운함을 느끼고, 마음이 넓어서 받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기에, 주고받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기에 주면 언젠가는 받을 때를 기대한다. 나도 모르게, 은근히.
부모 자식 관계도, 부부 사이에도, 연인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관심과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대로 마음을 보내놓고, 그것을 받아주지 않거나 받기만 하고 되돌려 주지 않으면 내심 서운해진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데”의 다음에는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라는 원망이 이어지고, 나는 이런 말을 몇 번인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마음이 풍요롭고 여유로울 땐 쉽게 줬던 마음이 가끔 이렇게 뒤통수를 친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으로.
세상을 살면서 너무 익숙해진 규칙이 있다. 바로 ‘등가교환의 법칙’. 내가 밥을 먹길 원하면 밥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것을 지불해야 하고, 옷을 얻길 원하면 정당하게 옷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서로 상응하는 가치가 있는 것끼리 교환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등가교환의 법칙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관계에도 적용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만큼의 마음을 줬으니 상대방도 내게 이만큼의 마음을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주고서 받길 바라는 마음이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보낸 마음은 크고, 네가 돌려준 마음은 작다고 규정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 마음의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가 없다.
마음이 흐르는 방향은 자기 마음대로이고, 마음이 흐르는 날도 자기 마음이다. 그래서 내게서 떠난 마음이 상대방에게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다가갈 수도 있다. 내가 준 마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전달될 수도 있다.
마음을 주 받는 것에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성립되지 않기에 하나를 줬다고 하나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오가는 과정에 기대를 붙이지 말자.
내가 보낸 마음이 언젠가는 상대의 마음속에서 잘 자리 잡는다면 그것만으로 내가 보낸 마음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니까.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