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tag)도 없는 인생
광고쟁이.
성인이 된 후 내가 갖고 싶던 꼬리표.
드디어 그것을 갖게 되었다.
그저 회사원일 뿐이지만, 그러나 왠지 단어만으로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단어에서 왠지 쿨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이 단어를 자신의 Tag으로 쓰는 사람은 뭔가 취향이 상당히 좋을 것 같았고,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사람일 것 같다.
라이프스타일이 상당히 매력적이고, 누가 봐도 멋진 옷을 입고 좋은 공간을 향유하고 문화 생활로 일상을 가득 채울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런 삶을 꿈꿨던 것 같다.
아침엔 트렌디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낮에는 회의실에서 탁월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박수갈채를 받으며,
밤엔 센스 있는 패션으로 느낌 있는 공간에서 와인을 마시며 소셜라이징을 하는 사람.
좀 많이 유치하고 닭살 돋지만, 20대 중반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딱 이랬다.
그러나, 현실은?
후훗. 모두가 반전을 기대하는 것처럼 물론, 정반대였다.
광고회사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더 치열했다.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를 내고, 더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밤낮없이 고민하느라 그랬을까?
물론 그것도 맞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일부의 삶이었다.
광고 기획자로서의 삶은 자료 조사를 하느라, 영수증을 처리하느라, 새롭게 온에어 된 경쟁사 광고를 트랙킹 하느라, 업계의 뉴스를 계속 업데이트 하느라,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느라 바빴다.
일과 시간에는 광고주의 요구를 실시간으로 대응하느라 상시 긴장 상태였다.
네이버 검색창을 열어 키보드로 몇 자 입력하면 바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나 뉴스마저도, 굳이 수고스럽게 우리에게 전화하고 설명하여 톡 토스해버리는 광고주 때문에, 분노는 매일의 디폴트 감정이었고 잡일을 처리하는 능력과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아이디어 회의 준비는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해서야 가능했다.
커피는 거의 생명수나 다름 없었기에 엉덩이를 단 1초도 못 붙인 채 사내 커피에서 테이크아웃으로만 마실 수 있었고, 회의실에서는 광고주의 요청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는 대책 회의가 벌어졌고, 쌓여가는 커피컵을 책상 위에 쪼르르 세워두고 하는 새벽 퇴근은 이어졌다.
치열하게 살던 신입 시절, 팀에서 쭈그리로 살다 유일하게 숨통이 트였던 동기들과의 대화에서는 늘 ‘광고쟁이’ 의 태그가 가진 환상에 속았다 라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그렇게 나는 과연 이 멋져보이는 태그에 속아 고통 받는 것으로 이 이야기가 마무리 될 것 같았다.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