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횡 Dec 31. 2023

다시 한 해를 끝내야 할 때

돌고, 돌고

2023년이 이제 곧 끝이 난다. 끝난다는 아쉬움도 시작한다는 설렘도 사실 이제 별로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되긴 하였다. 나이가 먹으면서 무뎌진 건지 아니면 이제 해가 지나도 크게 변하는 게 없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내가 한 살 더 먹는 것을 여러 가지로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해가 지나간다는 것이 굉장히 큰 일이었다. 내년에는 누구와 같은 반이 될지, 어떤 학교를 가게 될지 등등 변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그런 변화들이 사라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게 되서부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직장의 시계는 꼭 달력과 같지 않았다. 물론 해가 변하면 바뀌는 것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변화도 딱히 해가 변하는 것과 관계없이 일어나곤 했으니 말이다. 새해가 바꿔주는 건 n연차에서 n+1년 차 직장인으로의 변화정도랄까? 직장생활을 해 나가며 직위도 직책도 변하긴 하지만 그게 꼭 1학년이 2학년이 되듯 명확하게 시간의 변화를 알려주지 못하기에 더 그런 것도 같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면 훨씬 더 둔감해지기 시작한다. 어제인지 오늘인지 내일인지 주말이 언제이고 평일이 언제인지 전부 무뎌져간다. 분명 어떤 목표와 꿈을 안고 퇴사한 것 같은데 글쎄... 지금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니 알았는데 마치 지우개로 뭉개버린 듯 모호해져 버렸다. 뭐가 문제일까?


일단은 이게 문제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게 맞을 것 같은데 확실히 문제긴 하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으니 말이다. 퇴사했던 1년 6개월 전과 지금의 내가 별로 다름이 없다. 달라진 게 없다. 누가 그 시간에 뭘 했는지 물어보면 나는 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냥 늙은 거다.


사실은 안 그럴 수 있었다. 나름 목표로 했던 것에 근접하게 갔었다. 거의 이룰 수도 있었다. 근데 마지막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도 또 그렇게 된 것이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사람들 사이에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하나 둘 떨어져 나가더니 이제는 거의 남은 사람이  없어졌다.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진 것일까? 인생에 있어서 거의 최악의 한 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냥 멈춰 설 수가 없다. 버티고 서서 뭐라도 해야 한다. 누가 왜라고 물어보면 대답해 줄 말이 궁색하긴 하지만 일종의 내 삶에 대한 책임이자 최소한의 의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일단은 힘들더라도 앞으로 더 걸어 나가보려고 한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딘가에는 닿을 것이고 그게 꼭 원하던 곳이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의미를 내게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나를 나아가게 할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한 해가 흘러간다. 올 한 해 내가 겪었던 모든 실패와 좌절 슬픔도 함께 흘러간다. 새 해에는 그 자리에 다른 실패가 다른 좌절이 다른 슬픔이 그 자리를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다르지 않은가? 다른만큼 변한 게 있을 것이고 그만큼 나는 다시 살아있다고 느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