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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횡 Dec 26. 2023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

엣취!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단어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분명 두근두근하는 감정이 있었는데 과거에 내가 그랬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사랑이란 게 뭘까?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사전에 나오는 정의를 알려주면 되는 걸까? 사랑이란 게 어떤 눈에 보이는 형태라도 있다면 답을 하기 쉬웠을 텐데 그게 아니라 더 어렵게 느껴지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사랑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내 눈으로 사랑을 본 적이 있다.


 두 번의 목격이 있었는데 둘 다 대략 7-8년 전쯤이다. 하지만 아직도 꽤나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첫 번째는 시립도서관에서였다. 열람실에 있다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열람실 문 앞에 어떤 남자분이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계셨고, 아니나 다를까 열람실 문이 열리며 한 여자분이 나오고 두 사람이 껴안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여자분의 얼굴이 내 쪽을 향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사랑이었다. 그 여자분의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사랑으로 사람을 빚을 수 있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은 아마 그 여자분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꽤나 충격적이라 잠시동안 열람실을 들어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는 집 근처 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시간은 대략 밤 열 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가던 중 길 앞에 어떤 한 남자가 서있는 게 보였고, 내가 걸어감에 따라 그 사람과 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을 때 갑자기 그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제 열신데 술을 많이 마신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좀 돌아서 가는 게 어떨까 싶었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걸어 그 남자가 서 있는 자리까지 다가갔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남자는 도로 쪽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는데 도로에는 버스 한 대가 신호대기를 하며 서 있었고 그 안에 어떤 한 여자분이 그 남자의 춤을 너무나 행복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춤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율동을 그 남자분은 신호가 바뀌며 조금씩 움직이는 버스를 따라가며 계속하다 버스가 그 길을 완전히 벗어나자 손을 흔들며 그때야 멈췄다. 나는 그렇게 한 명의 목격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생각해 보니 이 잊을 수 없는 두 기억은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랑을 받는 모습이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랑을 주는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을 주는 사람의 모습이 내가 태어나서 보았던 그 어떤 사람의 모습보다 행복해 보였다. 아마 진정한 주인공이 된 기분이 아니었을 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사랑의 어떤 모습까지 본 나는 정작 전혀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가끔은 사랑의 모습을 봐버린 게 독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마치 하나의 기준처럼 작용해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도 내가 본 것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그냥 접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서 사랑한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음을 닫은 채 그저 사랑받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건 주지 못하고 받기만 하는 사랑으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알고 있음에도 마음을 여는 것은 언제나 겁이 난다. 받을 상처를 먼저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계속해 보려고 한다. 나도 그리고 이 글을 보는 어떤 사람이라도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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