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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횡 Mar 08. 2024

이성으로 행할 용기

분노로 행하지 않기를

나는 일주일에 4,5일 정도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간다. 가서 책을 읽을 때도 있고 이런저런 공부를 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얼마 뒤에 있을 자격증 시험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갔었다.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똑딱'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식 명칭은 모르겠지만 보통 '똑딱이 팬'이라고 불리는 팬의 뒷부분을 누르는 소리였다. 도서관의 열람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만큼 각 사람들이 사용하는 필기구도 다양하기 마련이라 가끔 '똑딱'하는 소리가 들려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처음 '똑딱' 소리가 들린 뒤 한 3분쯤 지났을까? 다시 '똑딱'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도 매 3분에서 5분 정도의 간격으로 '똑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의 한 시간가량 계속해서 소리가 났다. 심지어 중간에는 '똑딱' 소리를 연속으로 거의 열 번 가까이 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처음 몇 번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연속해서 '똑딱' 소리를 낼 때부터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 가까이 지나자 화가 거의 머리끝까지 났다. 하필 그날 이어폰을 가져오지 않아서 더 그랬다. 물론 이어폰을 썼어도 '똑딱'하는 소리가 꽤 커서 내 이어폰에서 나는 음악소리를 뚫고 들어왔겠지만 말이다. 


화가 나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가서 뭐라고 해야 하나? 예절 교육을 못 받은 건가?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등등 그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매우 순화해서 적은 것이 이라. 거의 내 머릿속 단두대에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을 올렸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화가 차오를 때까지 뭐 한 거지?


우리는 특히 근래 들어서 사람들이 분노에 사로잡혀 분간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를 꽤나 목격하게 된다.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말이다. 만약에 내가 분노로 가득 찬 상태에서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가서 웃는 얼굴로 '똑딱 소리 조금만 자제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렇게 화가 나기 전에 가서 얘기할 수도 있었다. 그때라면 웃는 얼굴로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말이다. 나는 대체 뭘 위해 참고 있던 걸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멈추기를? 아니면 행동하지 않고 못 배길 정도로 내가 분노하기를?


물론 나는 '똑딱' 소리를 내는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굳이 내가 말하기 전에 스스로 멈춰주기를 바랐고, 또한 내가 나서서 뭔가를 한다는 것에, 그것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분노로 움직이게 될 거라면 매우 가늘더라도 이성의 끈이 남아있을 때 움직이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결국 나는 이성이 주는 용기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굳이 내가 왜?'라는 물음과 뭔가 나서서 한다는 부담감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기에 분노로 눈앞이 흐려지고 이성이 마비될 때까지 마냥 기다린 것이다.


분노로 행한 것에 좋은 결과가 따르기 어렵다. 본질은 사라지고 그저 감정 대 감정의 충돌이 될 뿐이다. 충돌의 결과 남는 것을 아무것도 없다. 용기가 없는 자에게 남는 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꼭 분노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용기로 다가갔을 때 그때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때 분노해도 늦지 않다. 분노를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이성으로도 꽤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고 분노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조금은 더 명분이 있는 분노일 것이다. 


아! 그래서 그때의 나는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면 '똑딱' 거리는 사람 핑계를 대며 집으로 일찍 돌아가 놀았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남겨놓았으니 최소한 이성으로 움직일 용기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고 가지려는 노력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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