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정 서울미술관
지난 목요일(24. 12. 12.) 집 안에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어디든 나가야지 하고 찾아보다가, 석파정 서울미술관에 가기로 하였다. 원래는 예전에 퇴사할 때 즈음 한번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가지 못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착한 시간은 대충 12시쯤이었다. 2층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는데, 원래 입장료의 가격은 2만 원이지만 그날만인지 언제까지인지 모르겠으나 3층 공사로 소음이 발생하거나 냄새가 날 수 있다는 이유로 30%를 할인받아 만 4천 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재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회의 이름은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이다.
딱 입장하자마자 볼 수 있는 작품은 추사 김정희의 글이었는데, 본인이 유배 중 아내의 부고 소식을 듣고 쓴 글이라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잘 지내고 있다면서?
이후로도 여러 사람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작품뿐만 아니라 그 화가가 쓴 편지글 같은 것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원래 편지라는 것이 모두에게 공개될 것을 가정하고 쓰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런 편지글들을 보고 있자니 그 화가의 조금 더 솔직한 생각과 감정 같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작품을 보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그렇기엔 내가 너무 이쪽으로 문외한이긴 하지만 말이다.)
잘은 모르지만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화가들과 어디에선가 한 번은 봤던 작품들을 쭉 지나서 이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이중섭의 작품들이었다. 아마 학교 미술시간에 이중섭이란 이름은 거의 다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딱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미술시간에 들었던 게 전부인 사람 말이다. 내 기억에는 '황소'라는 작품이 함께 실려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전시회에는 그 '황소' 이외에도 이중섭이 연인에서 보낸 엽서에 그린 그림부터 나중에 본인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멀리 떨어져 사는 그 아이들에게 그려 보낸 그림과 엽서에 적어 보낸 내용까지 다양하게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중 내 눈길을 끈 것은 '서명'이었다. 작품명 '서명'이 아니라 그림 한편에 적어놓은 작가의 '서명' 말이다.
이걸 서명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중섭의 작품을 보면 보통 작품의 오른쪽 아래에
ㅈㅜㅇㅅㅓㅂ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풀어쓴 서명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작품인 '황소'에도 이 서명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연인과 주고받았다는 엽서에 그려진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도 이러한 서명이 있는데 이 서명이 조금 이상하다.
그렇다 ㅈㅜㅇㅅㅓㅂ이 라니라 ㄷㅜㅇㅅㅓㅂ이라고 적혀있다. 처음에는 그냥 ㅈ을 잘못 적은 줄 알았으나 이 작품과 같은 시기에 보낸 다른 작품에도 ㄷㅜㅇㅅㅓㅂ이라고 분명히 적혀있었다. 이게 뭘까? 이중섭이 아니라 원래는 이둥섭이었던 것일까? 나는 이런저런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ㄷ으로 적혀있는 작품들이 거의 일본에 있는 자신의 연인에게 보내는 엽서에 그려진 그림들이었다는 것에 착안해서 크게 두 가지로 생각을 해 보았는데 하나는 일본인이었던 연인이 '중' 발음을 못해서 '둥'으로 썼다와 다른 하나는 둘 간의 애칭이 둥섭이지 않았을까였다. 전시를 쭉 보면 이중섭이 연인을 정말 사랑했구나라는 것이 느껴져서 나름 일리 있는 추측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쨌든 그 전시 안에 있는 내용으로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주의 깊게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전시를 끝까지 다 보고 4층으로 올라가면 석파정으로 나가 석파정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겨울이라 약간은 황량한 느낌이 있었다. 겨울이 아닌 가을에 단풍이 들면 꽤나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래도 딱 석파정을 나가자마자 보이는 감나무에 감이 풍성하게 열린 게 보기 좋았고, 석파정 내부에 들어갈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키우는 강아지 뒷모습이 귀여웠다. (맹견주의)
그렇게 잘 보고 와서 이 글을 쓰기 전에 이둥섭에 대해 찾아보니 몇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는 친일문학가가 기고한 글에 '중'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그게 싫어 한동안 '둥'으로 바꿨다와 다른 하나는 함경도 사투리로 '중섭'을 '둥섭'으로 불렀고 화가 본인이 아끼던 별칭이라 사용했었다 이다.
그런데 두 개 중에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두 개가 합쳐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이중섭과 그이 연인 둘 사이의 애칭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까지 여기 굳이 적지 않겠다. 어쨌든 그래도 잠깐이지만 나름대로 재밌는 생각을 해본 것 같아 그건 좋았다. 날이 풀어지면 한번 더 방문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