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횡 Oct 30. 2023

'무해하다'에 대한 단상

무해하다는 말은 왜 칭찬이 되었을까?

'무해하다' 


최근에 이 단어를 못 들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유튜브영상의 제목에서부터 TV프로그램 그리고 광고까지 이 단어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으며, 미디어에서 많이 쓰이는 만큼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신조어도 아니고 원래부터 존재했던 단어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용량이 매우 늘어났다는 것이다. 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일까?


먼저 무해하다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무해(無害)하다에서 무해는 한자어로 '없을 무'(無)에 '해 할 해'(害)가 결합된 단어이다. 


뜻을 풀면 해가 없다가 되고 국어사전에 무해하다를 검색해도 역시 '해로움이 없다'라고 나온다. 그렇다. 말 그대로 '해로움이 없다'가 무해하다는 말이 가진 뜻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가 현재 이 단어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몇 가지 예시를 찾아보자.


무해한 생명체

무해한 사이

무해한 웃음


위 예시는 유튜브에 '무해한'이라는 단어를 검색해서 나온 결과들 중 몇 개를 가져온 것이다. 아마 요즘 이 단어를 접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이상한 점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국어사전에서 '무해한'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몇 가지 예시를 보자.


인체에 무해한 것이라~

인체에 무해한 티타늄

환경에 무해한 특수 유기물질


국어사전에 검색해서 나온 예시들은 앞에 '인체에'나 '환경에'와 같은 단어와 함께 쓰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글의 전체적인 내용을 봤을 때 '인체나 환경에 무해하다'라는 의미로 읽히는 문장이 대부분이다. 반면 유튜브에서 찾아본 예시에 인체나 환경을 앞에 넣으면 문장이 약간 어색해진다. 이 두 예시 사이에 이런 차이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유튜브에서 찾아본 예시에서는 '무해한'이 인체나 환경과 관련 없이 어떤 것에 대한 칭찬의 의미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이 '무해하다'라는 말을 칭찬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그래도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 어색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가 누군가를 칭찬한다고 해보자. 칭찬이라는 것은 보통 통상적인 어떤 기준(0)에서 누군가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을 때 하게 된다. 쉽게 긍정적인 것(+)이 존재할 때 칭찬한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 '무해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해로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이것을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면 '부정적인 것의 부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쁘지 않다'라고 말한다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생각해 보자. 분명히 나쁜 의미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칭찬의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애매하다. '잘하고 있다' 던가 '좋다'라는 긍정을 나타내는 말을 두고 왜 '부정적이지 않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는지 그 의도에 대해 괜히 한번 더 생각해 볼 것이다.


'무해하다'도 마찬가지이다. 부정의 부재는 말 그대로 부정의 부재일 뿐 이것만으로 긍정을 표현하기에는 어색하거니와 긍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충분히 많이 있는데도 이런 식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해하다'는사회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 사회에서 특정한 말이 자주 사용된다면 그 말이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해하다'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사회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위 질문에 대한 답은 '무해하다'라는 말을 어떻게 칭찬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보통 칭찬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보다 긍정적임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그래서 부정의 부재를 칭찬으로 사용했을 때 어색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준자체가 변하면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준을 부정적이지도 않고 긍정적이지도 않은 상태로 둔다. 하지만 기준을 부정적인 상태로 바꾼다면? 우리가 존재하고 생활하고 있는 이 사회가 기본적으로 부정적이고 유해하다고 가정한다면 이 부분이 해결이 된다. 부정의 부재만으로도 긍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무해하다'를 칭찬의 의미로 사용해도 어색함이 없다.


결국 최근 몇 년 사이 '무해하다'라는 말이 본래의 의미와는 맞지 않게 긍정의 의미로 쓰인 이유는 그 몇 년 사이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이전부터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이 사회가 전보다 더 위험해지고 유해해졌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긍정을 바라기보다는 부정의 부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 말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사회에 존재하는 위험들이 본래보다 과대하게 포장되어 일종의 상품처럼 유통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현재의 우리가 이 사회를 이전보다 더 유해하다고 느끼는 건 사실이기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무해하다'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재능과 노력에 대한 논쟁은 왜 생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