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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횡 Nov 02. 2023

미술시간에 배운 자유

자유에 대한 첫 생각

자유(自由)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위는 자유의 사전적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내게 자유가 주어졌다고 해서 정말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유라고 말하긴 하지만 분명히 어떤 경계가 존재하고 그 경계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대체 그 경계는 어디일까?


어려운 질문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굉장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자유의 경계선에 대해 우리 대부분은 이미 한 번쯤 생각 정도는 해 보았다. 바로 학창 시절 미술시간에 말이다.


때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미술시간으로 돌아간다. 다음 시간이 미술시간이고 수채화를 그리기로 예정이 되어있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물통에 물을 받아두고 기다린다. 이윽고 쉬는 시간이 끝나자 선생님께서 들어오시고 칠판에 분필로 미술시간 그림 주제를 적어주신다.


주제: 자유


그리고 나는 '자유'라는 두 글자를 보는 순간 멍해진다. '어? 아니 대체 뭘 그려야 하지?' 아마 나와 같이 미술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게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 것이라고 믿는다. 분명 주제가 자유인만큼 그리고 싶은 대로 아무거나 그려도 괜찮을 것 같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멍하게 앉아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려본다.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무난하게 넘길 수 있을까?' '대체 뭘 주제로 잡아야 쉽게 그릴 수 있으면서 선생님에게 아무 소리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자기로 모르는 사이에 자유의 경계선을 찾기 시작한다.


생각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친구들은 대체 뭘 그리는지 슬쩍 한번 봐 본다. 그리고 바로 옆에 앉아있는 친구한테도 물어본다. '너는 뭐 그릴 거야?' 이렇게 대충 주변을 탐색해 본 결과 대다수의 친구들이 자연풍경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럼 다시 고민에 빠진다. '역시 나도 자연풍경을 그리는 게 무난하겠지?' 분명 주제는 자유인데 이런 식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그림을 그려서 내게 된다. 적당히 튀지 않고 무난하게. 이렇게 하면 굳이 머리 아프게 자유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경계를 찾아 더 나아간다.


주제를 고민하느라 완성할 시간이 촉박해진 나는 자연풍경보다 조금 더 쉬운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숲을 그리긴 어려우니 차라리 나무 한 그루를 그리는 게 어떨까?

음... 나무는 가지도 많고 잎도 많아서 생각보다 그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 차라리 저 창가에 놓여있는 화분에 담긴 꽃을 그릴까? 화분도 빼고 위에 잎 하고 꽃만?

여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주위를 한번 또 둘러본다. 주변 친구들의 도화지는 어느새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아 이거 이렇게 그리면 주변 애들이 뭐라고 할 것 같은데...' 아직 도화지에 손 하나 대지 않았지만 주변 반응을 먼저 걱정한다. 이제 경계에 거의 다 와간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또 쓴 나는 더더욱 쉬운 것을 찾아 나선다.


꽃을 그리는 게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네. 차라리 과일을 그릴까? 바구니에 담겨있는 사과가 어떨까? 바구니는 그냥 그리지 말까... 사과... 사과도 그냥 하나만? 아니 잠깐만. 사과 하나 그리는 거면 점을 찍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도화지 위에 크게 점 하나 찍어서 낼까? 음... 점 하나 찍을 바에 그냥 백지로 내는 것도... 잡은 붓을 좀처럼 움직이기 어렵다. 

나는 자유라는 주제 아래에 대체 도화지에 무엇을 그려서 내야 할까? 남들이 하는 대로 비슷하게? 아니면 남들 눈치가 보이는 정도로? 그것도 아니면 정말 과감하게?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자연풍경을 그린다. 그 당시에 나도 자연풍경을 그렸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자연풍경이 아니라 도화지에 점을 하나 찍어 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신이 선생님이라면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


경계에 도달하는 순간 그곳은 일종의 전쟁터로 변한다. 뚫고 나가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의 싸움. 물론 위의 상황에서 내가 점을 찍어 냈다면 그것은 자유를 가장한 방종일 것이기에 받아들여지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방종인지 자유인지는 생각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막으려는 입장에서 구분이 어려운 만큼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자유인지 방종인지 그 기준이 모호할 가능성이 크다. 주장하는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필요하다면 그것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다만 경계를 짓는 것이 어렵다고 하여 그것을 편의적으로 사용해, 다음 미술시간에 다시 자유라는 주제를 주었을 때 반 아이들 대부분이 도화지에 점만 하나 찍어 낸다면 아마 앞으로 미술시간에 자유라는 주제는 영영 사라져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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