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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횡 Nov 27. 2023

신경정신과 첫 방문자 안내서(경증)

사실 그냥 다른 병원이랑 같다.

나의 첫 방문


때는 내가 20살, 막 대학교 1학년인 시절이었다. 2학기가 절반 정도 지나간 10월 말에서 11월쯤 나는 내가 이상한 걸 알아차렸다. 12월 말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음에도 무언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밤에 침대에 누워도 잠은 안 오고 그렇게 밤에 못 잔 탓에 낮에 비실비실거리는 하루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몸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정신. 사실 그 당시에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있어 여러모로 고민이 깊은 시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일이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참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들자, 학교에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내리는 역에서 가장 가까운 신경정신과를 검색해 바로 방문하였다.


그렇게 처음 방문하고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짧게 짧게 서너 곳의 신경정신과를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간단한(?) 안내서를 적어본다.


1. 감기 걸려서 병원 간 것과 다르지 않다.(접수부터 진료 기다리기)

병원에 따라서는 첫 방문 시 설문지 같은 것을 주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접수처에 가서 처음 왔다고 접수하고 그냥 앉아있으면 된다. 처음 방문했을 당시 병원이 밖에서 안이 안 보이게 되어 있어 뭔가 이상한 기대감(?)을 가지고 두근두근하여 문을 열었었는데, 전혀 다른 점은 없었다. 기다리는 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나와 당신하고 비슷하다.


2. 진료도 마찬가지로 감기와 다르지 않다.(긴 상담은 없다. 아마도)

신경정신과라면 의사와 긴 상담 같은 것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내 생각에 아주 낮다. 첫 방문이라면 5분 내외, 재방문이라면 특이사항이 없는 경우 1-2분 정도 걸리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증상의 경중에 따라) 차이가 있고 내가 짧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처음이라면 왜 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증상은 어떤지 등을 묻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30분 이상, 시간단위의 긴 상담을 원한다면 신경정신과가 아니라 심리상담사를 찾아가면 된다. 그럼 신경정신과는 뭐 하는 곳이냐고? 


3. 처방 때문에 간다.(신경정신과 가는 이유)

이것도 감기 걸려 간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감기 걸려 병원 가는 이유가 다 약 받으려고 그런 게 아니던가. 신경정신과도 마찬가지이다. 약 받으려고 가는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약간 차이점이 있는데 약 설명을 다른 병원들보다 굉장히 잘해준다. 각각의 약들이 왜 들어가는지와 어떤 약을 쓰는지 약 이름도 하나하나 다 언급해 준다. 아마 미리 약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오는 환자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신경정신과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약 용량을 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약은 원래 XXmg만큼 써야 하는데 부작용이 좀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절반정도 용량으로 2주 먹어보고 다음에 늘리는 게 어떠냐.' 이런 식이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 그냥 알았다고 하지 않을까 싶다.


4. 약 받기(가장 다른 부분)

보통의 병원이라면 일반적으로 진료 후 다시 접수처 쪽으로 가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무려 약을 그 자리에서 바로 준다! 약국을 따로 갈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료비와 약 값을 함께 계산한 뒤 그냥 바로 집으로 가면 된다.


5. 작용과 부작용 (약 먹으면 어떤가?)

나는 보통 항우울 쪽 하고 잠이 안 와서 수면유도제를 주로 먹었는데 먹었을 때 느낌을 적어보면, 일단 항우울 쪽의 경우 외부 자극에 둔감해진다. 뭔가 사람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근데 강제로 차분해지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는 그게 그렇게 기분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부작용은 내 경우 대부분 구역질하고 소화불량이었다. 그래도 한 3일 안에 좋아지긴 했던 것 같다. 

수면유도제는 뭐 없다. 아마 처음 가서 잠이 안 온다고 한다면 수면제가 아닌 수면유도제를 줄텐데 수면제의 경우 나쁘게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수면유도제도 중독성이 있고 좀 강한 것과 중독성이 없고 약한 것이 있다고 설명을 들었었는데 나는 후자를 택했다. 부작용은 아침에 그렇게 개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얘기를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딱히 그런 느낌이 없어서 만족했었다. (약의 부작용은 의사가 처방 시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리고 개인차가 꽤 있으니 그에 따라 약 용량을 조절하면 된다.)


마무리하며.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신경정신과에 다닌다고 하면 약간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의 병이라는 점에서 감기와 다를 것이 없으며, 신체가 건강한 사람도 감기에 걸리듯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도 언제든지 정신에 병이 들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감기는 증상이 밖으로 잘 드러나는 반면 정신적인 아픔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스스로를 잘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아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닫아둔다면 증세는 계속해서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주저 말고 병원으로 가라. 아픈 것을 그냥 보고 있지 마라. 스스로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날리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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