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설레임 보다 두려움

나에겐 가장 두려웠던 인도 여행 준비

by 반더루스트

새해의 다짐과 막막한 현실 사이에서

2004년 1월,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저녁. 나는 설계실의 21인치 모니터 앞에 앉아 인도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델리에서 시작해 뭄바이로 나가는 루트를 안에 있는 도시들을 따라 이렇게 저렇게 그어보는 가상의 여행 경로, 각 구간의 이동수단 조사, 그리고 설렘과 막막함이 기묘하게 교차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정말로 갈 수 있을까?"


군대도 다녀왔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나이인데, 나에게 인도는 여전히 미지의 나라, 그리고 두려운 여행지이다. 지난 유럽, 친구들과 함께 한 배낭여행은 잠재된 나의 역마살을 끄집어 낸 것 같다. 유럽 여행이 끝나자 마자 나는 뭔가 더 특별하고 강렬하고, 자극적인 루트를 갈망했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인도를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려니 두려움부터 밀려온다. 혼자서 인도를 여행한다는 것이 내 담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영어가 통할까? 안전은 괜찮을까? 머릿속에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동행을 구해보자.

100_0004.JPG 비행기에서 본 서울은 온통 눈으로 덮혀있다. 인도 날씨는 어떨까?


온라인에서 시도한 동행 찾기

네이버 여행 카페에 가입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도 배낭여행 동행 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첫 글을 올릴 때의 긴장감과 설렘이란! 나이, 성별, 여행 경험, 예산, 그리고 인도를 가고 싶은 이유까지 진부하지만 진심을 담아 적었다.

"안녕하세요! 스무 살 대학생입니다.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약 2주간 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요. 델리 입국, 뭄바이 출국, 바라나시, 아그라, 자이푸르 등 경유 예정입니다. 혼자 가기에 막막해서 동행을 구합니다!"

글을 올리고는 하루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봤다. 첫 댓글이 달렸을 때의 두근거림은 마치 첫사랑의 편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막상 연락을 주고받다 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거나, 일정이 맞지 않거나, 혹은 첫인상에서부터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몇 번의 만남과 대화를 거듭한 후에도 결국 함께 여행할 동반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에 올라온 다른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인도에서 살아남기", "뭄바이 역에서의 하룻밤", "바라나시에서 만난 사람들" 같은 제목들을 보면서 기대와 불안이 번갈아 피어올랐다. 어떤 글에서는 인도의 매력과 신비로움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고, 또 다른 글에서는 상상도 못한 위험한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인도는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곳으로 다가왔다.


류시화의 인도, 그리고 나만의 인도를 찾아서

동행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뒤, 나는 다른 방법으로 인도를 미리 만나기로 했다. 바로 책을 통해서였다. 류시화 시인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류시화의 글 속 인도는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그의 여행에는 혼란과 아름다움, 삶과 죽음, 그리고 수많은 인연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갠지스 강가의 화장터에서 느꼈다는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 히말라야에서 만난 수행자들의 철학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인도 곳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순수한 미소들. 그의 경험담은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 하나의 철학적 성찰로 다가왔다.

"여행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과연 나는 인도에서 어떤 나를 발견하게 될까? 나에게, 아직 발견할 만한 깊이나 내면이 있기나 할까?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류시화가 경험한 인도와 내가 마주할 인도는 같은 곳일까? 그가 여행했던 시절과 지금은 분명 다를 텐데, 과연 나도 그런 감동적인 만남을 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인도도 변했을 것이고, 여행자를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101_0108.JPG 델리 공항 도착


불안한 마음과 커져가는 간절함

1월 25일, 여행 날짜는 점점 다가왔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동행을 구하지 못한 채로 혼자 떠난다는 생각이 두려웠다. 부모님은 처음엔 완강히 반대하셨지만, 내 간절한 설득 끝에 매일 안전 확인 연락을 할 것을 조건으로 허락해주셨다.

나는 인도 여행 관련 책들을 더 찾아 읽었다. 『인도 여행기』, 『혼자 떠나는 인도』, 『배낭메고 인도 한 바퀴』 등. 각 책마다 그려내는 인도의 모습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인도가 여행자를 변화시킨다는 점이었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고 했다.

어떤 날은 "그래, 무조건 가자!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까!"라고 단호하게 결심했다가도, 또 어떤 날은 "너무 무모한 거 아냐? 좀 더 준비하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라며 망설였다. 내 변덕스러운 모습에 친구들은 웃었지만, 나에게는 정말로 진지하고 중요한 고민이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리는 큰 결정 같았다.


그리고 용기

두려움에 포기한다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도 실제 여행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테고, 그 순간순간을 헤쳐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혼자 가는 것이 두렵긴 하지만, 어쩌면 그 두려움조차 여행의 중요한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행이 없다고 해서 진짜 혼자인 건 아니다. 인도에서 마주칠 수많은 현지인들, 다른 여행자들과의 짧고 강렬한 만남이, 어쩌면 내 진짜 동행이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혼자 여행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과 진솔한 만남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델리에서 뭄바이까지, 내가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그어본 인도 북부의 그 루트를 따라 진짜로 걸어보고 싶었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고, 타지마할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류시화처럼, 나만의 특별한 인도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23.JPG 2003년 여름, 유럽 건축답사 배낭여행은, 숨어 있던 내 역마살을 끄집어 내버렸다.

출발, 그리고 우연한 인연

여행 출발을 앞둔 지금, 나는 여전히 두렵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움이 기대감보다 클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 뒤에 숨어 있는 설렘과 기대감이 결국에는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떠나기 몇일전 부모님의 지인 아들이 같은 날 같은 비행기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찌 이런 우연이 있다니, 서울 Y대 경제학과 이고 나보다 한살 어린 남자다. 나도 엄청 두려웠으나, 그도 분명 여행을 앞드고두려웠했을 것이고, 우린 그런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는 동지로 만날 수 있었다.


서울 인천에서 얼굴도 모르고 만난 '익수' 성이 '엄'씨 이다. 나보다 등치도 크고 든든하게 생겼다.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지고, 인천공항 출국장은 다시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스무 살의 나에게 인도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취업을 앞둔 마지막 학년, 내가 하고싶은 것 내가 해야할 것들을 찾기 위한 강력한 터닝포인트!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세상과 만나는, 그래서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여행카페에서 읽었던 수많은 여행기, 류시화의 깊은 철학적 사색, 그리고 내 안의 간절한 마음이 모두 모여, 이제 나는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혼자 떠나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놓쳤을 순간들, 혼자이기 때문에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델리 공항은 어떤 분위기일까? 그리고 한달간의 여행이 끝나면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돌아올까? 모든 것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인도야, 나는 준비됐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스물 다섯 살 청춘의 첫 번째 큰 모험이 곧 시작된다.


100_0005.JPG 홍콩에 잠시 경유 중, 델리야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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