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건축학과 3학년, 선택의 기로

3학년 마지막 과제

by 반더루스트


새벽 2시의 설계실


2003년 12월, 갑자기 추워진 겨울 칼바람이 공대2호관 건축학과 설계실의 낡은 창틀을 거칠게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담배를 피러 중정으로 내려갈 때나 그 추위를 느낄 뿐, 새벽 2시의 설계 스튜디오는 마지막 과제 발표를 앞둔 학생들로 빼곡했다. 여러 헬퍼들이 내뿜는 열기로 앉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였고, 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 끝자리 한쪽 노후된 형광등 아래 내 자리에서, 묵묵히 모형을 만들고 있는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과제만큼은 꼭 잘해서 크리틱에서 제대로 된 박수를 받고 싶었다.


제대 후 2학년 1학기에 복학했을 때,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로 나뉜다는 소식을 듣고 "당연히 설계해야지!"라는 마음으로 건축학과를 선택했다. 2002학번부터는 5년제라고 하는데, 나는 4년제로 졸업한다고 했다. 제도 변화 시점의 4년제 졸업이 불이익이 되지는 않겠지만, 요즘 건축설계사무소 취업은 쉽지 않았다. 유명한 아틀리에나 메이저 설계사무실은 공모전 상위 수상 이력이 포트폴리오에 없으면 지원조차 어렵고, 교수님의 추천서를 기대하기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3학년 2학기 설계수업의 마지막 과제. 이제 좀 건축다운 형태를 만들 수 있다고 느꼈지만, 실제 성과물을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공간에 이야기를 겨우 불어넣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정해진 시간 내에 작업하다 보면 결국 박스 몇 개로 끝나기 일쑤였다.


렘 쿨하스, 헤르조그 같은 유럽 건축가들의 세련된 공간, 인상적인 파사드를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은 이미 자하 하디드급이었지만, 마감을 몇 시간 앞둔 상황에서 세련된 디자인을 창조하는 것은 여전히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았다. 극한 상황에 다다를수록 설계가 나에게 맞는 일인지, 차라리 지금이라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약해졌다.

3학년 2학기 설계과제

27시간 동안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형광등 아래 청록색 고무판 위에는 갈갈이 흩어진 스티로폼, 라이싱지, 그리고 거의 중독될 정도로 지긋지긋한 우드락 본드 냄새가 진동했다. 군 제대 후 설계실에서 밤을 새우며, 이번 학기 초에는 공모전 참여 학생들을 위한 설계실인 '꼼빼실'을 배정받기도 했다. 3학년이 되어 학교 앞에서 자취까지 하며 설계에 올인하다 보니 순식간에 2년이 지나버렸다.


누가 보면 쓰레기 더미 같은 공간이지만, 이 장면은 지난 1년간 치열했던 내 시간들을 증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산만한 내 자리만큼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한 짙은 안개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우물 같은 중정의 하늘이 아침과 함께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문득 목덜미에 달라붙는 불안의 그림자를 떨치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새벽을 새우며 그 천장을 몇 번이나 올려다봤던가. 무수한 밤, 모형 더미 위에 얼굴을 파묻고 내일을 걱정하며 떠올렸던 희미한 꿈들. 졸업을 앞두고 그 꿈들은 이제 나를 곤두세웠다. 시작과 끝이 한데 엉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로 같았다.


교수님들의 설계품평회 (CRITIC) 시간, 설계를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기회의 제안


"선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요? 마치 세상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동희의 목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 언제나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는 그녀는 설계조차도 갓 입학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감성으로 대하는 동기였다. 어떤 어둠 속에서도 파스텔 색 빛을 뿜어내는 마법사 같은 능력을 가진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무거운 공기가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너는 준비하는 거 있어?"


"나도 곧 있을 공모전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솔직히 망망대해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야." 동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였다. "지원 선배랑 두호가 우리 정말 특별한 걸 한번 해보자는 거야."


"특별한 것?"


마치 신호를 받은 듯 지원과 두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원은 꼼꼼한 디테일과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우리 과에서 유명했고, 두호는 동갑내기 2학년이지만 건축에 대한 남다른 정보력과 논리력으로 누구보다 앞서는 친구였다. 또한 여러 스킬이 뛰어나 모두가 처음 보는 화려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한 학년 아래지만 그의 작품들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곤 했다.


"어, 벌써 말했나?" 두호가 웃으며 다가와 말을 꺼냈다. "맞아, 우리가 너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두호가 마치 보물상자를 여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두꺼운 파일을 꺼냈다. "UIA 국제 건축 공모전이야. 주제가 딱 우리 부산을 배경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 이거 정말 우리가 그동안 고민해온 것들과 딱 맞아떨어져."


그들이 내민 자료는 마치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장 같았다. 국제적인 규모, 흥미로운 주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네 명이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들이 종이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어깨 위로 현실이라는 무거운 짐이 더욱 단단히 올라앉는 것을 느꼈다.


"마감이 언제야?"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년 3월이야. 시간은 충분해." 동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우리 넷이 힘을 합치면 정말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한 모든 프로젝트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잖아."



다른 꿈의 고백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3학년 때부터 우리는 마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훌륭한 결과들을 만들어왔다. 동희의 따뜻한 소통력, 지원의 완벽을 향한 열정, 두호의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나의... 나는 이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순간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정말 좋은 기회인 건 알겠어. 하지만..." 나는 마치 고백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나는 다른 계획을 좀 세우고 있어."


세 친구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궁금함과 걱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인도로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려고 해. 다음 달에 바로."


"인도? 혼자? " 두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갑자기 왜 인도야?"


"갑작스러운 건 아니야. 사실 꽤 오랫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서 졸업전에 꼭 해야할 것 중 하나였어." 나는 창밖 중정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건축은 모두 서구의 시선, 현대의 언어로만 이루어져 있잖아. 하지만 인도에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다른 방식의 공간 철학이 있을 것 같아. 미지의 세계에서 뭔가 특별한 것들을 찾아 만나보고 싶어."


지원이도 마치 동생을 걱정하는 것처럼 부드럽지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현실적인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을까? 공모전 하나라도 더 해서 수상 경력을 쌓아야 할 텐데, 공백기를 만드는 게..."


"그래 선배!" 동희도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여행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지금은 생존이 우선 아닐까? 공모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취업할 때도 큰 무기가 될 텐데."


그나마 새벽에 과제를 끝낸 이들은 수업 전 이렇게 눈이라도 붙인다.


현실이라는 차가운 바람


그들의 말은 마치 겨울바람처럼 차갑지만 현실적이었다. 2003년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IMF 위기의 극복 과정에 있다. 경제 지표들은 조금씩 회복세를 보인다고 했지만, 청년들에게 닥친 현실은 여전히 혹독했다. 청년실업률은 8.0%를 넘나들고 있었고, 특히 대졸자들의 취업문은 바늘구멍처럼 좁아져 있었다.


건축 분야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건설업계는 신규 채용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앴고, 설계사무소들의 상황은 더욱 암울했다. 정림건축, 삼우설계, 희림건축 같은 대형 설계사무소들도 신입사원보다는 즉시 전력이 될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했다. 그들이 내건 조건들은 마치 높은 성벽 같았다. '경력 3년 이상', '석사 학위 우대', '토익 800점 이상'... 갓 졸업한 신입에게는 넘기 어려운 장벽들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해외여행이라는 선택은 사치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속삭이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취업을 하고 나면,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를 낳고 나면... 언제나 '나중에'라는 달콤한 거짓말로 꿈을 미루다가, 결국 그 꿈은 시든 꽃처럼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조금만 시간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잠시 침묵했다. "이번 주말까지 깊이 생각해보고 답을 줄게."


"물론이야." 두호가 따뜻한 미소로 대답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네 편이야. 다만 후회 없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어머니의 응원


그 주말, 나는 긴장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거실의 따뜻한 온기와는 대조적으로, 내가 꺼낸 인도 여행 이야기는 순식간에 집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어휴, 여행 갔다 와서는? 그냥 준비 없이 4학년을 시작하려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겨울 서리처럼 차가웠다.


아버지는 마치 배신을 당한 것처럼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과 이해할 수 없다는 당황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2003년 대졸자 취업률이 60%도 안 된다는 걸 모르나? 건축과는 더 심각해. 전국에 건축과 졸업생이 몇 명인데, 그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려면 1초도 허투루 쓸 시간이 없어."


어머니가 마치 중재자처럼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애 말도 좀 더 들어보세요. 요즘 젊은 애들은 다들 그런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회사원으로 평생을 살아온 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함께 직장을 잃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수없이 목격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이 몸에 새겨진 채로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야. 여행 같은 사치는 나중에 돈 벌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그날 저녁 식사는 마치 장례식장처럼 조용했다. 젓가락 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만이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아버지 말씀도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어머니의 눈빛에는 다른 종류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엄마는 네가 진정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어. 젊을 때 꿈꾸지 않으면 언제 꿈꾸겠니? 돈 걱정은... 엄마가 용돈 좀 보태줄 테니까 걱정 말고."


어머니의 말씀은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 선택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2004년 새해, 갈림길에 선 시간


시계 바늘이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미래가 놓여 있다. 인도 여행 가이드북과 꼼꼼하게 짜놓은 일정표, 그리고 그 옆에는 UIA 공모전 자료. 각각은 내 인생의 다른 가능성을 상징하고 있다.

어제 어머니가 아버지께 하신 말씀을 조용히 엿들었다. 아버지는 사실 내가 오지로 혼자 여행 가는 것에 대한 불안이 더 크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가 인도 가서 여행 좋다고 안 들어오고 세계를 막 떠돌고 그런다고 그러면 어쩔라고? 내 아들 아니랄까 봐 역마살 있는 거 내가 모르겠나, 에휴."

"여행한다고 돌아다니면 여행 서적 쓰면 되고, 해외에서 좋은 처자 만나면 그래 살면 되고, 자기 좋다는 게 그게 뭐 어때서요?" 어머니의 말씀이 너무 고맙다.


인도 여행은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시도일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답답했던 현실이기도 하다. 늘 부모님 통제하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제한되고,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할 무언가가 바로 "인도 여행"이다.


인도 여행 계획.. 중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