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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베리아의 가르침

가끔의 시선 외에는 놓아두세요

by 윤혜경


자식을 키우는 과정을 돌아보면 아기 때는 잘 먹이고 재우고 안아주면 무럭무럭 매일 자라난다. 서너 살이 되면 아이의 눈에 비치는 하늘과 햇살, 구름, 물과 바람과 달과 별, 꽃과 나무와 동물 그리고도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젊은 날의 엄마는 대답하기가 숨차다.


"엄만 언니가 좋아? 내가 좋아? 나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만 내가 좋아? 동생이 좋아? 나는 엄마랑 있으면 행복해~"

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쌀쌀한 봄 자락 길가 모퉁이에서 삐죽이 노랑을 내보이는 민들레를 가리키며

"저건 무슨 꽃이야?"

"민들레..."

"저 꽃은?"과 같은 물음으로 길거리에서 엄마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엄마, 하늘의 구름은 몇 개야?"

"우리 같이 세어보자. 큰 것부터..."



*입양된 지 수년 동안 멀건하던 산세베리아 덕분에

난생처음 산세 꽃대를 구경한 날 2022 06 01



엉터리 대답을 하는 엄마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끊임없는 질문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은 잠이 들 때까지 하루 종일 엄마와 눈을 맞추고 재잘대며 즐거워한다. 잠드는 침대 옆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살짝 녹음테이프를 돌려주고 일어서려는 순간, 눈을 똑 뜨는 딸아이들의 책 사랑이 그때는 버거웠다. 아이들에게 내어준 엄마의 시간만큼 밀린 빨래와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에 집을 나서는 남편을 위한 아침반찬 준비, 남편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 다림질까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해야 젊은 엄마도 겨우 잠을 잘 수 있으므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오직 행복을 대학 진학과 미래의 직업선택에 걸어둔 부모의 압박 아래 엄마의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에 순응해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그동안 돌진해온 엄마의 시간별 목표가 흔들거리나 보다.


자신의 학창 시절 열심히 쏟았던 공부에의 노력이 다시 자식들 공부의 밑거름이 되고, 그 자식이 튼튼하게 발을 딛고 서는 시간이 오면 부모 중 특히 엄마는 심한 목표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라면 수능일에는 경찰차와 구급차도 수능학생을 실어 나르고, 수능 영어 듣기 시간에는 날아오는 비행기도 하늘에 세워두는 공감대가 형성된 나라이니까... 그 덕분에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인들은 잘 적응하고 선하고 단단했다.


그렇게 자녀들이 독립하고 나면 이미 젊음을 덜어내고 오십견과 친해진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반찬을 만들어 보내거나 손자녀를 돌보는 일로 다시 육아가 시작되기도 하는 시간이 된다.


지나고 보면 어려움으로 미처 손길을 보내지 못했던 친구의 아이들은 더 독립적으로 보인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 학비를 보조해주지 못해 지금도 미안함이 담뿍 담긴 친구의 음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세 아이들은 여간 독립적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정부지원 전문학교에 입학하고, 쉬임 없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비용으로 드문드문 학업을 지속해서 훌륭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찾아갔다. 아직 직장을 다니는 남편과 이제야 한숨 돌린 친구는 그런 연유로 남편이 손주들 선물을 자주 챙긴다고 했다. 친구는 자신들의 생사가 위태롭게 고단했던 시간을 열어볼 때마다 자식 돌봄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엄마, 베란다로 오세요. 빨리....."

장시간 문서작업 여파로 부어오른 어깨 통증을 겪는 엄마에게 옷을 입혀주며 요즘 은혜값는 호랑이가 된 큰 아이가 나를 부른다.

"??????"

"이거 산세베리아 꽃대 맞죠?"

"어머, 어머, 난 처음 보는데... 산세베리아가 꽃을 피운다니?" 나의 호들갑으로 이어졌다.


수년 전 딸아이가 119의 도움을 자주 받곤 하던 시기에 아파트 입구 화단에 누군가가 산세베리아를 뿌리째 빼서 흙을 털고 버려놓았다. 벌거벗겨서 버려진듯한 모양이 보기에 영 불편해서 주워왔다. 있는 화분도 내어놓을만큼 불안정서가 지속되던 나는 햇살이 비치는 앞 베란다 입구의 빈 화분에 헌 흙을 채워서 벌거벗은 산세베리아를 꽂아주었다. 사실 큰아이 병간호에 남편과 나의 8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 화분들과 안녕을 고했다. 화분을 들여다볼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일단 딸 옆에서 벗어나는 일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큰아이의 갑상샘 제거중 실수로 부갑상샘을 모두 없애버린 의사의 손끝에서 영문도 모르는 딸의 자율신경계 이상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여러 병명과 전해질 불균형으로 몸이 마비되고 의식을 잃으며 쓰러지곤 하던...


잘 생긴 편은 아닌 그 벌거숭이 산세베리아는 베란다 입구 귀퉁이에 세워진 화분 속에서 가만히 잘 있어 보였다. 나는 문득 산세베리아의 목이 말라 보일 때 물을 주는 것까지만 했다. 예전엔 계절마다 화분들에 영양제를 갈아 꽂고, 2년마다 봄이면 꽃집의 차가 와서 모두 데려가 분갈이를 해주게 쏟았던 지출과 정성은 성인인 큰딸의 입퇴원이 반복되며 없던 일이 되었다. 집에 있던 다른 화분들도 목이 마르거나 진디들에 물려서 흙을 비워냈다. 그렇게 베란다에는 비어있는 화분 몇 개만 남았다. 그리고 정성과 무관하게 잘 버티는 클레로덴드롱과 외환은행에서 봄날에 무료로 나눠주던 사랑초가 날아다니며 번식을 하여 창가 화분에는 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기온이 내려가던 어느 가을에 만난 산세베리아 입양으로 멋대가리 없이 그저 하늘을 향해 키만 자라는 산세베리아 화분이 2개가 되고... 음이온이라도 나오고 있겠지 하는 위안으로 이들에게 햇살이 들어오는 베란다 입구의 구석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수년 동안 머주대가리 없이 키만 자라던 산세베리아 가족이 오늘 큰 아이의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하나, 두울, 우와... 셋, 넷, 다섯.... 또 있나?"

아예 허리를 낮춰 산세베리아의 여린 꽃대와 눈맞춤을 하는 큰아이는 커다란 화분을 돌려가며 꽃대를 센다. 'lucky seven'을 기대하는 눈치다.

꽃 한송이는 키큰 청소기가 부딪쳐서 떨어뜨리고 마음아팠던...

오래 전 선물 받은 노란 만천홍이 초록잎을 노랗게 만들며 오래 시무룩해 있었다. 그리고 지난 3월에 꽃대가 내밀었다. 노란 이파리를 부분부분 자르고 상처를 알콜솜으로 닦아주었다. 가느다란 꽃대가 길게 자라며 단단해지고, 그 꽃대에 작디작은 꽃망울이 돌아가며 맺히더니 어느새 5개... 첫 번째 망울이 청초하게 수선화처럼 피어난 날 오전, 남편이 모처럼 키 큰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막 펴기시작했던 노오란 꽃망울이 청소기 손잡이에 부딪쳐서 마루바닥에 떨어져있는 모습이라니...


내 숨을 고르고 나서야, 거칠게 지나간 키큰 청소기로부터 살아남은 꽃대가 안전하도록 창가 테이블 안쪽으로 화분을 옮겨주며 들여다보니 꽃대에 남은 망울이 6개나 된다.


"어, lucky seven'이었네.... 에구.... 럭키 세븐인데...."


하며 아쉬워하는 딸에게 나는


"집에서 만천홍이 일곱 개나 꽃 피우기는 힘들거야. 꽃멍울이 생겨도 영양이 부족해서 다 못피워..."

" 다섯 개만 펴도 대단한 거야~**"


했다. 그렇게 위로했지만, 이후 나는 행여 꽃망울이 하나 더 생기는 건 아닌지 만천홍 꽃대를 꼼꼼히 들여다보곤 했다. '럭키 세븐'을 기다리면서...


산세베리아 꽃대를 모두 헤아린 큰딸은 핸드폰을 가져와서 산세베리아 꽃대를 사진 찍어주었다. 가족 모두 난생처음 보는 산세베리아 꽃이라니... 공기정화 화분으로 멀대처럼 키만 큰 이미지의 산세베리아도 꽃을 피울 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그날 우리 가족은 각자의 핸드폰에 멀대 산세베리아의 사진을 담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산세베리아의 꽃 정보를 확인하였다.


자식도 이렇게 키워야 할지도... 사랑이야 넘치지만 절제할 때 산세베리아처럼 독립적으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베이비 스튜디오'라는 전문 사진관에 가서 온갖 옷을 입혀 찍은 사진을 내게 보냈어. 한 달에 한 번씩 아기를 데리고 가서 찍나 봐"


하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진화한 사진관의 영업력과 낮은 출산율, 젊은 부부들의 고액 연봉이 맞아떨어지면서 귀한 아기를 사진 찍는 스튜디오? 들이 성업 중이라 했다.


낯이 선 유행... 나는 또 이렇게 시대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나 보다. 우리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매일 카메라로 웃고 울고 자고 먹고 놀고 싸는 모습을 열심히 찍어서 육아일기를 쓰긴 했다. 작은 딸이 결혼할 때 함께 옮겨갈 짐을 정리하면서 급한 대로 우선 작은 딸의 5세까지의 육아일기와 아기 때의 사진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짬짬이 열심히 정리해서 새아기의 백일에 선물했다. 자신의 성장과정을 참고로 육아 일정에 적응하기를 기대하고...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작은 딸은 자신이 성장하던 수십년 전의 육아일기를 들여다볼 새도 없어 보인다. 어디에 얹어두었는지 기억도 못할 게다. 아기 엄마들의 정보들이 인터넷에 넘치니 잠시 휴식시간에 어디서나 핸드폰을 이용한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 구식 육아 노트를 번거롭게 찾아서 들여다보느니 핸펀 맘카페에 클릭 한 번이면 다양한 경험과 지침이 가지런히 등장할텐데...결국 여전히 육아의 연장선상 감정을 즐기는 나의 만족감에서 비롯되었을 뿐.


'가끔의 시선 외에는 놓아두세요~'


그래서 독립적인 육아를 잘하고 있는 작은 딸에게 행여 구식 육아 엄마의 시선이 무겁지 않도록 산세베리아에게 그랬듯 가끔의 시선으로 조절하는 중이다. 오히려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에서 배울만한 게 많으니... 매일 자라는 아기의 옷과 신발, 침대, 우유병 삶는 기계, 장난감 등을 당근 마켓을 이용해서 유료, 또는 무료로 주고받는 지혜는 참으로 예쁘다. 책과 장난감들은 지자체 구청에서도 잘 소독하고 관리하여 무료로 빌려주니 그곳도 애용 중이라는 젊은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


눈길을 덜 주는 게 꽃대 오르기의 비결임을 읽어내고도 나는 이제부터 산세베리아에 자꾸 눈길을 주게 될 것 같다. 저토록 어여쁜 꽃대 오름에 가끔의 시선 두기라니... 내게는 여전히 어림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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