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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세븐'의 마법을

산세베리아

by 윤혜경


*옆 텃밭 주인인 어르신이 '밭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라고 했다. '밭주인이 왜 자주 오지 않느냐?'는 고마운 조언이다. 자주 못 가지만 마음은 초록 텃밭으로 향하는 날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면 행운에 기대게 되나 보다. 48시간을 꼬박 새워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자료를 마무리하고 미진한 상태에서 2차 심사를 위한 원고 가제본을 학교 자연과학대의 제본소에 맡겼다. 오후에 논문 심사 전에 학교에서 찾기로 하면서도 개운하게 마무리하지 못해서 답답한 마음이다. 사실 가제본 원고는 이미 주말에 교수님들께 발송했고, 추가로 보완 수정한 부분을 넣어 새로 가제본을 하는 거다.


집을 나서기 전에 앞 베란다에 들러서 간밤에 잘 자랐을 화분과 상추를 들여다보았다. 늘 아침은 '굿 모닝~'으로 화분에 담긴 생명들과 눈 맞춤을 하면 호흡이 편안해진다.


"엄마, 엄마!!! 산세베리아 꽃대가 올라왔어요~"

어제저녁에 빨래를 베란다에 널어주던 딸의 환호에 가서 보니 상상도 어려운 산세베리아의 꽃대가 한 개 삐죽 내미는 중이다.


우린 대학원을 다시 다니게 된 이후부터 군자란도 만천홍도 산세베리아도 개화하는 모습을 보면 꽃송이를 세기 시작했다. 아마도 행운을 의미한다고 알려진 네 잎 클로버와 럭키 세븐의 '행운을 찾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어젯밤 큰 아이가 처음으로 발견한 산세베리아 아기 꽃대를 아침 햇살을 받는 시각에 들러보니 제법 여러 개의 가녀린 꽃대가 오르는 중이다. 산세베리아가 꽃을 피우다니... 매일 아침 굿모닝을 나누고도 이렇게 꽃대가 삐죽이는 걸 모르고 있었다니...


생전 처음 본 꽃대라서 확인코자 어젯밤에 인터넷에서 산세베리아 꽃을 검색하니 '행운'의 상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행운....


행운을 의미한다는 산세베리아 꽃대를 두세 개를 확인하고, 새벽 햇살 아래 한 자락이라도 더 찾고자 이른 아침부터 하던 등교 준비를 잠시 멈추었다. 모녀는 산세베리아의 긴 줄기를 이리저리 밀어 세우며 좁은 베란다 귀퉁이에 끼여서 하얀 꽃대를 수차례 반복해서 세었다.


동화 '돼지네 가족 소풍'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이탈하는 새끼돼지들의 숫자를 세기가 어려웠던 '몸치에 숫자 헤아리기치'인 엄마 돼지처럼 무성한 산세베리아 잎줄기들을 요리조리 무리가 되지 않게 조금만 밀어서 움트는 꽃대를 찾아 세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세개에서 여섯 개가 되었다가 7개였는데 다시 세어보니 네 개만 발견되는... 하나만 더 찾으면 7개라는 희망에 다시 세어보면 5개로 세어지고...


'아, 이제는 숫자도 어려워서 겨우 7을 세는 일을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하다니...

논문에 40여 개의 표와 10여 개의 그림에 붙이는 번호들, 끊임없이 교정하는 과정에서 변하는 페이지 숫자들과 반복되는 씨름엔 이유가 있었구나. 숫자 7도 못 헤이는 능력으로 학위논문을 시도하니 무리가 된 거였군' 하는 절망까지 포개어졌다.


사실 내게는 100~ 200페이지에 달하는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은 어설프게 짐작했던 것보다 훠얼씬 고단했다. 먼저 워낙 바쁘신 지도 교수님의 시간을 잘 잡아 맞추어 논문 주제를 의논한 후, 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객관성이 담긴 연구자료들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그에 맞는 제목을 정한다. 제목의 자구와 단어 표현이 사전적 의미 외에도 학문분야마다 그토록 쓰임새가 다르다는 걸 깨닫는 과정을 거쳐서 지도교수님과 논문 제목에 일단 의견 일치를 본다. 중간중간 다른 교수님들과도 논의를 하고 도움을 받는다.


다음에 논문 제목과 주제에 맞게 내용의 범위를 정한 벽을 세우고 논문의 큰 차례들을 정한 다음에 그에 맞춰 추가적으로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고, 검토에 검토를 하고, 최종적인 참고자료를 정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참고 논문은 100편에서 300편 정도를 잘 헤아려 정해서 꼼꼼히 읽으며 핵심적인 선행 논문들을 10편~30편 정도로 압축하는 과정도 있다.


국내 선행 논문들이 많으면 읽기속도가 빠르니 작업이 원할하게 진행될 수 있으나 이번 경우처럼 국내 참고 논문이 거의 없는 새로운 분야라면 모두 해외 논문과 국제기구 통계들을 필요로 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논문을 거의 완성한 상태가 되기까지 매일 스크롤바를 앞으로 굴려 논문의 흐름을 확인하며, 흐름의 본류에서 지엽적인 상황에 빠져서 지류로 이탈하지 않도록 콩 메주처럼 잘 도닥이며 각진 직사각형으로 다듬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내 경우에는 그 과정에서 매일 애를 먹이는 놈들이 바로 '표와 그림의 번호 붙이기'였다. 내용을 읽으며 동료 연구자들이 쉽게 훑어볼 수 있도록 표를 더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도교수님의 조언과 나 스스로도 내용이 자주 캡처되면 표를 추가하고 싶어지고, 추가되고, 키워든 내용탓에 페이지가 밀린다.이와 함께 기존 표의 번호를 차례대로 바꾸어주고, 다시 앞에 있는 이론 설명 부분의 표의 번호도 확인해준다.


혹 다른 연구자들은 마지막에 번호 표기를 하면 간단한 일이라고도 하지만, 내 작업스타일은 거실은 다소 어지러워도 욕실 정리가 아주 중요하고, 속옷이나 양말 등 서랍 속 정리가 잘 되어 있어야 드라마를 봐도 기분이 상쾌해질 수 있는 경우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표의 번호를 써가며 몇 개쯤 되는지, 몇 페이지쯤에 놓여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의 완성단계에서조차 끝없이 반복되는 교정은 오자와 탈자를 발견하고, 표현을 맥락에 맞게 고쳐주고...졸졸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던 생각들이 새롭게 떠올라서 새록새록 즐거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머릿속은 꽤 버겁고 가끔은 과부하가 걸린다.


일단 100페이지가 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한 번에 쫘악 읽어보고 흐름을 타서 이어쓰기를 할 체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하여 무성하게 자란 군집의 산세베리아 틈 사이로 틔워 오르는 가느다란 꽃대가 7개인지를 세는 일조차 '별 하나 나 하나'를 헤듯 실패하는 사건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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