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 너를 닮은 자식이라면

수영놀이와 수영학습

by 윤혜경
2.

초롱꽃 (꽃말: 내성적인 당신, 성실, 충실, 감사, 은혜, 가련한 마음, 고마운 마음)



어려서 인상적으로 들었던 표현이


" 너도 늙어봐라' 나 '꼭 너 닮은 자식 나서 키워봐라"이다.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들은 적은 없어서 그 표현의 절박함을 공감하지 못하고, 드라마의 '가족 다툼' 중 등장하는 표현이니 막연히 부모가 자식으로 인해 과하게 속상할 때 내뱉는 막된 표현쯤으로 이해하고 지냈다.


결혼 후 무자식 상팔자의 결혼생활을 하는 작은 딸의 8년여를 지켜보며 막판에 넌지시 "너 닮은 자식을 키워봐라"는 표현을 두어 번 건넨 것은 사실 내 맘을 늘 벅차게 한 것으로 기억되는 "'너'를 닮은 자식이라면 키우는 걸음걸음 네 맘이 얼마나 벅찰 테고, 키우는 내내 얼마나 예쁘겠니?"의 덕담이었다.


1980년대생인 두 아이를 키우는 내내 잦은 이주와 전학으로 인해 시지프스 신화처럼 공부를 꼴찌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되어 아이들이 산만해지기 쉬운 환경이 계속되었다. 생각 끝에 서울에서 시작된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 시기의 두 아이에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운동과 악기 배움을 권했다. 나라를 바꿔 다녀도 운동과 악기는 이어질 수 있어서 끈기를 키우는 지름길이라는 기대를 품고...


엄마에게 자녀들을 위한 운동으로는 태권도가 더 매력적이었지만, 귀국 직후 국내의 사회문화에도 제대로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태권도 대련 과정을 지켜본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의 두 딸은 발을 길게 뻗어 상대를 차고 공격하는 운동 방식에 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혼자 연습하는 방식의 해동검도를 선택했다. 이마저도 한국에 머무는 3년여뿐이었고 다음에 발령 난 곳에선 태권도도 검도도 배울 곳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운동은 멈추게 되고, 대신 해외의 학교 유치원 시절부터 금요일이면 단체로 이동해서 배우게 된 학교 수영이 유지될 수 있는 정도였다. 시드니의 중학교에서는 학교체육 시간에 먼 거리의 아이스링크에서 아이스 스케이팅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도 늘 어설픈 초급단계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아이스 스케이팅을 배울 장소까지의 이동거리가 가깝지 않아서 그마저도 끊겼다. 그렇게 두 아이를 산만하게 만드는 일들이 줄이어 생겨났다. 시드니의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던 시절에 폐시멘트 덩이로 조성된 거친 화단에서 대학원 동기가 귀하게 건네준 모종을 심어 키운 야생 깻잎으로 자신들의 전학 생활을 비유하곤 하던 두 아이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국내외 양쪽에서 적응 초반에 왕따 당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엄마도 모르게 숨죽여 적응을 하기까지 두 아이는 늘 맛있게 만들어준 엄마 표 음식을 먹고도 복통과 구토를 시작했고 고열이 나며 자주 앓았다. 꽤 길게 이어지는 불길한 징조에 견디고 견디다가 겨우 시간을 내어 수 차례의 내원을 통해서 대학병원의 종합검사를 마치고 난 결과는 '이상 없음, 신경성 증상임'으로 진단되었다.


국내에서 영어열풍이 불어서 학교가 끝난 오후 4시면 온통 노란 색상의 영어학원버스로 동네 어귀가 줄이어 막힐 때 두 아이는 한글도 영어도 초등학생 수준에서 말하는 데에는 불편이 없는 수준이지만, 공부하는 언어 수준으로는 어정쩡했다.


그렇다고 학원에 오래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끈기는 애초에 싹이 틀 환경이 못되었다. 고등학교에 근무했고 중학교 입학부터 대학까지 고된 입시 세대인 엄마의 판단으로 학원 방식의 예습이 두 아이의 장기적인 학습 흥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뒤처진 아이를 받아줄 학원도 귀했다. 모두 앞으로 앞으로 나가며 선행학습 중이었으므로.


학원을 못 가는 대가로 두 아이는 친구들과 학교 밖에서 몰려다닐 기회가 드문 부작용을 감내해야 했다. 그 대신 집에 벽마다 세워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고, 교보문고를 부모와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책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악기 연습을 하기로. 다행히 친한 친구들도 생겨났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참으로 열심히 배운다. 공부도 운동도 악기도... 국내에서 초등학교 5학년 정도면 수영을 접형까지 마스터하는데 1년이면 족하다. 해외에서 2년을 배워도 주 1회 30분... 맨손체조로 몸풀기를 하고 발로 물 차기를 하는 등 앞 뒤로 시간을 잘라먹으면 20여분 물속에서 텀벙대는 게 한국 엄마의 눈엔 아쉬워서 주 2회 레슨을 청하니, 수영코치가 고개를 흔든다. 어깨까지 으쓱이며 아이들이 원하면 보호자가 등록할 수는 있으나, 내 아이 또래의 어린 초등학교 아이들은 주 1회 운동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물론 시드니는 사방이 푸르디푸른 물이 넘실대는 태평양 해변이다. 바닷가에서도 아이들 노는 모습을 멀찍이 앉아 커피를 홀짝대며 구경하고 있는 국산 부모와 달리, 그곳의 아빠랑 엄마는 특히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바닷물 속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바다 수영 솜씨를 보인다. 파도 위에서 아이와 보드를 타고, 윈드서핑을 하고 노니는 늠름한 모습도 흔하다.


그렇다 해도 매사에 '너는 즐거운가?" "너는 행복한가?"에 방점을 찍는 사회에서 굉장한 끈기와 고통과 인내의 스파르타식 연습이 필수인 세계 수영 신기록을 시드니의 선수가 세운 것이 내게는 여전히 불가사의하다. '즐겁게 생활하기'에 습관이 된 사람들 속에 우리나라 선수들처럼 '고통스럽게 열심히 또 열심히' 하려는 어린 선수와 코치가 있다는 사실에...


시드니의 수영장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수영을 즐기다 돌아온 두 아이가 국내의 수영장에서 또래들이 물개처럼 날렵하고 예쁜 동작으로 각을 맞춰서 훈련된 수영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수영이 얼마나 천하태평 스타일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좋아하던 수영마저도 서울에서는 두 아이에게 자신 없게 뒤처지는 부진아동 느낌으로 자리했다. 태평한 사회의 외국에서 2년이 넘게 주 1회 30분 6명이 15미터 거리를 왕복하며 배우고, 겨우 25미터를 자유형 배형 평형 정도로 막 즐기려다가 이끌려온 두 아이는 1년여의 주 3~5회 50분 내내 왕복으로 물개처럼 빠르고 각진 동작으로 내쳐 물을 가르는 아이들에게 기가 죽었었나 보다.


시드니에서 그렇게 좋아했던 수영놀이가 서울에 돌아온 후부터 빠르고 정확한 동작을 요하는 운동인 '수영' 학습이 된 순간부터 두 아이 모두 다시 운동 부진아가 되며, 좋아했던 수영을 슬그머니 밀어내기 시작했다.

친구와 호기롭게 간 수영장에서 나비처럼 어깨를 펼치며 솟구쳐 오르는 또래 친구의 수영폼을 눈앞에서 목격한 두 아이의 접형은 첨벙 대는 수준으로 어설픈 개구리폼도 안되니 열등의식 뿜뿜일수밖에...



*처음 올렸던 글이 다소 길어서 (2)와 (3)으로 나누었습니다. 교재저술작업이 마무리 되면 숨을 고르고, 교정을 더 정갈하게 볼 수 있을것으로 기대해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 사랑과 고독을 품은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