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 사랑과 고독을 품은 관계

평생 애물단지

by 윤혜경

*들장미(찔레꽃이라고도 함. 꽃말 : 사랑스러움, 고독, 7월 15일 탄생화)


부부관계는 결혼해도 이혼해도 무촌이다. 세상에서 거리를 재는 일이 불가능한 가까운 관계이다. 가장 아름답고 예쁘고 좋은 곳들을 함께 찾고, 시작과 마무리를 보여주는 일출과 일몰을 보고... 먹고 자고 즐기며 시간 기억을 쌓아가는... 들장미의 꽃말처럼 '사랑스러움'과 '고독'을 함께 품은 관계...


*카라 (꽃말: 열혈)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젖히고 촌수를 헤아릴 수 없이 온전하게 반쪽으로 받아들였던 사이가 이혼으로 정리되고 나면,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주고받은 날카로운 잽으로 인한 상처에 염증이 엉켜서 말할 수 없이 멀어진다. 이와 같이 켜켜이 쌓인 애증은 사랑으로 맺어졌던 부부를 남보다 못한 관계로 만들기도 한다.


이 세상에 누구와의 관계에서 그토록 숨겨두고픈 사연들을 생판 남인 판사와 변호인 앞에서 낱낱이 들추며, 상대의 인격에 도리깨질을 하고 함부로 심신을 공격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닌 건 아닌 거다. 희망은 헤아릴 길 없고 절망만 쏟아지는 관계는 무촌 관계의 반쪽일지라도 빠르고 과감하게 단절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음을 현대의 심리전문가들이 조언 중이다.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의 흉터까지도 사랑하기!


자녀의 미래를 위해 참고 자신의 삶을 갉아먹기에는 오늘 그리고 지금이 우리들의 삶에 너무도 소중한 나이테가 되므로. 내일은 모르지 않은가? 내일은... 삶이 동서남북 어디로 향할지 조금도 알 수 없는 미래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옛 여성들의 결혼생활 금과옥조였다는 ' 안 보고 3년, 안 듣고 3년, 말하지 않고 3년' 참아내기 희생은 숭고하면서도 안쓰럽기 그지없다. 자녀의 미래를 위한 일방적인 희생이라니... 더러는 소크라테스나 링컨의 전설 같은 얘기처럼 악처를 만난 남성들의 경우도 그러했으리라.


부모 자식관계는 1촌이라는 데 이 또한 사연이 켜켜이 쌓인 관계이다. 얼마 전에 코로나 19에 전염된 가족 구성원으로 인해 건강한 자식이 자신의 직장 근무를 위해 부모 집으로 임시 피신했다는 이야기가 뉴스 언저리에 잠깐 언급되었다.


부모 집에 자식은 사전 연락 없이도 불쑥 들어가는데 부담이 없지만, 결혼하여 독립가구가 된 자녀의 집에 부모가 사전 연락 없이 불쑥 들어가면 울퉁불퉁한 사연들이 속출하기 쉽다. 아들과 딸뿐만 아니라 사위와 며느리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발을 드미는 외부인에 속하는 부모의 불쑥 방문에 심히 당황할 것이므로.


오늘날 연락 없이 결혼한 자녀 집의 현관 벨을 누를 수 있는 간 큰 부모가 몇이나 될까? 부모의 사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자녀들은 연락 없이 부모 집 현관 벨을 불쑥 누른다. 그리고 이들을 맞이하는 부모의 환호를 받으며 부모의 집안으로 당당히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자녀들은 자신들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넘치는 부모에게 그렇게 늘 당당하다.


수입면에서 성공한 연예인들을 앞세워 인기몰이 중인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 후 성공한 자녀가 박 씨를 물어온 흥부네 제비처럼 부모의 보금자리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늙은 부모는 미래의 장밋빛 보험처럼 키워낸 자식에게 일방적인 을이고, 성장한 자식이 갑인 경우가 흔하다.


해외에서 귀국 후 남편 명의로 된 집에 세든 가정의 계약기간 만료가 6개월 후여서 남편과 작은 딸아이가 시댁에 머물게 되었다. 귀국 짐이 도착하고 이사 후에 아들 네가 한 일이라고는 준비한 선물과 식사 대접 정도였으니, 수고로움으로 감사를 표할 길 없는 민폐 자식의 표본이 되었다.


고즈넉하게 두 분만 지내시다가 별안간 40대 중반인 아들의 새벽 출근에 맞춰 일상 리듬이 덩달아 새벽에 시작된 노부모의 상황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아들과 고입을 준비하는 중3 손녀를 시부모님은 반가이 맞아들이셨다.


시부모님께서는 이후에도 아들네 집과는 가까운 거리라서 아들네에서 주무신 적이 없으니 그 민폐는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물론 온갖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해외의 아들네 집을 방문하셔서 한 달 동안 아들네와 동거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이후에는 막내 시동생 내외가 서울에 일터를 잡고 나서 대전의 주거지를 정리하지 않고 올라와 부모님네 작은 방에 임시거처를 정했다. 오래 함께 지내신 시할머니까지 세상을 떠나셔서 방이 여유가 있었다.


모처럼 젊은? 피들과 함께 한 나날들에 부모님의 얼굴색이 환했다. 그리고 이후 일자리를 잃고 실업상태에서 은퇴자가 된 막내아들과 며느리와의 합가 생활에 늙은 부모님이 선호하는 편안한 옷차림은 제한적이었겠지만 대체로 행복해하셨다.


이런 평생 애물단지들이 부모에게만큼은 정말 흥할 자식들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 무조건 "예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