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다음날부터 큰누나는 다양한 증세로 고통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호르몬제는 1일 1회 1정, 고용량 칼슘과 비타민 복합제는 4시간마다 4정씩 1일 4회 총 16정을 복용하는 것으로 큰누나의 퇴원 후 일정이 시작되고, 그렇게 누나네 가족의 일상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칼슘 16정 씩 복용처방은 2~3일 간격으로 1~2정씩 줄여가며 환자가 적절하게 조절하여 몇 개월 후에는 하루에 칼슘과 비타민 D복합제 1정, 갑상선 호르몬 1정 복용한다고 했던가...
큰누나는 수술 후 8년째에도 칼슘과 비타민 D를 1일 7~8정을 복용 중이고 이틀에 한번 추가 칼슘을 복용하며, 손톱과 발톱은 쉬지 않고 끝이 속살을 향해 찢어져서 반창고로 고정하는 중이다. 그리고 다른 여러 약들이 조용조용 추가되어 열다섯 알이 넘는 약을 매일 복용중이다.
누군가는
"가벼운 암 수술이라던데... 일주일이면 누구누구 모두 멀쩡하던데 그 집 딸은 왜 그러지?" 했다. 심지어 같이 지낸 친족도...
엄마는 정말 그이들의 등짝을 때려주고 싶게 노여움이 부글거렸다.
"링거 주사 맞다가 사망한 뉴스 못 들었니?"
하고 싶었지만 약 삼키듯 꿀꺽 넘겼다.
엄마는 쉽게 감정을 노출해도 될 만큼 귀여운 나이가 전혀 아니라고 마음을 누른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평상심을 잘 유지하고 있는 큰누나를 조용히 조용히 지켜보며 소리 나지 않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엄마이고, 속으로는 불안해하는 환자의 보호자이므로.
의료사고의 확률...
엄마의 마음으로는 폐나 신장처럼 양쪽 목에 붙어있다는 기관을 절반 나누어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님 '줄기세포 배양 기술이라도 쑥쑥 자라서 돼지 귀에 붙여 키운 장기처럼 나비 기관을 키워 이식할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을 품었다.
"난 그동안 잘 살았으니, 차라리 내가 아플걸"
하며 슬퍼하는 엄마에게 환자의 아빠는
"그래도 간호해 줄 엄마가 건강하고, 딸이 아픈 게 다행이다"
라고 했다.
자식이 생업과 일상을 포기하고 엄마를 간호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엄마는 생업을 접고 자식을 간호해 줄 수 있는 환경이니 다행이라나.
그래.
그거라도 다행이라면 감사해야 하는데... 누나 엄마는 마음이 참 아프다.
누나 엄마는 십자가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매일 하던 기도를 멈추었다.
누구 하고도 싸우지 않는 여리디 여린 큰딸에게 하필 의료사고를 보낸 신을 향한 기도는 이미 얼음이 된 엄마에게는 불가한 일이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옹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누나는 참 인복이 많다. 서른을 갓 넘긴 큰누나가 수술 후 1년여에 걸친 전해질 불균형과 함께 진단받은 부정맥을 비롯한 성인병들, 그리고 저 칼슘혈증과 고칼슘혈증의 반복으로 급성신부전이 반복되다가 정착된 만성신부전 또한 막막한 병증이다.
신장은 한번 나빠지면 좋아지기 어려운 장기이며, 의료진이나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그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의료진에게 이 환자와 보호자는 참으로 어수룩해 보였을게다.
그렇게 만성신장병 수첩을 들고 매주 들르다가 2주에 1번 혈액과 소변검사 후 전해질 약들을 조절하고, 2주마다 하던 검사가 3주에 한번 또는 2주에 한번 지속되며 약 흡수 상황을 확인하곤 했다. 그러는 중에도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오그라지는 느낌이거나 볼이 저릿 거리면 예약이 밀리는 대학병원보다는 살고 있는 동네의 개업의 내과에서 중간중간 검사를 하여 약을 조절하라고 했다.
누나 엄마는 이럴 때 친지나 형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환자의 의료진이라면 참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 자주 들곤 했다. 모두 일상에 분주한 사람들에게 형제일지라도 일일이 매번 상황을 설명하고 문의하기는 어렵다. 그 대상이 설령 엄마의 또 다른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근무하는 작은누나는 끊임없이 큰누나의 상황을 챙기며,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친구들의 의견을 물어오곤 했다.
늘 초기 임산부처럼 메스꺼움과 울렁거림과 구토를 겪는 큰누나의 음식에 대한 거부로 부엌의 평화가 깨지는 시간조차도 또 다른 누군가의 손길 끝에서 희망의 싹이 움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