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엄마는 아침에 맞이하는 햇살을, 그리고 기분 좋게 들이쉬는 호흡을 누구나 으례 누리는 일로 여겼었다. 큰 딸이 갑상샘 전절제 후 칼슘조절 장애와 자율신경계 장애를 덤으로 얻기전까지는. 119의 도움을 자주 받아 응급실과 응급병동에 머무는 일이 반복되고서야 그동안의 평화가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를 지각하게 된다. 철이 차암 늦게 든 인생이라고 자평한다.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더 힘든 시간들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체로 70세 이상의 연로한 어르신 환자들이다. 얼굴이 많이 노랗거나 창백하거나 치매로 두서가 없는 상황의 어르신들이 요양원에서 병세 악화로 응급실로 수송되어오곤 한다. 술에 취해 싸우다 다친 젊은이도, 별안간 아파서 가족의 부축을 받고 들어온 3,40대들도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최소한 12시간부터 30시간에 이르기까지 대기실 휠체어에서 링거를 꽂은 채 보호자에게 고개를 기대는 긴 기다림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응급실 침대에 눕혀지고 입원 병실로 옮겨지는 큰누나와 달리, 다친 상처의 응급처치만 하고 떠나는 이들이 부러웠던 엄마...
그곳에서는 얼굴에 뽀오얀 솜털이 아직 남아있는 앳된 큰누나는 얼굴이 해쓱한 걸 빼면 환자 내음이 나지 않는다. 기저귀를 차고 있거나 온갖 호스가 주렁 거리는 치매노인들과 같은 어려운 상황은 더더구나 아니다. 응급실 침상의 대부분은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몹시 지치고 고단하게 누워있다.
대기실의 휠체어에 앉아서 4시간쯤 지나 금세(?) 응급실 침대로 옮겨져 큰누나 엄마는 '웬 lotto?"냐고 반긴 적이 있다. 2019년 즈음에 대학병원은 응급실 renovation을 한동안 하더니 침대가 늘어났다. 예전의 '기본 20시간은 족히 기다린 뒤에야 침대를 지정받곤 했던 장시간의 대기실 기다림은 없어진듯하다.
갑상선 전절제와 함께 무참히 사라진 4개의 부갑상선... 예정에 없던 부갑상선 4개의 완전 소실은 전해질 균형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게 되어 외부에서 칼슘과 비타민 D를 넣어주다가 신부전증과 칼슘조절 장애로 의식상실이 반복되고... 이어서 자율신경계 질환을 진단받고, 기립성 빈혈과 부정맥과 심부전이 확인되고... 큰누나는 그때 서른하고 두 살이었다.
적어도 여행을 즐기며 목소리 커진 아내로 늙어가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노후를 꿈꾸던, 대체로 수줍고 가끔 용감한 엄마는 큰누나의 퇴원 두 번째 날 의식소실로 인한 쓰러짐과 함께 엄 마의 노후계획이 수정되었다.
엄마 친구들과의 반짝이는 햇살 속의 만남 대신 누나랑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던 날, 토요일 예술의 전당에서의 명화 전시회 관람이 접어졌다. 그날 이후부터 겁먹은 서른 살 초입의 딸을 단단히 보호하고자 엄마와 아빠는 일상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종합병원과 집을 번갈아 머물며, 내일에 희망을 거는 생활을 수년 동안 유지 중이다.
의식을 잃고 컴퓨터 위로, 침대 옆 램프 테이블 위로, 거실 창가 화분 위로, 샤워실 미닫이 턱 위로 쓰러지면서 가구가 부서지고, 찌그러지고, 화분이 깨지고, 흙이 쏟아지고... 더불어 부상이 잦아진 큰 딸을 위해 엄마는 어린이집 용 두꺼운 메트와 카펫을 욕실과 거실에 펼쳐놓았다. 욕실 메트 색깔은 어린 시절 딸의 선호 색상인 연한 핑크를 골랐다.
TV에서 명의로 소개되는 유명 대학병원 의료진의 수술 집도 후에 큰누나와 가족은 온몸으로 수술 후유증을 겪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흘기고 싶다고 해서, 의료소송을 한다고 해서 변호사의 권유대로 병원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수년 동안 병원에 쌓인 기록을 타 병원에서 MRI CD 올리듯 일일이 올려주지도 않을뿐더러, 수술 후유증의 경우 더더욱 타 병원에서는 문제 환자를 받아줄 의향도, 성의도 없다. 의사의 잘못으로 환자는 문제 환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모든 병원과 의사들이 꺼리는 요주의 환자가 된다.
'두 번째 세 번째 의견을 듣고 나서 수술할걸... 단순하게 의료진의 주장대로 서둘렀는데... '
누나 엄마의 머릿속은 자신의 단순했던 수술 동의 과정에 대한 미련이 가득하다. 착한 학생처럼 순응했던 보호자 노릇의 결과에 대한... 입원실 옆 침대의 70대 노인은 본인도 아들도 딸도 몇 번을 확인하고, 수술 날짜를 바꾸고, 전절제와 반절제를 논하다 결국 나이 지긋한 수술집도의를 청해서 또 같은 말을 반복하고, 병실에서 수술 전날까지 확인 또 확인을 하더니 반절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큰누나 다음 차례에 수술을 마쳤다. 한번 정한 일시와 방법 및 조건을 바꾸거나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일은 누나네 스타일이 아니다. 엄마는 그 폼생폼사의 범생 보호자 스타일을 많이 후회한다.
누나 엄마가
"나비모양의 갑상샘 절반은 남겨서 반절제를 하면 어떨까요?" 문의했을 때
"나중에 재수술하는 경우들이 있으므로 전절제가 간편하다."
고 권하던 수술 담당 외과의 말에 자신의 생각을 삼켰던 그 시간을 후회한다.
큰누나는 3mm의 암으로 추정되는 혹이 자리한 갑상샘 전절제 수술을 받은 후, 다음날부터 호르몬 조절 균형을 잃어버렸다. 전해질 불균형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겪는 중이다.
그 병원에서 근무 중이나 전공과가 다른 지인 의사는 수술 다음 날 누나 경과 차트를 살펴보고 칼슘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나오는 게 좀 걸리지만, 회복과정일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라고 했었다. '수술이 아주 잘 되었고 결과가 아주 좋다'는 수술집도의 말에 감사하며, 커피와 조각 케이크들을 간호사실에 돌리고 가볍게 퇴원 수속을 준비했었던 시간에 품은 희망 조각들은 머리 위를 떠돌아다니는 중이다.
햇살이 밝게 눈부시던 금요일 아침부터 퇴원수속을 알리며
"오전에 퇴원을 할 것이니 점심 주문은 필요 없으세요."
하던 간호사의 조언대로 환자와 엄마 아빠는 점심은 집으로 가는 길에 평화로이 먹는 걸로 기대했다. 마치 일주일 여정의 해외여행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각종 수속을 위해 여러 서류들을 신청하고, 그동안의 치료일지를 요청하고 비용을 지불하였다.
큰 딸을 위해 집에서 가져온 에세이 책들, 세면도구들, 컵과 다과접시, 크기별 투명 플라스틱 용기들, 타월과 보호자용 침낭, 딸을 위한 1인용 거위털 이불 등... 아빠가 병원방문을 쉰 통에 전날 미리 옮기지 못하여 짐이 제법 된다. 잘 챙겨서 여행가방에 세팅하여 한쪽에 세워두었다.
큰누나네의 퇴원 준비가 끝났는데, 입원실에 들른 담당 간호사가 '퇴원환자의 칼슘약 처방이 너무 많다'며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주치의와의 연락을 시도하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른 침대들은 모두 퇴원하고, 시트를 갈고 새 환자들을 맞이하는데... 누나네만 약도 점심도 굶은 채 오후 1시 30분을 넘기고... 돌아온 간호사는 주치의가 그 처방이 맞는다고 한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렇게 금요일 오후의 퇴원이 참으로 늦어졌던 기억, 와중에 환자 앞에서 배가 고파오던 기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