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선 오늘 ‘몹시 추운~’이라고 했지만 공기가 크리스탈 와인 잔의 울림처럼 상쾌한 아침이다.
딸과 엄마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을 뻗어 침대 옆 둥근 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붙들고 일과표를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2년 반 전 대학원 졸업 논문을 마지막으로 검토하던 딸에게 가까운 대학병원의 닥터는 검사 결과를 근거로 “위치가 좋지 않은 곳에 자리 잡아서 크기는 아주 작지만 서둘러서 제거해야 할 암이 발견되었다”라고 하였다. 온순한 딸의 슬픈 눈빛에 엄마인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환자가 내가 아니어서 미안해"
하며 많이 알려진 종류의 '간단한? 질환'이라니
"그만하기에 감사하다."고도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행복을 애써 붙잡으며 전국의 환자들이 모여드는 유명 대학병원으로 갔다.
T.V. 화면에서 본 적이 있어 터무니없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내게 수술집도의는 ‘수술 후 1주일이면 정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건조하게 말하는 수술집도의의 조언대로 졸업을 앞두고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다음날 한번 찾아온 의사는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는 가벼운 설명을 남기고 나갔다. 암을 떼어낸 고마운 의료진들에게 작은 정성 표시를 하고 싶었지만
‘김영란 법이 실행되어 선물은 정중하게 거절한다’고 안내문이 붙었다.
퇴원 다음날부터 딸은 응급실로 실려가며 내게 예상치 못한 낯선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수술 후 2년 반 동안 늘어나는 병명을 이해하기 바쁜 내게 그 병원의 시설들과 잎이 고운 은행나무들까지 내 동네보다 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집보다 편해진 병원이라니...
응급실에 급하게 옮겨질 때면 고마운 구급차가 도착하는 그 짧은 순간에 난 딸이 선호하는 가벼운 1인용 솜털 이불, 타월, 도자기 물컵과 뚜껑, 티슈, 티스푼&포크 세트, 미니 쟁반, 작은 접시, 핸드크림, 책 한 권, 색칠 세트, 그리고 보호자용 침낭까지.... 비위가 약해진 딸의 매스꺼움과 구토를 줄일 수 있도록 입원 준비를 마친다.
응급실 26개의 침상이 만석으로 휠체어나 대기실 의자에서 링거를 매단 채 직각으로 앉아서 20시간 넘게 기다리는 딸의 저려오는 팔다리를 주무르며 엄마인 보호자는 채혈실, 간호사실, CT, MRI, X-Ray실을 동행한다. 비어있는 침상을 향한 마음속의 외침과 다르게 눈만 크게 뜨고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이성적이고자 노력한다. 마음속에선 수술 의사의 멱살을 몇 번이나 잡아챘지만...
대학병원 응급실 건너편에 하얀 사막텐트가 줄 서 있던 공포의 메르스 시절엔 운수 나쁜 날의 연속인 우리 모녀에게 메르스 균이 달려들지 않도록 황사 마스크를 열심히 착용했다. 그 대학병원이 최종 거점병원이었으므로
고 여유를 부리던 담당의는 검사 결과를 손에 든 채 당황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에게
“급성 신부전, 심부전이 와서 70대 노인의 신장 수준으로 망가져있으니 아마도 평생 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고 터무니없는 결과를 전했다.
'의사들이 기도하여 선택받는다던 갑상선 암'일 뿐이었다는데...
겨우 30대 초반의 착하기만 한 딸에게 너무 빠르게 운수 나쁜 날들이 나타나고...
너무 가까이 너무 빠르게 안착한 중증 질환들에 당황한 엄마가 그동안 비상시에 대비해 가지고는 있되, 바쁜 그에게 폐가 될 것이니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던 비상카드를 썼다.
또 오진으로 선문답을 시작했던 응급실 의사와의 황당한 상황을 비상카드의 주인공인 그 병원의 지인 의사 선생님에게 일렀다.
그리고 환자의 상황을 확인한 비상카드의 주인공 덕분에 촘촘히 이어지는 여러 검사를 하면서 병원 가족이 된 듯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렇게 몸상태가 바닥이 된 큰딸은 응급병동으로 옮겨졌다. 마치 내 집에 온 듯 터무니없이 편안해진 마음으로 큰 아이는 주사 줄을 주렁주렁 단채 잠에 빠져들고 엄마는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차가워진 딸아이의 발을 조물조물거리며 몸에 온기가 돌아오도록 노력했다.
그곳에서 24시간 깨어있는 의료진은 혈액 속의 칼슘과 요산 수치를 낮추기 위해 거의 2시간마다 링거액을 바꿔달며, 울음이나 분노 대신 지혜를 구하고자 머리를 차게 식히는 노력 중인 엄마 앞을 바쁜 발걸음으로 지나다녔다.
*기도조차 할 수 없이 가장 힘들 때 썼던 글을 3편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당시에는 수상자가 단상에서 낭독을 하는데 PTSD 트라우마와 병원에 대한 분노로 눈물이 훨씬 많아서 소리 내어 글을 낭독하기는 불가했지만... 상금 덕분에 잠시 즐겁게 병원에 머물던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