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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세상에 너만 아프니?

아프니 더 예쁘다

by 윤혜경
출처: Naver 블로그 *Foot Print' 중에서


"주님, 제가 주님을 가장 간절히 원할 때 주님은 왜 제 곁에 안 계셨나요?

"소중하고 소중한 내 아이야,

네가 가장 힘든 시기에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은 내가 너를 업고 걸은 발자국이란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매일 새벽이면 전공의가 와서 딸아이의 이동 폐 엑스레이를 찍으며 폐에 물이 찼는지 확인했다. 의료 관련 전공을 하지 못한 나는 일주일의 입원 기간을 2번 반복한 뒤에야 원인도 이유도 모르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인터넷을 참고로 형광펜을 그으며, 혈액검사결과지에 적힌 전해질들의 기준 수치와 딸의 검사 결과를 비교하고, 다시 지인 의사들을 찾아가 수치 해석을 듣고 주의사항을 읽었다.


마치 공부하듯이 검사 결과에 형광펜을 그으며 이해하도록 애썼다.

체중이 심하게 감소한 딸의 피아노는 뚜껑이 닫힌 채이고, 딸의 피아노 치는 손가락만 길고 가늘어져서 더 예뻐졌다. 발가락 마디들도 굳은 살이라곤 없다. 운동화파니까....


아프니 더 예쁘다.


발이 예쁘니 샌들 모델을 하자며 모처럼 일어나서 음료수를 가지러 가는 딸을 벽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딸도 그럴 때면 귀찮아하지 않고 힘도 없이 웃으며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정리하고 포즈를 취해주었다.

우린 그래도 행복하기로...


매일 심하게 빠져서 목욕탕 바닥에 우수수한 머리칼들을 보며 반으로 줄어든 머리를 만지작대는 큰딸에게 엄마라는 여자는


'머리가 빠져도 걱정하지 마. 너랑 나랑 머리 색깔이 비슷하니 엄마 머리로 가발 만들어 쓰면 되지. 일부러 모양내기 가발도 쓴다는데 뭐 어때? 아프지만 않으면 되지."


했다.

'묘안'이리며 엄마 머리칼로 가발을 만들자고 늙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머릴 기르기 시작했다. 목부터 재어서 30센티의 길이가 되도록...

그리고 결혼 전 멋내기하던 때처럼 하루 100번씩 빗질을 하고, 난생처음 머리에 마요네즈 올리브 팩을 얹었다.


무섭게 빠지는 딸의 머리카락을 자세 낮춰 함께 보석 줍듯 주워 담다 보니, 이젠 매일 아침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주워 모으는 습관이 생겼다. 심지어 병원 대기실에서 어깨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잡아 수첩 사이에 곱게 끼우는 딸을 보며 이렇게 행복은 만들어가는 습관이라고 생각을 다듬었다.


우린 같은 침대를 쓰고 정해진 시간에 햇볕을 쬐러 나가고, 신장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일정 양의 물을 조심스레 꼭꼭 씹어 마시고, 가벼운 운동을 하며 24시간 사이좋은 자매처럼 붙어 다니며, 서로 지겨워했다. 언제쯤이면...


마침 구청에서 분양한 2.8평짜리 텃밭에 큰딸 이름으로 당첨되었다. 큰딸은 갑상선 항진증 발병 이후 첫 번째 Good Luck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하는 농사에서 상추, 방울 토마토, 깻잎 그리고 비트와 고수를 심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난생처음 흙을 뒤집고 날마다 자라는 상추를 솎아내어 이웃들과 나누었다.


매스꺼움을 줄여주는 애플민트와 고수 덕분에 가끔은 딸에게서 볼 키스 세례의 행복도 얻었다. 내 손으로 키운 야채를 식초와 소금물에 담궈 벌레알을 제거하고 깨끗이 헹궈 먹인다.


생전 처음 고린내 나는 주황색의 부드러운 은행집을 조심스레 주워와서 수고 끝에 외피를 벗기고 올리브유에 살짝 구워 예쁜 초록으로 7알쯤을 식탁에 올렸다. 하루 종일 딸의 맞은편에 앉아 이것저것 먹어 보이며 딸의 식욕을 끌어내려는 시도 덕분에 엄마만 건강해지고 있나보다.


“매스꺼워, 안 먹어, 그만 먹어”


로 60을 앞둔 엄마가 휘청이게 만드는 딸.


이불을 뒤집어쓴 채 음식냄새에 괴로워하는 창백한 딸 앞에


“다음 생에서는 만나지 말자.”


를 입 밖으로 꺼냈다.


“이 세상에 너만 아프니? 더 힘든 사람... 병실에서 못 보았어?”


도 꺼냈다


. “너 때문에 난 친구들과 여행도 못 가고... 그 나이에 독립도 못하고 이렇게 힘들게 해.”


도 날렸다.


그렇게 한없이 모자라는 엄마에게서 모질게 상처받은 딸의 눈 주변이 발그레해진다.


안방을 차지한 두 여자는 밤에는 자주 등을 서로 반대로 돌리고 누웠다.


그러다가 또 응급실로 실려가는 구급차 속에서 엄마는 딸에게 한없이 용서를 구하고, 상상 속에서 자기 입을 때렸다.


엄마는 매일 딸이 눈앞에 안 보이면 이름을 나지막이 부른다. 엄마는 딸이 쓰러지며 함께 넘어지던 가구 소리를 환청으로 들으며, 딸이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던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곤 한다. 조용하면 또 쓰러졌나 싶고, 또 어디를 얼마나 다쳤을까 싶어 엄마의 심장이 머리 뒤통수에서 터질 듯 뛴다.


딸은 24시간 엄마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귓속에서 운다고 했다. 조심스레 내는 소심하고 나지막하게 내는 엄마 부름에 딸은 자신의 심장도 쿵쾅거리기 시작해서 대답을 멈추었다.



*기도조차 할 수 없이 가장 힘들 때 썼던 글을 3편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당시에는 수상자가 단상에서 낭독을 하는데 PTSD 트라우마와 병원에 대한 분노로 눈물이 훨씬 많아서 소리 내어 글을 낭독하기는 불가했지만... 상금 덕분에 잠시 즐겁게 병원에 머물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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