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가 집에 온 후 첫 번째 항의 표현 (온 가족이 잠시 외출 후 돌아오니 안방 화장실의 청소도구를 꺼내서 거실 요가매트 위에 늘어놓았다. )
반려견으로 입양된 '수리'는 우리 가족에게 세 번째 '개'이다.
1997년 시드니 이사 후 한국에서 부친 짐이 도착하기 전에 맞은 첫 크리스마스에 입양한 밤색과 까만색 털의 'Yorkshire Terrier 럭키' 그리고 2005년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작은 아이의 소원이었던 윤기 있는 밤색 털의 Shetland Sheepdog '랄프'에 이어서 이번엔 큰딸이 입양을 결정한, 털이 새하얀 Maltese 수컷이다. 개의 연령을 사람 연령과 비교하려면 강아지부터 노견 정도에 따라서 곱하기 6이나 6.5 또는 7을 곱해서 사람 나이로 환산한다.
몸집이 작은 개의 수명은 동물병원의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정기적인 백신 접종, 그리고 구충약 복용 등으로 근래에는 12-16년 정도 된다.
그러나 도우미견으로 명성이 높은 리트리버와 같이 몸집이 큰 개들은 요크셔테리어 등 작은 개에 비해 대체로 수명이 짧은 편으로 약 8년에서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건강관리가 잘되는 경우에 대형견도 12년 이상 사는 경우들도 늘고 있는 추세이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린다. 특히 슬개골 탈골이나 방광결석, 귓병 등은 일반적 질병에 속할 만큼 많은 개들이 동물병원을 자주 드나들며 수명이 길어지는 중이다.
9살에 방광결석 수술 중 발견된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난 랄프에 뒤이어 19살의 럭키와 이별 후 가족 구성원들은 거의 3년여 동안 지나가는 개 쪽으로는 눈을 주지 않고 애써 담담한 척 지냈었다.
먼저 떠난 개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유기견 돕기 봉사를 시작한 작은딸이 결국 유기견을 입양했다. 작은 딸 부부는 몸이 아파서 숫제 누워 지내는 큰 딸에게 유기견 입양을 권했다.
작은 딸의안내를 받아 경기도 소재의 도우미견 센터에 가서 '수리'를 만났을 때 그곳 관리자는 수리가 8개월째 머물고 있어서 시설의 최장 거주 유기견이라고 소개했다. 3살쯤으로 추정된다는 수리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하기 위해 7을 곱하면 스물한 살쯤의 혈기왕성한 청년에 해당된다.
당시 수리는 분리불안이 심한 편이고 식탐이 좀 있었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등 장점이 많고, 영리하고 눈치가 빨라서 교육효과가 우수한 치료도우미견 후보로 마무리 교육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사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분리불안증세를 아직 치료 중이라 입양 추천은 좀 어렵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큰딸의 건강사정으로 인해 다행히 집콕족이다. 적어도 누군가 한 사람은 집에 머물 확률이 특별히 높으니, 분리불안견에겐 좋은 조건의 반려 가정이다.
짖음은 최대로 적게!
수리는 갇혀있던 독방 우리에서 방문객 대기실에 나와 큰딸과 함께 걷는 동안 주변의 컹컹대는 개들과 달리 짖음이 전혀 없었다. 짖음 스타일도 천성이니 의도적으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 덜 짖는 개 입양'이 아파트 거주에 어울리는 첫 번째 조건이다.
우리 가족에게 수리의 첫인상은 '말없음'이었다. 그곳 개들이 끊임없이 짖어대는 와중에 아주 조용히 대기실의 탁자 위에 엎드려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얌전이' 유기견이었다.
그곳 훈련사의 제안에 따라 훈련이 완료된 까만 푸들을 입양하기로 우리들의 마음이 바뀌었을 때에도 여전히 그 탁자 위에 엎드려서 우리 가족을 힐끔거렸다. 자신을 갇혀있던 공간에서 빼내 준 사람들 쯤으로 생각하는 중인지도.
사실 그곳의 견사는 아주 정갈하게 관리된다. 그날은 더구나 토요일이어서 자원봉사 학생들이 물청소를 하여 견사가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세 개로 나뉜 공간들을 쏘다니며 방문객용 의자 다리에 영역표시를 하고, 가끔은 바닥에 놓아진 배변패드 위에 소변을 보고 지나가는 개들이 행복해 보였다. 그러다가 우르르 마당으로 몰려가서 훈련 시설들 사이로 뛰어다니고, 시이소오 위로 올라서기도 하는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왁자지껄하게 뭉쳐 다녔다.
그 와중에 수리는 잠시 어울려 다니다가 다시 탁자 위나 의자 위로 올라와서 우리 쪽에 눈길을 주었다. 그 눈길에 사로잡혀 온 가족은 입양서류를 세 번이나 다시 작성한 끝에 까만 푸들에서 바꾸어 하얀 말티스 수리를 가족으로 선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