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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네게 반했어~**

이 들길을 지나면...

by 윤혜경
20181012_135958 수리프로필 사.jpg 입양 후 첫 번째 보여준 '분리불안 징후'

요즈음 엄마랑 큰누나는 목요일 밤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병원을 드낙거린 지 7년째인 큰누나의 회복을 지켜주는 누나네 가족들은 너무도 익숙해진 병원생활을 소재로 방영하는 TV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서 거기에 등장하는 연기자들에게


"어쩜 모두 머리가 수재 급이야"


하며 감탄에 감탄 중이다.


언제는 말티즈종 5살인 나, '수리'더러


"아주 스마트한 수재"


라고 폭풍 칭찬을 하더니... 목요일엔, '수재'가 동물매개심리치료견인 나, '수리'에게서 TV 속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게로 옮겨가나 보다, ㅠㅠㅠ.


나, 말티스 '수리'가 큰누나의 교육에 맞춰서 배움을 기억하고 큰누나의 수신호와 언어 지시에 맞춰 행동하면

엄만 내게


"우리 수리는 수재인가 봐~** 어쩜 이리 잘 알아듣니? 어떻게 강아지가 이렇게 재주를 배울 수가 있지? 전생에 한국인이었나 봐~ 이렇게 예쁜 녀석을 도대체 누가 버렸지?"


하며 얼굴도 모르는 나의 예전 주인에게 눈을 흘기며, 닭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나를 위해 엄마가 직접 구운 고소한 소고기 간식을 선물하곤 했는데...


*내 간식인데 난 아직도 기다리는 중....



덕분에 나, 수리는 엄마와 큰누나의 칭찬에 빠져서 큰누나가 가르쳐주는 재주를 열심히 익혀왔다.


이제는

[앉아, 엎드려, 기다려, 뒤로 물러서, 일어서, 만세, 차려, 악수, 하이파이브, 안녕하세요, 돌아, 두 발로 서서 돌아, 굴러, 훌라후프 통과하기, 의자 다리 사이 통과하기, 콩주머니 물어오기, 코~, 쉬잇, 터치...] 등을 헷갈림 없이 잘할 수 있다.


사실 나, 말티스 '수리'는 유기견 센터에서 초반에 이미 영특한 개로 선발되어서 '기본 복종 훈련 + 두 발로 서서 돌기'까지 간단한 훈련을 마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누나네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는 분리불안이 심해서 난 여우 울음을 울곤 했다. 나, '수리'는 여우 울음 덕분에 번번이 입양에 실패하고 그 유기견 센터에서 장장 8개월을 버틴 토박이 유기견 신세였다. 유기견 센터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던, 얼굴이 새하얀 큰누나와 눈을 맞춘 순간 내가 차분해졌던 그때를 기억한다. 큰누나네 가족은 세 차례나 가족회의를 하며 센터에서 권유한 똘똘한 까만 푸들과 큰누나와 눈 맞춤을 한 하얀 말티스인 나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2시간을 머문 끝에 나를 품어주었다. 큰누나의 나에 대한 시선에 가족들이 누나의 의견을 따르는 걸로...


이제 나는 어디에나 큰누나와 동행한다. 병원도 식당도 공원도 학교도... 초등학교 아동의 문해 능력 향상을 위한 동물매개 심리치료 연구수업 시간에 살짝살짝 나의 묘기를 두서너 종류만 보여주면 참여 아동들의 환성이 장난 아니다.


잠시도 의자에 앉아 있기 힘들게 움직거리던 아이들이 내 등을 쓰다듬거나, 큰누나 옆에 서서 누나의 도움을 받아 내게 명령을 내리는 실습 기회를 은근하게 기다리며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모습이 기적 같다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참을성이 '수리' 덕분에 쑥쑥 자란다'고도했다.


학교의 책 읽기 수업에 '읽기 도우미견'으로 참여하는 동안 아이들에게서


"수리는 진짜 똑똑하네요."


를 셀 수 없이 듣는 나, 수리인데...


*큰누나랑 '엎드려' , '굴러' 교육 중인 나, 5살 수리~**



큰누나랑 엄마는 그렇게 영특한 수재로 인정하던 나, '수리'를 소파에 놓아두고, 대신 대사를 외우고 상대와 맞춰서 연기를 실행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에 목요일 밤 오늘은 아주 쑤욱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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