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과 목요일엔 오전 10시에 전화를

저를 가르쳐주세요

by 윤혜경


멀리 계시는 어머니와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뭔가를 같이 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머니와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혹여 어머니 머릿속에 스멀거리기 시작한 치매기운을 몰아낼 수 있을 다양한 메뉴들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게 어머니가 즐기시던 노래의 반주가 가능한 <하모니카 불기>이다.


'어머니의 늙은 큰 딸에게 전화선 너머로 하모니카 부는 법 지도를 하시면 어떨까? '




어린 시절 조그만 짬에도 어머니는 손뜨개질을 하셨다. 손재주가 뛰어나신 어머니 덕분에 가을부턴 터틀넥 스웨터를 입었다. 스웨터의 털실을 풀어서 성장 중인 품에 맞춰 다시 뜨개질로 짜주시곤 했다. 그리고 여름엔 어머니가 좌식 재봉틀로 만들어주신 포플린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었다. 여고시절 가정시간의 수놓기 과제는 꼭 시험기간에 마감이 겹쳐서 진땀 나곤 할 때 우렁각시처럼 거들어주시던 솜씨.


유감스럽게도 어린 시절의 나는 입고 벗을 때마다 긴 머리를 온통 헝클어놓는 터틀넥 스웨터가 편치 않았다. 친구들의 시장표 카디건 스웨터가 부러웠었다. 반대로 친구들은 색배합이 예쁜 내 스웨터를 부러워했다. 여고에 근무하던 시절의 나는 어렸을 때 입지 못했던 앞 트임 카디건을 디자안 별로 색깔별로 구입하곤 했다.


10대까지 입었던 엄마표 터틀넥 스웨터가 참 세련된 디자인이었음을 깨닫는데 30년이 걸렸다. 마흔이 넘어서야 다시 터틀넥 스웨터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쉬는 날이면 특식을 곧잘 만들어주셨다. 덕분에 나의 참깨강정, 들깨강정, 카스텔라, 팥양갱, 김부각, 약과와 찹쌀유과, 고구마맛탕 만들기는 어려서 보았던 어머니 스타일이다.


어머니 방식을 떠올리며 시드니 시절 나의 어린 딸들과 매작과 만들기를 시도했다. 시드니에서 3살 5살이던 두 딸은 외할머니 스타일의 매작과 만들기를 찰흙놀이하듯 재미있어하며 깔깔거렸다. 자신들의 손으로 자르고 뒤집은 밀가루 반죽 작품을 튀겨서 꿀에 굴려주니, 두 아이는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행복해했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 내 어머니는 참 곱고 지혜가 많으며 워낙 부지런하셨다. 외할머니를 똑 닮으셨다. 희생과 헌신으로 자신의 능력을 누르며 살아오신 엄마가 너무 안타까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를 뇌이며 성장했다.


하여 나는 집안일 거들기는 애써 도우미 언니에게 미룬 채 손가락으로 물을 튕기며 책 보기를 즐겨했었다. 학교성적을 좀 높여서 체면치레를 하는 걸로. 돌아보면 참 인정머리 적은 큰딸이다.



요즘 큰아이를 위한 오메가 6과 오메가 3 보충제가 필요하다. 생선 비린내가 강한 오메가 3은 많이 아프던 시기에 신경과 처방으로 복용했다. 길쭉하고 큰 투명캡슐이 목에 자주 걸려서 수저에 짜서 먹곤 했다. 볶은 참깨와 들깨를 스푼으로 먹다가 이제 어머니 방식으로 견과류를 넣은 참깨와 들깨 강정을 만든다.


생참깨와 생들깨를 구입 후 잘 씻어서 새로 볶는다. 금방 다시 볶은 땅콩, 아몬드, 호두, 해바라기씨, 호박씨들과 섞어 엿탕에 굴려 만든 강정을 엄지손톱 크기로 만들어 냉동실에 넣는다. 스무 알 정도의 약들과 함께 매일 매스꺼움이 올라오면 큰 아이는 눈썹을 찡그리며 냉동실의 차가운 강정과 쌉싸름한 결명자 차를 마시며 가라앉힌다. 강정은 칼슘조절 장애 등 전해질 균형 잡기에 어려움을 겪는 큰아이를 위한 위로간식이다.


식은 밥을 프라이팬에 눌려 구운 뒤 그늘에 바짝 말린 누룽지를 기름에 튀겨내면 고소한 누룽지 간식이 된다. 맵쌀가루에 비트와 코코아 가루 등으로 색을 맞춘 무지개떡은 시드니 시절 두 아이의 생일케이크가 되곤 했다. 내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간식들의 대물림이다. 엄마의 삶을 닮을 생각이 전혀 없는 내게 동생들은 '큰언니가 엄마를 가장 많이 닮았어요' 한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잠이 부족하여 자주 눈이 충혈되었었다. 나도 젊은 시절엔 5시간 이상 자는 날이 손에 꼽을 만큼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했었다. 4당 5락(4시간 자면 명문학교에 가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던 1970, 80년대 선생님들의 학생 격려방법) 교육의 부작용일터이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큰며느리인 어머니는 제사나 명절을 앞둔 시기가 되면 퇴근 후 저녁 식사 뒤처리까지 마친 늦은 밤에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 줌의 지푸라기를 구부려 접은다음 재를 묻혀 많은 놋그릇 제기를 손질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하얀 털의 진돗개인 <백스>가 새벽녘까지 엄마 옆을 충성스레 지키곤 했다.


학교 행사도 멋지게 계획해서 일이 많은 교사였던 어머니는 평생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바쳐서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잠을 줄여 헌신하고 희생하는 인자하신 모습으로 내게 새겨져 있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 만 87세이시다. 합가 후 요즈음 같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부엌정리 중인 어머니의 둘째 딸에게


"너는 밥도 안 먹고 부엌부터 치우니? 밥부터 먹고 하지..."


하셨단다. 여동생은 '엄마가 이후에도 비슷한 일을 가끔 반복하셔서 겁이 난다.'라고 했다. 치매검사 결과 아직은 '확인이 안 된다'라고.


피아노를 잘 치다가 30대 중반에 장애와 노인복지 공부를 시작했던 둘째 동생은 어머니께 <어르신용 색칠하기 그림 세트>를 구입해 드렸다. 어머니는 내게 °열심히 색칠 중°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보다 다섯 살 연상이신 아버지는 두 차례의 척추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하셔서 거의 누워계시지만 매일 일지를 기록하시고 기억력 또한 좋으시다고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치매기미까지는 없으신가 보다. 서울 거주 중인 여동생은 아버지의 치매방지용으로 역사소설집을 사드리고 매일 아버지와 통화를 한다.


그런 소식들을 정리하며 시작한 게 <하모니카 함께 불기>이다.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친정어머니와 핸드폰을 켜놓고 각자의 집에서 하모니카를 함께 불기 시작한 지 3주째이다. '어머니' 호칭은 정겨운 느낌의 '엄마'로 다시 돌렸다.


첫날은 1시간 동안 '엄마'의 선곡에 따라 하모니카를 배웠다. 화음을 넣어서 부르자는 '엄마'의 제안에 나는 '초보자라서 아직은 화음 넣기가 어렵다.'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지도해 주십사고 부탁드렸다. 평생 교사였던 '엄마'는 금세 화음 넣기 시범을 들려주셨다. 서울의 딸이 3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거주하시는 '엄마'에게 <하모니카 배우기> 시도이다.


첫날 레슨 후 박자를 못 맞춘다는 큰딸의 엄살을 잊지 않고 '엄마'는 손으로 반주음을 그려 넣은 악보를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초등 3학년 때 도서관 책을 빌려 읽고 독서노트 쓰는 법을 지도받은 이후 육십이 넘은 큰딸이 어머니께 지도받는 기쁨이 크다.


귀가 어두우시니 보청기를 끼우신 '엄마'는 내 소리를 들으시기 위해 양쪽 귀에 핸드폰 이어폰과 보청기를 한쪽씩 끼우셨다고 했다. 보청기 한쪽을 빼니 이어폰은 역할을 못하나 보다. 소리가 잘 안 들리신다고 하셔서 있는 힘껏 하모니카 소리를 내보지만 잠시뿐이고 금세 내 소리는 평소대로 작아지고 만다.


'오빠생각(뜸북뜸북 뜸북새~), 섬집아기 (엄마가 섬그늘에~), 들장미(어린이가 보았네~), 제비(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어버이 은혜(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부모(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를 선곡하셨다.


전날 여동생이 늦은 밤 퇴근 후 노래악보를 복사해 드렸다고 '엄마'는 좋아하신다. 나는 어머니가 노래 제목을 말씀하시면 이미 아는 노래이니 악보준비는 건너고 하모니카로 함께 맞춘다. 어린 시절 노래 화음 넣기를 어머니께 배운 덕분이다.


"오늘은 어떠세요? 아침에 뭐 드셨어요?"


질문으로 일관된 안부전화에서 안부 묻는 방법을 살짝 바꾸니 부모님 안부확인이 이토록 편안하다.


"오늘은 어떤 노래를 하실까요?"


어머니와의 하모니카 합주가 길게 이어지면 좋겠다. 주 2회 하모니카 합주는 제법 효과적인 안부확인 방법이 되고 있다. 끝날 때쯤엔 누워계신 아버지와 화상통화도 가능해졌다.


모발폰을 이용한 소통은 보청기 사용으로 힘드시지만 그래도 고마운 모발폰 덕분에 가능해진 즐거운 안부인사이다. 무사히 지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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