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길, 꽃 지주 세우기는 아버지의 손길입니다.87세이신 내 어머니는 92세이신 내 아버지를 여전히 입속의 혀처럼 챙기신다. 두 분의 2세들은 어머니의 지극정성을 흉도 낼 수 없다. 평생 헌신적인 어머니가 안쓰러운 여동생들은 '아버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을 거야.' 한다.
어머니처럼 생사를 넘나든 2차례의 사고 후 자신의 몸 이동도 편치 않은 건강상태의 남자라면 배우자를 챙길 한 줄의 생각이라도 들까? 어머니는 아버지의 정년퇴직에 맞춰 정년을 5년 앞두고 퇴직하셨다. 이유인즉 '너희 아버지가 어떻게 혼자 집에서 밥을 드시겠냐?'였다.
성장기 내내 두 분의 자녀임에 참으로 감사할 만큼 부모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다. 반듯한 선비 스타일의 아버지와 지혜 많으신 어머니 덕이다. 아버지는 쭈욱 우리 집의 '대원군' 이시지만, 부부 수준을 맞춰서 자주 마음을 개방하려는 시도를 하신다.
심장병과 뇌졸증으로 반신마비를 겪고 계시는 아버지는 혼자서 걷기 어려운 상태이다. 어머니는 요즘 날아가버린 아버지 종아리 근육들을 살리려는 노력으로 아버지와 실내·외 걷기를 하신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혼자 넘어지시기도 한다니 멀리 있는 자식 마음이 불안하다.
정년퇴직 후 두 분은 노인복지관에서 문해교사 자원봉사를 수년 동안 하셨다. 그리고 큰딸의 호주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청소년인 손녀들의 보호자가 되시고자 오셨다. 6개월 후 떠나시기 직전 한국 병원에서 장시간 비행에 대비한 건강검진을 마쳤다. 그리고 귀갓길에 발생한 시드니에서의 교통사고로 폐가 ㅣ/5쯤 줄어들었다. 어머니는 심한 골반부상 후유증까지 겹쳐 숨이 차고 절뚝거리신다. 상대차 고령운전자의 심장발작 사고 결과 피해자가 되어 거동이 불편해지신 어머니의 모습은 큰딸 가슴에 얹혀있다.
노인대학 프로그램엔 참여하실 사이도 없이 오직 집에서 아버지의 식단 챙기기, 보조기 도움받아 아버지와 뒤뜰 걷기, 소소한 필요물품 챙겨드리기, 베란다의 장미베고니아, 색색의 제라늄, 카틀레아, 게발선인장, 국화, 군자란 화분 돌보기, 독서, 아주 가끔 하모니카 불기 등으로 어머니의 하루가 꽉 찬다. 아버지에 이어 보청기를 착용하신 지도 오래되었다.
큰 아이의 아주 작은 암 제거 중 따라붙은 의료사고로 일상이 멈춰 선 9년여를 친정부모님 안부 여쭙기에서 나는 물러섰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던 동생들이 이제는 정성껏 들여다보는 상황이어서 믿는 데가 있었던 탓도 크다. 온 가족의 지원 끝에 이제야 내딸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와서 나도 숨을 돌리고 드리는 안부전화 내용이 늘 싱겁다.
"오늘은 괜찮으세요?"
"아침에 뭐 드셨어요?"
"혹시 드시고 싶은 과일이나 음식을 말씀해 주시면..."
자식이 마치 부모님의 '괜찮지 않은 소식'을 기다리는 듯한 대화여서 전화를 끊고선 늘 민망하다.
닮고 싶은 지성인이신 어머니에게서 치매초기 증세가 언뜻언뜻 보인다는 여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어쩐다?
어머니집으로 합가한 여동생네 가족 덕분에 두 분이 외로움은 떨치셨다고 좋아하신다. 퇴직 후 두 분은 여동생의 가장 어려운 시절에 3남매 양육을 도맡으며 지대한 도움을 주셨었다. 현재 직장맘으로 종종걸음이 일상인 그 동생이 5남매 중 부모님 은퇴 후 시간들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을지도.
궁리 끝에 어머니의 기억력 저하 속도를 줄이고 즐겁기도 할 안부 전화 방법 궁리를 길게 하던 중 한 가지
'핸드폰을 켜서 멀리 계신 어머니께 주 2회 오카리나와 하모니카 배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