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통화
날이 많이 차다. 어젠 눈이 내려서 납작한 어그부츠를 신었다. 이렇게 추운 날엔 연로하신 부모님은 매일 바퀴 달린 지지대에 기대어 시도하는 뒤뜰 걸음 연습도 못 하시게 된다.
90년을 일한 신체가 아직 협조적이어서 여전히 머리 생각을 정리하여 일기를 쓰고, 사리분별이 바르며,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 전화통화가 가능하고, 밥을 자신의 치료받은 치아로 씹을 수 있으며, 보조기구의 도움으로 이동이 가능하시니 감사하다.
불현듯 몸과 물건의 내구연한으로 생각이 옮겨졌다. 행여 부딪치면 우리 몸이 다칠 만큼 단단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의 연한이 비환경적이게도 30년이면 흔적도 없이 부수고 새로 지어 올리는 재건축을 의논한다.
2010년 최신 대용량 사양이던 컴퓨터도 노쇠해서 근래에 새로 구입한 컴퓨터에 서재를 내어주고 논문에 필요한 자료들을 일부만 급히 옮긴 탓에 우선 안방으로 옮겨져 있다.
10년이 지나니 마우스 플라스틱이 녹아 끈적거려서 교체하였다. 방마다 자리한 구입 연도가 다른 컴퓨터의 사용빈도는 다르지만, 고장 나지 않는 한 각 방에서 자리를 지키며 일을 기다린다. 내게 컴퓨터는 세계의 뉴스를 독자평과 함께 실시간으로 전하는 새로운 신문이다.
여러 기관들에선 거의 3년마다 교체한다지만, 내 경우에는 경제활동을 하던 젊은 시절과 달리 쇼핑 정보도 관심도 달라지면서 기존 가구나 전자제품들의 내구연한이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가죽소파도 원목 식탁도 구입 후 20년이 지나면서 사용연한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낡은 모습을 보인다.
궁궐에 가면 대한제국 시절의 제품들도 잘 보존되어 있으니, 나의 가구들도 잘 관리하면 평생 사용할 수 있을까? 일반 가정의 가구들은 역사적 보존 목적이 아니니 지속적인 사용으로 인해 수명이 훨씬 짧아질지도.
소비와 생산, 노동과 가정경제 발전의 기본 경제 흐름에 역행을 시작하는 시기... 의료기술과 과학적인 삶의 방식 덕분에 길어지는 수명에 대한 상념에 잠시 빠져있는 동안 50대와 70대 유명 인사들의 부고가 기사로 올라왔다.
이처럼 건강한 심신이 누구에게나 해당되지는 않지만, 그렇다 해도 사람의 몸은 정말 신기하다. 얼마나 열심히 사용하였던가? 부모님의 경우 90년을 쓰고도 여전히 사고와 소통능력에 더해 이동 능력이 유지될 수 있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부지런하신 부모님은 운동을 좋아하고 규칙적인 일상으로 함께 은퇴 후에도 문해 관련 교육 봉사활동을 하고, 책 읽기와 운동을 즐기셨다. 타고난 건강이나 운명까지는 알 수 없으니, 자식 입장에서는 두 분의 건전한 심신 관리가 감사하기 그지없다.
보고 배운 데로 두 분의 생활습관에서 얻은 팁을 자식들도 자신들의 생활에 유용하게 적용하게 된다. 말이 적은 편인 어머니는 평생 상스러운 낱말을 집에서 가장 편한 자식들에게조차도 입 밖으로 꺼내신 걸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꾸중이 많으셨다.
돌아보니 <후레자식>(부모님을 망신시키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엄격한 가정교육에 매진하셨던 거였다. 어린 자식들 교육방법으로 그 시절 으레 그렇듯이 격려보다는 지적을 통한, 효과가 빠른 교정방법을 선택하신 거다.
아버지보다 센스가 뛰어나고 손재주가 뛰어나신 어머니는 깐깐하신 선비과인 아버지의 심기에 맞춰 평생 몸을 낮추며, 다양한 새로운 음식들을 만들고, 재봉틀로 예쁘게 옷을 만들어 입혀 자녀들의 눈을 높이고, 교직에서 정년퇴직하셨다. 그리고 두 분 모두 운전과 수영을 배워 연로하셔서 그 즐거움을 내려놓으시기 전까지는 젊은 자식보다 더 즐기셨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께
"그 아까운 센스의 여인이 왜 꼿꼿한 성품의 아버지 하고 결혼하셨어요?"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지나치게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교육 방식을 선택하신 아버지는 (본인은 유화 제스처를 시도하고, 노력하셨으므로 억울하실 수도)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하셨다는 일기를 지금도 쓰신다.
굉장히 점잖고, 질서유지를 위한 법은 꼭 지켜야 하며, 행여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은 시도도 하지 않는, 가족에게는 아주 엄하다 못해 대원군 같은 꽤 어려운 성품의 배우자이다.
딸 입장에서는 융통성 적은 성품의 아버지에 대해 온화한 어머니의 일방적인 양보와 배려가 안타깝고 배 아프다. 평생 한결같이 헌신하는 고운 배우자와 함께 노후를 지내시는 복을 타고 나신 아버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보다.
모처럼 7 요일 일정들을 이리저리 밀고 잡아 다녀 하루 반의 틈을 만들어 부모님 방문 계획을 세웠다. 컴퓨터 창에 수능 예비소집일 알림이 뜬 것을 보고서야 '아!' 했다.
수능 참여자들의 원활한 교통수단 이동을 위해 관공서 근무시간을 1시간씩 늦추고, 국제선 비행기도 공중에서 빙빙 돌며 지상 활주로 랜딩을 미루어 영어 듣기 시간의 소음을 삼간다는 대학 수학능력시험... 대학 수학능력 시험은 전 국민에게 매년 뉴스인데...
당황하여 동생에게 확인 후 미안함을 전하고 일정 조절을 의논하니 손사래를 치며
"아무 염려 없으니 오셔요." 한다.
늘 넉넉한 심성으로.
그런 연유로 일정을 다시 조절하는 중, 3주째 연 이틀의 빈 시간을 마련하지 못하여 우선 전화부터 드렸다. 전화통화는 하루 세끼 식사시간을 피하고, 식후 잠시 수면시간을 피하고, 초저녁에 잠자리에 드시니 아침 식사 직후나 저녁식사 직전 정도가 바람직하다. 괜히 머릿속으로 두 분의 일상을 짐작해 보다가 내 일정이 밀고 들어오면 가능한 통화시도를 놓치곤 한다.
마음 같아서는 하모니카, 오카리나, 피아노 연주가 가능한 어머니의 치매예방을 위해 모발폰을 켜고 악기 중창을 주 2회 정해진 시간에 함께 해보고 싶지만 팔순기념 연습 때 함께 한 이후로는 상상뿐이다.
방문 일정을 늦추는 동안 금세 2주기 지나고, 지난 금요일에는 어머니께 그리고 오늘 오전 10:30에는 아버지께 일단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이 여전히 질서가 있게 생각을 표현하시는 지를 딸은 끝없이 판단하며 대화를 나눈 후, 여태 방문을 미루는 데 대해 죄송함을 전하니
"전화만으로도 고맙다."
고 답하셔서 먹먹해졌다. 심장도 폐도 신장기능도 중환자실에서 마음의 준비를 선고받았다가 기적적으로 위기를 겨우 넘기고 보조장치가 삽입된 상태에서 약들의 도움을 받고 계신 아버지께
"그래도 건강하게 계셔서 감사해요, 아버지!"
라는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왜 그럴까? 아버지가 먼저 전화 끊으시기를 기다리지 않은 순간의 무신경함... 제자식. 남에게는 온 힘을 다해 배려하면서...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부모님께는 참 무례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먼저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출판사의 편집 담당자는 참 사려가 깊다. 문득 깨닫게 된 그녀의 배려... 다음번에는 연로하신 <부모님보다 수화기 늦게 내려놓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