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가 어디 있는 거냐?

보청기 두 짝의 힘

by 윤혜경

*2000년 호주 시드니 블루마운틴 리조트 SHOP에서 구입한 다람쥐 모양의 압화 액자와 클레로덴드롱 물꽂이(꽃 말: 행운, 우아한 여성)






친정엄마와 나는 각자 집에서 핸드폰을 켜고 전화로 상대소리를 들으며 하모니카를 연습하려는데 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매일 노쇄해지는 구순 앞의 엄마를 미처 체감하지 못하고 어제 , 오늘, 내일 똑같이 건강이 유지되는 것으로 생각한 내 탓이다.


같은 곡을 4번쯤 반복연습하면 듣기 좋게 매끄러워 좋았다. 평소 이런 여유시간이 없으니 덕분에...


'되풀이 연주가 지루하진 않으신지? 좋으신지 어떤지?' 묻고 싶은데 엄마 답을 듣기가 어려울 만큼 동문서답이 어어진다.


'어떤 곡을 선택할 것인지?' 등 소소한 의논이 필요한 동안 한쪽엔 보청기를, 다른 한쪽엔 핸드폰으로 이어지는 이어폰을 끼신 87세의 염치 많고 젊잖은 '소녀'같으신 내 엄마의 청력이 보청기 한 짝만으론 부진한 모양이다.


그리고 엄마는 악보를 보며 박자를 정확히 맞춰 하모니카 소리를 내셨다. 청력이 정상인 나와 달리 엄만 내 말과 나의 하모니카 음이 들렸다 안 들렸다 하시나 보다. 60대의 백내장 수술 덕분에 맑아진 눈으로 악보를 보시며 전화기 앞에서 하모니카를 부시는 중이라고... 자주 시야가 뿌해져 영어사전 읽기가 어려워진 나는 눈을 수시로 씻어낸다. 논문 정리와 PPT 작업 중 인공누액과 알레르기용 안약을 번갈아 투여하는 일상의 나는 돋보기도 없이 읽으신다는 어머니 상황에 대한 그림이 또렷하지 않다.


'답답하실 텐데,..'

그동안 주 2회, 회당 1시간씩, 총 2주 동안 함께 하모니카를 불면서 엄마의 말씀에 무조건 "네, 맞아요."로 상황을 단순화시키고자 했다. "아니오." 하면 모스 부호처럼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 엄마의 청력 탓에 서로 자신의 말만 하는 짝이 되곤 한다. 내가 배에 힘을 주고 크게 소리 내면 가끔 들으시는 정도이니까. 내 목소리는 내가 의식할 때만 커지고 도로 평소 음성이 되곤 해서 엄마를 답답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엄마가 먼저 부세요"

"나는 네 하모니카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 넌 내 소리가 잘 들리는 거지?"


그렇게 동문서답을 주고받으며 <들장미, 에델바이스, 제비>를 엄마의 선창으로 아슬하게 4회째 '하모니카 함께 불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내가 일이 없는 휴식의 노년이라면 엄마 옆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 텐데...' 같은 가정법을 동원한 상상을 풀어내는 부질없음도 함께 이어지며.




나는 평소에 스피커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핸드폰의 많은 기능들 중 통화용, 카톡 안부 문자, 서류 주고받기 위주로 사용하는 탓에 이중 전화나 통화 중 '다른 기능을 열어보라'는 서비스 직원의 안내 멘트에 당황해서 버벅거리기 일쑤인 수준이다. 정작 ' 핸드폰맹'일 연세의 엄마는 우아한 여인답게 화분들의 개화소식을 동영상에 담아 보내주신다. 대신 오는 전화는 안 들려서 놓치는 일이 다반사이다. 당신의 용무에만 마치 걸어 다니는 공중전화처럼 사용하시는 편이다.


문득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쓰면 보청기를 양쪽에 꽂으실 수 있으니 '귀가 잘 들리실까?'에 생각이 멎었다.


"엄마, 스피커폰을 한번 사용해 보실까요?"

"나는 보청기를 오른쪽에 끼우고 이어폰은 왼쪽에 끼웠다."


절반만 들리시나 보다.


"핸드폰 통화 화면 맨 아래 보시면, 여섯 개의 조그만 그림이 있네요. 보이세요?"

"스피커가 어디 있는 거냐?"


" 맨 아래 왼쪽 맨 아래 스피커 모양 그림 보이세요? 눌러보세요."

"그래. 눌렀다."


성공~^^. 천정 닿게 높인 내 소리가 모발폰을 통과해서 머나먼 곳의 엄마 귀에 도달했나 보다.


"그럼 왼쪽 이어폰을 빼고 보청기를 양쪽 모두 끼우세요. 제 말이 들리나 보세요."

"아이고, 잘 들린다. 어떻게 이렇게 들릴 수 있을까?"


제대로 들리신 건지 확인을 위해 반복했다.


"그럼 스피커를 켜셨으니 보청기를 양쪽 귀에 모두 끼워보세요 잘 들리면 이 방법으로 해보시게요. 제가 하모니카를 크게 소리 내지 못하니 스피커 폰으로도 주변에 시끄럽게 울리지는 않을 거예요. "


아, 드디어 핸드폰의 스피커 덕분에 처음으로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엄마와 하모니카를 같이 불었다. <사랑이여, 한 사람, 꽃동네 새 동네, 등대지기, 바닷가에서, 개똥벌레>


"16분 음표가 많아서 힘들지?"


"도돌이표가 있으니 이 부분은 한 번 더 불어라."


등 엄마의 원격지도를 받으며 내 두 눈이 촉촉해졌다. 나이 탓인지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잘 젖는다. 숨어있는 우울 탓일지도.




오늘은 핸드폰의 스피커 기능 덕분에 보청기 두쪽을 모두 꽂으신 엄마랑 신나게 하모니카를 불다 보니 1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갑자기 편찮으시지만 않으면 좋아하시는 노래를 이렇게 함께 하모니카로 불며 엄마의 '엔도르핀'을 듬뿍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컴퓨터와 모발폰을 개발한 귀재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얼마나 길게 가능할지... 부모의 급가속 내리막길을 나는 내 큰딸의 보호자 노릇에 감겨 24시간 동행하느라 5년이 넘게 외면하는 동안, 매일 부모님과의 이별소식이 오지 않길 빌며 조마조마했다.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느라 오래 시간이 걸려 박사학위를 마무리하며 큰 아이의 건강이 회복되는 중인 이제야 부모님께 정상적인 안부전화가 가능해진 내 정서이다.


고통으로 눈빛이 땅에 머무는 사람에게 "오늘은 어떠냐?, 좀 좋아지냐?"의 일반적인 안부 전화나 인사는 립서비스는 고사하고 답하기 힘든 고문이 되기 쉽다. 그걸 경험하고도 내가 매일 노쇄해지는 부모님께 드리는 안부전화 내용이 "오늘은 어떠세요?, 뭐 드셨어요, "를 빼면 빈곤한 대화가 되곤 한다. 궁리 끝에 나온 즐거운 안부인사가 취미 연결인 <함께 하모니카 불기>이다. 얌전하신 어머니와 어울리지 않게 힘찬 엄마의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면 안부인사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생각이다. 아버지껜 가끔 전화나 동영상 통화로. 모쪼록 건강하시길 부질없이 소원한다.


하모니카 마무리에 내 작은 딸이 보내드린 '돌봄 이모가 찍은 아이동영상' 얘기를 올렸다. 엄마 증손자인 내 손자의 어린이집 소식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평화도 유일하게 평생을 엄마 옆에 살아온 여동생이 있어서 가능하다. 여동생은 서울에서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전문직 사무실을 운영하며, 작년 9월에 엄마네 집으로 두 아이와 함께 들어왔다.


아버지의 코로나 시기의 중환자실 입원과 임종 준비 중 홀로 남겨진 시간들에 겁이 나신 엄마가 동생 부부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엄마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도움을 받는 '윈윈전략' 제안을 내놓으신 거라는데...


거동은 점점 불편해지시지만 기적적으로 퇴원해서 움직임이 가능하게 회복하신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3대가 함께 유지하는 평화의 길이가 길어지길 바라지만, 선한 심성인 여동생의 평정심 유지에 기대는 것 외엔 뾰족 수가 없다. 내 여동생의 세 아이들을 출생 후부터 모두 키워주신 부모님은 성장한 이들과의 유대관계가 더 각별하다. 젊은 시절 가장 힘들 때 부모님께 의지했던 여동생은 남편과 오래 주말부부이다.


검소하신 맞벌이로 평생을 살아오신 부모님은 은퇴 후에도 자식들을 끊임없이 크고 작게 지원하셨지만, 급가속 노후의 병치레 등 물리적인 도움에 의지하느라 자식들의 눈치를 보시며 힘이 없음이 슬프게 읽힌다. 1남 4녀 부모의 의무.... 노쇠한 두 분 부모에 대한 다섯 자식의 의무... 저울로 달 수 없게 기울어진 무게인 부모의 자식 보살핌 의무에 비해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는 부모가 처분만 바라는 약자가 되어 시작되는 모습을 새삼 슬프게 실감한다. 그래도 모두 잘 키우신 덕분에 말할 수 없이 따뜻한 심성의 형제들이어서 다행이다.


서울 대학 병원들에서도 병원외래환자 방문 시 늙은 딸들이 노쇠한 부모님과 편하게 소통하며 출현하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띈다. 요즘엔 복지정책의 향상으로 간병인이나 요양사의 동행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다. 내 부모님은 다감한 아들 부부 외에도 딸이 넷이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스피커폰 덕분에 증손자까지 4대의 안부가 한꺼번에 길게 전달된 날이다. 허리가 불편하신 뇌졸중 환자인 아버지는 안방에서 여전히 누우신 상태로 책을 읽으시거나 주무시는 중이라 했다. 가끔 엄마의 도움으로 일어나셔서 보조기에 의지하여 이동하고, 운동기구에 앉아 운동도 하시나 보다.


딸은 아버지와 전화통화 메뉴가 단순하다. 엄마랑은 이야기가 길다. 딸만 둘인 내 옆지기의 미래일 테다. 서열 대우가 중요했던 아버지 세대보다는 자식들과 더 따스하게 지내고, 자식들을 위한 반찬까지도 만들어내는 옆지기이지만, 그래도 두 딸은 '엄마'를 훨씬 더 자주, 많이 입술에 올린다. 먼 곳의 엄마와 핸드폰 통화를 끝내고 나면, 나는 늘 우리 부부의 멀지 않을 막막한 미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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