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의 세탁기는 세탁통 옆에 탈수통이 따로 있는 2조 세탁기로 3.5 나 4kg 크기였을 게다. 당시 전자제품은 압도적으로 금성 Gold Star였다.
우물가에 모여 빨래를 하는 시대를 어린 시절에 지나온 내게 대신 세탁하고 물기를 꼭 짜서 내놓는 기계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그동안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도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요즈음 TV에서 보여주는 연예인들의 아파트가 워낙 넓고, 젊은 커플들도 방 2개짜리 신혼집을 답답하다고 한다지만 1970~80년대에는 대표적인 아파트촌이었던 서울 잠실에 13평, 15평, 17평의 주공아파트가 대세였다.
우린 감나무와 군자란 그리고 입구에 채송화, 코스모스 들이 있어 사철 실내외에 꽃들이 있었던 단독주택이었지만 겨울엔 추웠다.
단독주택에서 이사하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신 잠실 외가는 연탄 난방의 17평으로 부엌도 따뜻한 실내이고 방이 3개였다.
이불과 요를 사용하니 가능했을 방 3개가 17평 아파트에.침대가 없으니 명절이나 제사 또는 방학때도 방문객들은 바닥에 나란히 깔린 요 위에 누워 한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던 시절.
정부에서 분양한 공무원이나 군인 아파트는 13평이 기본이었다. 군인이셨던 외삼촌 댁은 전방근무와 발령지를 따라 전국을 다니면서 13평에 거주하시곤 했다.
남매를 키워서 아들은 육사를, 딸은 약대를 나왔다. 상대적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현실감 없는 남의 집을 과시하는 TV 프로그램에 시달리지 않던 시절이다.
아침마다 요와 이불을 개켜서 수납장 안으로 넣고 가벼운 청소 후 온 가족이 모여 아침상을 맞이하고 학교로 일터로 출발하던 시절은 햇살이 안방에 들어오기 시작한 시간을 음미할 수 있었다. 먼지알갱이가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햇살에 춤추는 모습이 보이던 시간들.
보다 진화된 생활에서 세탁기를 욕실 바로 앞 거실 벽에 바짝 붙이고, 배수호스는 욕실 안쪽으로 내려놓아 탈수를 하면 물이 욕실 바닥의 배수구로 졸졸 흘러갔다.
즉 세탁기가 돌아가는 1시간여 동안에 욕실이나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은 호스 지름만큼 문을 열어 둘 수밖에 없다. 물론 세탁이 다 끝나면 물이 빠진 배수 호수를 사진처럼 세탁기 옆구리의 상부에 배치된 구멍걸이에 걸었다.
아주 훗날 물놀이 하던 리조트에서 틸수기에 수영복을 넣어 돌리노라면 그 탈수기가 마치 2조 세탁기에서 탈수통만 빠져나온듯 해서 정겨웠다.
(출처: LG 사이버역사관 공식 홈페이지)
혼수용품이었던 2조 세탁기는 결혼 4년 만에 220v 60Hz의 서울에서 240V에 50HZ의 호주로 이사하면서 아래층에 내놓았다.
누군가에게 도움 되었기를.호주 시드니 번화가의 two-bedroom 아파트에서는 서울보다는 조금 큰 5kg 일본산 세탁기로 구입했다.
시드니의 식기세척기
1989년 당시 집 앞 유아원에도 우리 집에도 이미 식기세척기가 설치되어 사용 중이었다. 앞에서 문을 여는 식기세척기창으로 비친 물이 찰랑이는 소리에 나는 소심해졌다. 실내에 온통 카펫이 깔려진 아파트에서 카펫 위로 물이 쏟아질까 지레 염려하며 처음 몇 차례 서툴게 사용을 시도해보았다.
교민 지인들은 식기세척기에는 주로 접시를 꽂게 만들어져있는데 우린 국과 밥, 그리고 국물 김치를 담는 보올 등 속이 움푹한 그릇 위주여서 우리 식기는 속이 깨끗하게 안닦인다고도 했다.
결국 설거지를 모아서 한꺼번에 세척하는 식기세척기 방식도 편치 않아 그때그때 국그릇과 밥그릇을 말갛게 손으로 설겆이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도 그곳에 사는 동안 식기세척기의 내부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주 1회 운동시키듯 돌려주곤 했다. 식탁에서 책을 들고 앉아 물이 흘러나오는지 지켜볼 수 있는 시간에.
2년 후 이사한 곳엔 다행히(?) 식기세척기가 없었다. 두루미와 여우 동화처럼 두루미 스타일의 국 그릇과 같은 식기에는 접시를 주로 사용하는 여우 스타일 식기를 위한 식기세척기가 안맞다는데 공감했던 시절이다.
후일 서울에서 만난 드럼 세탁기는 통돌이 세탁기에 익숙한 내게 시드니에서 만난 식기세척기처럼 앞에서 문을 열어 작동시키게 되어서 참으로 신기했다.
1990년대 후반의 통돌이 세탁기
결혼 10년째에 귀국해서는 세탁조와 탈수조가 통합되어 1개 공간으로 구성된 통돌이 세탁기를 구입했다. 가정용은 용량이 5kg 이내로 비슷해서 오늘날처럼 크기에 따른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 않았다.
이쪽저쪽으로 센 물살의 흐름에 휘둘렸던 세탁물이 탈수 시 엉킴이 심해서 섬유 손상 문제 해결이 과제였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세탁물이 덜 엉키게 가운데 세탁봉이 우뚝 자리를 잡은 봉세탁기 광고가 대단했다.
탈수가 끝나고 뚜껑을 열면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 세탁물에 비해서 봉을 중심으로 감긴 세탁물은 꺼내서 툭툭 털면 대체로 엉킴이 풀렸다.
시드니에 함께 간 통돌이 세탁기(출처: https://live.lge.co.kr/60th_history05/)
나는 두 번째 해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수신시스템이 전혀 다른 TV나 좌측 통행도로에서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는 자동차는 새로 구입해야 했다. 그렇게 3~5년마다 국내외에서 신혼살림처럼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새로 구입한 셈이다.
그러나 두 번째 해외발령 때는 국내에서 4년 동안 잘 사용한 통돌이 세탁기를 버리지 않고 배로 운반하는 이삿짐에 넣어가보기로 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 전자동 통돌이 세탁기는 Hz가 다른 나라에서 가끔 자동 물 조절에 실패해서 넘칠 때가 있었다.
2층 단독주택의 1층 세탁실 내에 위치한 세탁기를 작동 후 자주 1층까지 내려가서 지켜보며 책 읽는 시간을 벌었다.
한국에서 데려간 세탁기는 기대 이상으로 신통하게 작동했다. 그렇게 4년을 꼬박 해외에서 국산세탁기는 역할을 다했다.
그곳에선 잔디밭 한 편의 우산대처럼 돌려서 높이를 조절하는 야외건조대에 빨래를 말리는 즐거움이 컸다.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