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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llara Jan 20. 2024

날 버리고 가면 어떡해

어째 그랬누



몇 시에 도착하세요


새해 나흘째 되는 날 우리 가족이 친정방문을 위해 공항에 닿을 때까지 전날밤부터 여동생은 몇 시 도착인지를 알려달라고 늙은 언니에게 계속  모발폰 메시지를 넣었다.

마치 내가 컴맹으로 물정을 모르는 노인인양.


'동생아, 나는  '리딩독 학위논문' 을 국내에서 두번째로 쓴 사람이야. 아직은 눈 밝아.

제노도 있고'  

마음속으로만. 


사실  소문난 길치라서 동생의 염려도 일리가 있다.


 "카카오 길 찾기를 이용해 볼게. 이번엔 길거리를 모두 구경하며 집에 가볼 테니 걱정 마'


주말 서울의 형제들이 번갈아 부모님을 방문할 때마다 KTX를 이용해 도착하면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직장맘인 여동생이 차로 50여분 거리의 역까지 마중 나가고 전송할 것이다.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인 남자조카가 주말엔 쉬니까 근무 중인 여동생대신 나를 픽업하겠다고도 했었다. 내 대답은 늘


'농농(No! No!)'


친정가족은 원래부터 그래왔으니까. 내가 어린 두 딸과 1989년 해외로 첫 이주 시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에 더해 막내 외삼촌 가족들, 작은아버지 가족들 등 근무지인 지방에서조차 봉고차로 공항에 오셔서 민망했을 만큼.


이번 방문에서는 적어도 나는 세 사람이나 가니까 안전하고, 부모님을 돌보며 사는 여동생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싶은데.


여동생 입장에선 아픈 조카와 함께 내려오는 큰언니네 가족 도착을 자신의 사무실에서 앉아 기다리는 게 편치않나보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책임자인 동생이 진상고객과 통화를 해야 하는 처지임을 내가 보았는데도. 동생마음은 그러나 보다.


몇 번이나 <No prob> 답신을 보냈다.


동생의 답변은

"사무실에서 공항이 가까워서 금방이에요."

"ㅠㅠ"

가 반복되었다.  


내가 길은 잘 모르지만, 전혀 가깝지 않을게다.



모처럼 쓸만한 고집


*레몬 꽃(11월 12일 탄생화. 꽃말 : 진심으로 사모함. 출처: 꽃나무애기Band)



젊은 시절에는 새마을호나 고속버스로 역에 도착하면 친정동생이나 부모님의 승용차 마중을 받거나,  기습방문 시에는 택시를 이용했었다.  처음으로 우리 셋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공항에서부터 부모님 댁까지 가보기로 했다. 사실 브런치스토리에 누군가가 올려놓은 여행 후기 덕분에 우리도 시도해 보기로.


모처럼 고집을 부려서 세 사람은 공항에서 깨끗하게 단장된 지하철을 이용해 시내 중심가에 내렸다. 그리고 큰딸이 미리 복사해서 준비해 온 여정표를 보며, 부모님이 계신 아파트를 지나간다는 버스를 탔다.


 'Daum 다음'에 '출발지'와 '도착지'를 넣으면 도보부터 대중교통, 승용차 이용까지 걸리는 시간이 나오고,  환승 여정이 꼼꼼하게 표시된다.  참으로 편리한 우리나라의 체계적인 길 안내 시스템에 굽이굽이 감탄 중이다.


지방이지만 저상버스가 눈에 띄게 자주 지나갔다. 오전 10시 30분에 지나가는 버스들은 한결같이 전신샤워를 마치고 금방 나온 듯 깨끗했다. 역에 설치된 버스시간안내 전광판도 크고 깨끗했다.


정류장 대기 의자는  바깥 기온에 맞춰 차가웠다. 서울의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겨울용 방한시설의 의자들은 길을 지나던 어르신들이 추위를 피해 앉았다가 갈 만큼 따뜻하다.


우린 두 눈을 바쁘게 두리번거리며, 변화 중인 도시를 버스로 가로질러 이동했다. 참으로 즐거운 일정이다. 서둘지 않고 물 흐르듯 순리대로 가는 시간여유, 이 평화로움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그렇게 버스정류장에 내려 200미터 정도의 거리를 '카카오내비'를 켜고 따라갔다. 허리가 아파서 자주 멈춰 서느라 걸음이 느린 남편은 어느 순간 시야에서 멀어졌다.


남편보다 4년  젊은 나와 큰딸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며 먼저 친정 아파트에 도착했다. 반가워하시는 부모님과 허그를 하고, 마주 잡은 손을 풀지 않고 서서, 남편이 도착하면 함께 새해인사를 드릴 요량이었다.   




나를 버리고 가면 어떡해


별안간 내 모발폰이 울렸다.


"나를 버리고 가면 어떡해? 나는 길도 모르는데?"

"예? 워낙 길눈이 밝은 사람이라 알고 오는 줄..."

"도보 찾기는 처음인데, 사람이..."


서울쥐인 그 남자의 서운함 무게가 핸드폰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현관벨이 울렸다.


'모르지 않네. 커다란 남자가 엄살은 쯧-'


속마음과 달리, 아내로서 반가움을 연출했다.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들떠서 걸음이 빨라졌나 보다.

얼음을 깜박하고 안 채우고 와서 음식이 상할까 봐 빨리 냉장고에 넣으려고... "


"어째 그랬누?"

친정 부모님도 얼른 사위 편을 드신다.


옹색한 이유가 길어진다.

친정에 가는 길이라고 나는 경보로 날아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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