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llara Jan 21. 2024

너라고 다르지 않아

구순의 부모님


내가 알아서 할게


도착 후 우리 셋이 친정부모님께 새해인사를 드리고 일어서는데, 내 핸드폰이 울렸다.


근무 중인 여동생의 전화이다.

'자신이 대표이니 눈치를 덜 봐도 된다고.

특별한 경우라 괜찮다'라고.  

'오겠다'는 것을

만류했었다. 


괜찮지 않음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가 평일을 선택한 이유이다.


"언니,

그럼 점심식사를 주문할게요.

뭐가 좋을까요?

양식, 한식, 중식"


"내가 알아서 할게."


곧바로 엄마의 전화가 울리고 엄마가 응답하셨다.


"내가 돌솥밥 정식을 주문하마."


다시 여동생의 식사준비 의논전화다.

어쨌건 나는 부모님과 합가 한 여동생에게 민폐 중이다.


여동생도 엄마도 맛집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싶어 했다. 이번엔 나도 지난번처럼 음식재료를 엄마네 냉장고에 넣어두고 떠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 집이 먹을만해.

내가 배달은 잘 알지 못하는데  그 집은 가끔 주문해 본다."


"엄마,

이번엔 내손으로 식사 한 끼 차려드릴라고 내려왔는데, 배달음식 드시게 하면 내려온 보람이 없죠."


평상시보다 더 부드럽게 키위와 파인애플을 함께 넣어 재운 구이용 LA 갈비를 꺼내서 프라이팬에 올리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 끓였다. 불고기 전골처럼.


그리고 아버지가 드시기 쉽게 고기에 칼집을 자잘하게 추가했다. 잘 익은 고기를 따로 빼어서 접시에 놓아두고, 남은 국물에 감자를 납작납작 썰어 넣어 같이 익혀주었다.


마지막으로 먼저 꺼내어 두었던

LA 갈비를 다시 넣고,

어슷 썬 양파를 추가하여

고온으로 빠르게 끓였다. 

물엿 약간과 참기름으로 마무리.

은 참깨  한 꼬집 솔솔.


집에서는 노오란 '유자껍질청'과 초록 매실장아찌를 한쪽에 놓아주면 더 상큼하다.


무엇보다도 치아가 부실한 상태인 아버지께서 잘 드시며 연신 말씀하셨다.


"참 맛있다."


죄송하고 눈물나게 좋았다.


"내가 주문한다니까.

 힘들게 내려온 네가 기어이 일을 하냐!"


구순을 앞두신 엄마는 60대 큰딸이 부엌에 서있는 것을 아까워하신다. 절뚝거리는 당신은 지금도 아버지를 위해 부엌에 서신다.


'움직임이 적으니 입맛이 없어. 점심은 건너뛴다."


분은 모처럼 점심을 드신다며 과식을 했다고 하셨다. 덕분에 내 어깨도 쫘악 펴졌다.


저녁은 엄마가 찜하셨던 그 돌솥밥 정식을 주문해 주셨다. 듣던 대로 맛있었다. 겉절이 배추김치는 부모님께는 많이 매웠을 텐데, 맛이 일품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도 딸과 나도 한 그릇을 둘로 나눠먹게 양이 적은 편이라 인원수보다 줄여 주문한 건 아주 잘한 일이다. 음식낭비를 줄일 수 있게. 부모님은 아주 조금 드셨다.


큰 아이는 도착직후부터 복통이 시작되어 겨우 점심식사를 마치고선 동생네 침대로 옮겨 누웠다.  저녁식사 때까지 Sleeping beauty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잠만 다.


 그래도 옆에 있어 확인이 가능하니 서울에 혼자 남겨둔 것보다는 내 맘이 평온하다.


퇴근길에 여동생은 우리 가족이 예전에 좋아하던 밤만주와 제과점 빵들을 사들고 왔다. 저녁도 못 먹은 채.


저녁때 추가로 미리 구워둔 LA갈비를 데웠다.  늦은 시간이지만 여동생의 저녁으로.




*호텔 신라 결혼식장


너라고 다르지 않아


노후, 그리고 세상과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을 때 요양원에서 오래 근무한 친구는 말했다. 친구의 설명은 요양원과 요양병원도 구별하지 못하는 내가 한참을 해석하는데 머물게 했다.


"학벌과 재산에 상관없이

요양원에 누워있는 노인들은 다 똑같아.

전직 장관이고 교수고 교양, 품위 그딴 거 없어.

오히려 더 떼보야.


연세가 들면  모두 아기가 되는 거야.

어른이라 자식 눈엔 하나도 귀엽지 않은 아기


그래도 우리 눈엔 그 순수함이 귀여워.

우리도 곧 그렇게 돼.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재벌이라면 모르겠다만.

보통은 자식들도 오십 보 백보일걸.

인간은 내리사랑이라잖아.

물길이 어찌 거꾸로 오르겠니?


부모가 먹고 자고 싸는 아기 똥기저귀 갈며  

사람이 되게 온갖 뒷바라지 몇십 년 하셨잖아.  


갚지도 못하면서 따지지 말고 그냥 귀만 기울이면  돼.

늙는데, 너라고  다르지 않아.


난 차라리 치매환자가 나은 듯.

기억도 없고, 판단능력도 없으니

섭섭함도 자존감도 모르니까.  

어중간하게 판단력이 있으면서

몸만 못쓰면 비극이야"


요양보호 전문가로 직선적으로 단정 지어 내 입을 얼어붙게 만든 그 친구는 얼마 전 막상  요양원의 치매엄마를 월 1회  보러 가기가 싫다고 전화로 고백했다.


자식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엄마 보기가 슬퍼서. 다녀오면 며칠은 그 잔영으로 불면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