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많은 의사들은 환자의 나이에 상관없이 숫제 반말로 하다가 끝날 때쯤 대표로 경칭을 하나 써서 마무리하곤 했다. 한글을 이제 배우는 외국인도 아닌 한국인 의사는 숫제 반말에 치료는 고사하고 불쾌했다. 인턴이나 전공의에게 하는 버릇인가.
남편친구는 불쾌해서 경칭 떼고 대거리해 준다지만, 치료 목적의 환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안함과 불쾌감으로 스트레스가 추가될 뿐이다. 그렇게 처방받은 약 위에도 그 의사의 대거리가 얹혀 있어 효과가 반감될까 싶다.
그렇잖아도 딸의 암수술 후 정상생활은 고사하고 전해질 균형이 깨어져 당황스러운 터인데 스트레스를 더 할 일은 아니었다. 다시는 가지 않기로 하고 그 병원 전해질 검사와 24시간 소변 검사예약을 취소했다.
웬만한 일엔
"그럴 수도 있지"
"아마도 그 사람한테 뭔가 사정이 있었을 거야."
등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치료 목적 방문의 병원에서 1:1 마주하고 당하는 한글사용에서의 무례는 생각보다 불쾌함이 오래갔다. 이럴 땐 차라리 서툰 영어로 말하고 싶다.
2020년부터는 국내최고병원부터 바뀌는 분위기이지만, 치료와 위로가 필요한 약자인 대부분의 환자에게 국내 의사들은 늘 '갑'임을 확인시켜 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학병원의 청소원이라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나 보다.
앞을 짐작활 수 없던 큰아이의 오랜 치료 기간에 수없이 겪으며, 외래진료나 입원 중 스트레스를 뿌려서 환자와 환자보호자의 기분을 아무 때나 불쑥 바닥으로 가라앉힌 사람들도 의료진이었다.
하여 우린 늘어가는 세분화된 진료과의 예약을 위해 의료진을 선택할 때 사진으로 분위기를 먼저 확인하고, 그 병원 지인을 통해 크로스체크 후 따스한 느낌의 의사 선생님을 원했다.
그리고 이후로는 병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전국각지에서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대학병원까지 오는 환자에게 '의사 선생님의 심기까지 헤아리라 함은 과하지 않은가?'생각한다.
개인병원은 많이 친절해졌지만 여전히 위압적인 진료가 몸에 베인 의사들이 귀하지 않다. 종일 징징대는 환자만 보살피니 참 어려운 직업이지만,그렇더라도 평생직업으로 선택했을 때는환자와 환자보호자의 심리배려도 치료에 도움 되는 것을 상기시키는 재교육은 없나 싶다
대학병원 피부과 내원일에 지방 방문들이 있어서 월 1회 진찰을 한 주 미루었다. 예약시간 변경은 전화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1588~ 전화번호 상담원과의 통화가 아주 어려워서 몇 번이나 끊어졌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통화가 되어 변경에 성공했다.
'될수록 병원 예약시간은 변경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4주 1회 방문으로 정하면서 엑시머레이저 대신 부위주사로 바뀌었다. 물론 연고와 약복용은 지속되었다.
그리고 새해 첫 외래에서 아침 9시 30분에 의사는 환부를 확인했다.
어려서부터 병원내원도 약복용도 싫어한다. 병원까지 버스로는 직통이 없어 버스를 갈아타고,정류장에서 병원까지 걸으면 편도 40분이 걸린다. 승용차로는 편도 15분이면 주차장 도착이다.
희망 그리고 실망
주차하느라 빙빙 도는 시간과 수고를 염려해 옆지기는 운전대에 앉으며 '데이트 중'이라고 얘기한다. 바쁜 와중에 옆지기 운전 차를 타고 월 1회 규칙적 병원방문을 잘 지키고 있어 스스로 신통하게 생각하며 나는 의기양양해 있었다.
월 1회 주사 그리고 아침저녁 연고, 매일 처방약을 먹었고, 처방 비타민제도 성실하게 복용 중이다. 아, 처방약은 8주 후 닥터가 처방을 멈추었다. 비타민제 처방만 계속이다.
병원 가기 전 전신거울 앞에 서서 환부를 내려다보았다. 크기도 조금 줄어든 것 같고, 오리모양 중 꼬리 부분이 좀 흐려진 것 같기도 하다. 치료가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역시 병원 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불을 끄고 손전등으로 환부를 비추어보는 의사에게 희망 섞인 음성으로
"선생님, 부위가 줄어든 것 같은데 좀 나았을까요?"
"뭐가 나아요?
도대체 치료를 안 하는데 어떻게 낫겠어요?
내가 낫고 있으면 이래요?
몇 번을 같은 말을 해요?"
"???"
"하나도 차도가 없잖아요!"
왕무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닥터가 대뜸 화를 낼 일인가?
무례가 몸에 베여서 참.
몇 번을 같은 말 했다고?
언제?'
그렇잖아도 처음부터 툭툭거리는 태도였었다. 외래 의사를 바꿀까 싶을 만큼 딱딱해서 피곤했다.
그런데 백반증 전문은 이 사람뿐이라 몇 번 홈페이지를 보며 전문의 전공들을 살펴보다 미루고 있다.
목소리가 작은 나는 아주 모기소리를 냈다.
"저는 연고도 바르고, 약도 먹어서 조금 줄어든 것 같아서요."
"치료를 안 하는데 무슨 차도가 있다고.
여기 오기 어려우면 집 가까운 피부과를 찾아서 다녀요.
규칙적으로 치료를 받아야지!
나를 만난다고 무슨 치료가 돼요?
서울대병원 간다고 의사만 만나면 치료가 돼요?
학생들이 강의에 결석해도 공부 잘해요?"
아주 말벼락을 맞았다.
닥터는 아직 성에 안 차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집 앞 피부과...
돈벌이 미용하는 데 말고,
<엑시머레이저 치료>라고 써붙인 전문피부과를 찾아요.
전국 어디나 피부과가 있잖아. 지방에 출장 가도 가까운 피부과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 네"
'나보다 나이가 적은 것 같은데.., 비슷한가?'
의사가 말을 잘라먹는다고 내가 같이 잘라먹을 순 없는 성격에, 무슨 소용이라고 속으로 의사의 나이를 가늠하고 있다.
"우리 피부과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을 위해서 토요일도 접수랑 수납이 문을 열어요.
다 불 꺼져 있는데 우리만 불을 켜고,
환자를 보고, 레이저치료실도 열어요.
요샌 학생들이 더 바쁘대요.
치료는 해줘야 하고...
해서 내가 토요일에도 출근해요."
이젠 정상적인 문장으로 설명한다.
*초롱꽃(7월 10일 탄생화, 꽃말: 감사. 출처: 꽃나무애기 Band)
당장 토요일 예약하기
한글사용 시 경칭무례는 불쾌감을 초래해서 이렇게 본질에서 벗어나게 한다. 갑자기 한글을 제대로 사용 중이니 이제 항복을 해야 할 순간이다.
"네에. 그럼 토요일에 올까요?"
"토요일에 가능해요?
그럼 토요일로 예약하고, 레이저 치료를 규칙적으로 최소 주 1회는 받아요.
그래야 변화를 볼 수 있어요.
지금은 다행히 안 보이지만 얼굴로 번지면..."
내 병증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나왔다.
불친절한 언어투하 후 토요일 특별출근에 대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노의사(흰머리 탓에 내 착각일 수도)에게 내 섭섭함이 갑자기 흐려졌다.
그리고 일단 다음 주 토요일 '엑시머레이저치료'를 예약했다.
나, 애정결핍인가
"여보,
나 오늘 의사 선생님한테 완전 개박살 났어."
주차장에서 기다려주는 옆지기의 차에 오르자마자, 우리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10대의 거친 표현으로 의사의 분노를 전했다(며칠 전 중앙일보의 송호근 칼럼에서 웃으며 읽었던 표현인데, 밤새워 대본을 연습한 것처럼 입에 착 감겨 개** 표현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생전 처음 나온 표현은 마치 적진공격에 성공한 군대에서나 쓸법한 표현인데 매일 쓰던 사람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정작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남편조차 내 앞에서 사용한 적 없는 용어로 이미 나와서 주워 담을 수 없다.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