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뵙고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 몹시 고단해서 길게 눕고 싶었다. 그보다 먼저 호텔에서 1박을 하던 밤에 이미 징조가 보였다.
통증이 오면서 빈뇨와 잔뇨감이 불쾌한 수준으로 시작되어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나중엔 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르며 밤을 꼬박 새웠다. 상황에 대한 판단조차 어려웠다.
'공중화장실 사용에서 청결에 문제가 있었나?'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뜬 옆지기에게도움을 요청했다.
"아침에 근처 약국 문이 열리는 대로 약을 구해줘요."
점점 심해지던 화장실에서의 통증은 그이가 아침 9시에 약국에서 가져온 약 덕분에 느리지만 조금씩 잦아들었다.
오전 잠깐 컴퓨터 작업 후 부모님께 다시 들러 점심을 함께 하려던 계획은 조용히 취소했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대신 옆지기와 큰딸은 주변 식당에서 면류로 점심을 때우고, 나는 매스꺼움 때문에 생략했다.
일찍 공항으로 가서 3시간을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주변 숙소라도 찾고 싶게 힘들었다. 끙끙 앓으며 어지러운데의자마다 칸막이가 세워져서 잠시 누울 수도 없다.
큰아이가 내민 따뜻한 코코아차 한 모금이 도움이 된다. 공항 의무실은 서울로 돌아오고서야 생각났다.
한때 서울역대합실 의자에 길게 누운 노숙인들을 피해 서서 새마을 기차를 기다린 때가 있었다. 따뜻한 역사의 의자가일부 노숙인들의 밤 숙소가 되면서 역 이용자 안전에 대한의견이 분분했었다.
그리고 노숙인들의 쉼터로 전락한 역 대합실을 방문하는 승객들의 불편을 막고, 안전을 위해의자에 칸막이가 설치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더 많은 임시보호소가 마련되었다는 굿뉴스에 이어 규칙준수 불편을 못 견디고 다시 노숙을 선택하는 이들 소식도 들려왔다.
대책과 보안관리 덕분에 노숙인들이 가끔 누운 채 의자를 점령하던 모습들은 없어졌다.
항상 정책에는 양면성이 있나 보다.공항 대합실의 칸막이 의자로 인해 불편을 겪으면서,이곳이 긴 밤 몸을 누일 잠자리로 필요했던 이들을 떠올렸다.
서울토요일 아침에 동네 병원에 들렀다.
내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고민 끝에 비뇨기과에 같다.
검사결과 소변에 혈액이 섞여 나온다고.
의사 선생님은 균 수치가 너무 높은데 열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래서 전날 해열제를 복용했었다. 처방약을 먹는 와중에 감기와 몸살이추가되었다.남편의 성화에 딸과 함께 독감예방주사를 맞았었는데, 이제 보니 다행이다. 요즘 옆지기가 자주 고맙다.
새해 첫 주말부터 예정에 없던 휴식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부터 혓바늘이 꽃을 피웠다. 코는 마치 코주부처럼 붉게 부어올랐다.
혹시 약부작용이 나타나면 즉시 멈추고 재방문하라던 비뇨기과 의사 선생님의 주의가 떠올랐다.
'이미 페니실린과 요오드 알레르기는 보고했는데... '
다음 주 150여 명 참가 신년하례행사가 있는데 얼굴에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저녁 식사가 있으니 그대로 참여하기에는 난감하다.
약봉지를 들고 내과에 갔다. 먼저 약부작용부터 살펴보신 의사 선생님은 독감예방주사 기록을 확인하고, 내게 감기치료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들른 비뇨기과에서도 기처방약의 부작용에 대해 확인 후, 다음 주 일정에 맞춘 치료를 위해 당장 대학병원 내원을 강력 추천하셨다. 심지어 진찰료도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날 대학병원으로 갔다.
"과로가 원인으로 보이네요. 콧속까지 물집이 퍼져있어요."
갑상샘저하 증세도 보인다고 했다. 2022년부터 학위논문에 대학교재 출판이 이어졌고, 2023년 내내 동물복지 및 법규 자료를 준비하고, 1년 치 강의자료를 만드느라 무리를 했다.
3년 내내 컴퓨터가 쉬고 싶어 얼음이 되었을 때도 나는 쉬지 못하고 노트북을 열었던 시간들이 이어지곤 했었다. 컴퓨터보다 길게 일하느라 사람이 휴식을 건너뛰는 일의 무모함을 보여주나 보다.
연초부터 내과, 비뇨기과, 피부과를 다니며 복용 약이 적지 않다. 금세 열 알이 넘는다. 내 딸은 그나마 줄어서 열다섯 알을 넘나들게 먹는다. 겨우 며칠 약복용도 불편한 나는 매일 한 줌 약 먹기를 한 지 십 년으로 접어드는 큰아이가 새삼 안쓰럽다.
나는 과로를 불러온 비경제적인 투자 덕분에 '벼슬하세요!'이다. 이번에는 옆지기와 큰딸이 번갈아 병원동행 보호자를 자청했다.
그리고 진짜 환자가 되어 낮시간에 잠을 자며 휴식을 취했다. 쉬면서도 이 상황에 적응이 안 되어 마음이 편치 않다.
이때 곱고 성실한 탤런트가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 <마에스트라> 재방송 보기가 도움이 되었다. 침대에 누운 채 출연진들의 열연을 보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2024년 가족과 다시 평온하게
*라벤더 (12. 3 탄생화. 꽃말: 기대, 침묵, 사진출처: 꽃나무애기 Band)
오래 부엌을 맡아주고 차편을 제공해 주는 넉넉한 심성의 옆지기, 늘 품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친정부모님, 엄마를 신뢰하고 긍정의 힘을 주는 딸들과 사위, 앤돌핀을 샘솟게 하는 3세 손주, 부모님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고 있는 여동생 가족, 그리고 눈치 빠른 반려견 '수리'로 이어지는 가족 덕분에 무사히 2023년을 보낸다.
2024년 내 부모님이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린다. 아주 오랜만에 새해 첫 달의 2주를 치료받고 쉬면서 어리둥절하다. 가족과 다시 평안한 일상을 소망하며, 다음 주에는 늘 우리 모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여고 선배님과 평온한 일상을 열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