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없이 실실
큰누나의 치료기간이 1년이 지나면서 큰누나를 위한 심리치료가 필요했다. 누나에게 힘이 되어준 심리치료센터가 멀고, 큰누나의 상황이 의식 소실 가능성이 상존해 있어서 혼자 밖을 다니기에는 편치가 않다. 이번에는 엄마가 함께 다닐 수 있도록 차로 15분쯤 걸리는 곳의 웃음치료센터를 큰누나의 소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설득에 설득을 하여 누나와 함께 한 번만 시도하기로 했다.
"네가 힘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힘든 사람을 위해 우리가 자격증을 따서 자원봉사를 하면 어떨까?"
했다. 사실 엄마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들어본 적도 없는 제목의 심리치료요법이다. 심리치료, 언어치료, 미술치료, 음악치료, 연극치료에 이어 웃음치료... 마음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병원의 암환자를 위한 후속치료요법으로 마련되었다는 병원의 안내를 보고 '필요하니까 마련되었을 텐데... ' 생각했다. 큰누나의 수술 후 누나의 병증과 관련된 진료과가 점점 늘어나면서 진료와 잦은 검사를 위해 거의 매주 또는 주에 1~3회 병원에 가는 일도 있었다.
누나는
"병원의 웃음치료까지 넣으면 매일 병원 출근이 되겠네."
했었다.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다니 큰누나랑 엄마는 한번 시도해볼 요량이다.
얼어붙은 마음에서 어떻게 웃음을 꺼내어 치료를 하겠다는 건지... 엄마와 큰누나에게 웃음치료라는 단어는 가스를 자신의 배 속에 넣어 공중부양을 하겠다는 에디슨만큼이나 황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웃음치료 첫 시간에 자기소개에서부터 또 눈물이 출렁거려 품위 없이 멈추다 말하다를 반복하며 겨우 자기소개를 마쳤다. 누나가 아픈 이후 생긴 가슴 울렁증과 눈물 거품이다. 엄마는 큰누나와 관련된 상황이 그려지는 순간 가슴이 벌렁거리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리고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멈추지 않고 줄줄 흘러내린다.
큰누나의 자기소개 차례에 큰누나는 눈도 안 맞추고 시선을 발끝에 둔 채 건조하고 짧게 나이와 이름으로 구성된 자기소개를 했다. 웃음치료 첫 시간에는 큰누나도 엄마도 '다음 시간엔 오지 말아야지'를 품으며 수업 참여를 마쳤다.
그곳에 다니는 내내 '다음 시간에는 오지 않는 걸로'를 머리에 담고 다녔다. 첫날부터 뽕짝이라고도 불리는 예스러운 노래에 맞춰 가벼운 손동작이 추가되며, 강사는 서툰 참가자들이 실수를 할 때마다 함께 박수를 치고 깨는 웃음을 유도했다.
두 번째 시간부터 큰누나와 엄마는 첫 번째 시간보다 웃음이 실실 나오기는 했다.
다들 잘 따라서 하는데 엄마랑 누나는 외계인처럼 겉돌았다. 다행히 아주 가끔 동요가 섞여서 엄마도 큰누나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튄 폴리오의 7080 포크 송이 아니고 뽕짝으로 이어지는 노래라니...
어쨌건 Sesame Street가 익숙한 어린 시절을 보낸 큰누나는 단순한 사랑타령의 가사와 낯선 곡조를 불편해했다. 누나가 아프면서부터 노래를 닫아버린 엄마는 웃음조차도 펼쳐 보인 적이 오래된 터라 흥을 짜는 노래에 불편을 느끼는 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는 웃음치료에서 만난 사람들 중 지향점이 비슷한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생겼다. 그렇게 다시 주소록이 이따금 늘어나는 중이다. 몸을 움직여 손바닥에서 온몸 동작으로 이어지는 웃음치료 동작은 참으로 새로운 분위기이다. 구성원들 모두 둔한 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센스 100점의 강사 덕분에 틀린 동작이 돌출할 때마다 편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공감을 교환했다.
웃음치료를 만나고 3개월 후 불편해하는 큰누나를 부추겨서 심화 프로그램까지 등록했다. 그렇게 아동의 전래놀이 치료사와 노인 심리치료 관련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동안 큰누나의 컴퓨터에서는 짬짬이 동요와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아직 소리 내어 부르기는 어렵지만 자격시험 대비해서 트로트 리듬과 몸동작을 익히고자 애쓰는 큰 누나의 변화이다. 심리치료 자격증 관련 연수들은 두 사람에게는 심리치료 과정이다. 덤으로 치료사 자격증을 따는 큰누나와 엄마는 희망과 두려움 사이를 왕복하는 중이다.
어느 날 센터로 들어온 자원봉사자 구인 공고에 손을 번쩍 든 엄마는 망연한 큰누나와 함께 주 1회 6개월여를 노인대학 자원봉사에 잠시 참여하며 웃음치료를 실습했다. 그곳에서는 먼저 같은 과정을 마친 선배들이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종이접기를 잘하는 큰누나는 종이접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노인대학에서의 웃음치료프로그램은 흥겨운 트로트 음악에 맞추어 맨손 또는 500ml 플라스틱 생수병 같은 도구들을 사용한 동작을 반복한다. 소근육과 대근육을 가볍게 사용하면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간단히 흥을 북돋는 데는 제격이다. 그곳에도 여성 시니어들이 대부분이다. 은퇴한 남편과 함께 참여한 경우에는 어려운 발걸음의 남편이 겉돌지 않도록 아내들과 강사가 눈치껏 배려한다. 처음에는 겉돌고 어색해하던 점잖은 표정의 남편들이 프로그램 한 학기가 마무리되는 즈음에는 잘 적응하는 모습이다.
웃음치료프로그램은 온라인 댄스처럼 여러 근육의 움직임들을 응용하여 웃음과 함께 가벼운 운동이 되고, 그 과정을 기억하고자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반복하니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으면 액셀과 브레이크를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손과 발이 눈에 보내는 뇌신경의 신호에 맞춰서 운전을 하듯 트로트 음악에 맞춰 팔과 다리가 알아서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웃음치료는 학습효과도 있어서 뇌 운동에도 효과적이다.
엄마랑 큰누나가 웃음치료와 이어진 전래놀이치료까지 마치고, 트로트와 동요, 그리고 박자에 맞춘 동작이 몸에 붙으면서 자동차 운전처럼 저절로 나올 즈음엔 엄마와 큰누나의 컴퓨터 방에서 자주 트로트음이 흘러나오곤 한다. 아빠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컴퓨터 방문을 열어본다. 그렇게 누나의 클래식 음악 자리를 트로트 곡이 조금씩 차지하기 시작하며, 두 사람의 공부방에서 가끔 웃음소리가 문밖으로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젠 생각을 바꾸어 품위 없이 실실 웃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