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정말 아프다고 생각하세요?

보호자를 어지럽게 만든 의사

by 윤혜경
한적한 자카렌다 길과 차.jpg

*어린 누나들이 자란 동네와 비슷한 풍경 (출처: Daum)


수술 후 3년째 2017년 여름


"어머니는 환자가 정말 아프다고 생각하세요? 아픈 게 아니라 우울증이 심한 거예요."


라는 응급실 초진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누나 엄마는 '혹시 누나의 상황이 안쓰러워 내가 과보호한건가?' 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날의 응급실에 안 어울리게 고운 피부를 지닌 누나는 창백하지만 젊디 젊은 환자이다. 보통은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를 질끈 묶고 책 배낭을 메고 다니는 앳된 누나는 고등학생이거나 어린 대학생으로 오인받는 경우가 잦다.


엄마는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고

"급성 신부전 진단받던 때랑 비슷해요. 칼슘, 나트륨, 부갑상선 수치부터 빠르게 확인해주세요."


했다. 대학병원에서 오래 신장내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퇴직 후 개업한 엄마의 지인이 얼마 전에 누나의 검사결과지를 보며 보호자가 확인해야 하는 항목을 형광펜을 그어가며 꼼꼼하게 알려주었었다.


응급실 초진 의사는 환자 보호자의 아는 체하는 폼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딱 보면 우울증인데... 혈액검사 비용은 얼마 안 나오니 정 원하시면 그건 해드릴게요."


라고 했다. 그리고 막막한 비의료인인 누나 엄마는 하는 수없이 이 대학병원의 의사인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종합병원의 병실 침대를 얻으려면 의료진이나 행정실 직원을 모르면 청소 노동자라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들 한다. 물론 응급상황을 대비해 비워놓은 침대비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응급환자를 첫 대면한 응급실 의사의 이러한 오진과 더러 빈 침대가 보이는데도 20시간이 넘는 기나긴 대기가 반복되는 상황은 몸을 가누기 어려운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정말 힘들다.


혈액검사 결과가 나올 동안 누나는 링거가 달린 응급실 입구 대기실의 휠체어에 앉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응급실에서 대기 중 '사시나무 떨듯 한다'라는 말이 실감 나게 온몸을 떠는 칼슘 쇼크를 겪는 중인 누나의 당시 진단은 나트륨 수치도 위험하고, 칼슘이 평균 수치 9를 넘어 이미 14가 넘어가고 사구체여과율이 18로 고칼슘혈증으로 나왔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검사 결과를 들고 온 그 의사는 염려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어서 결과가 너무 안 좋다며 응급병동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75세 노인의 신장 상태라서 최악의 경우 투석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문제는 비어있는 병실이 없단다. 첫눈에 몸이 아픈 환자가 아니라고 단언하더니 이젠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도 환자상태가 위험해서 안된다고 했다. 지인 덕분에 그나마 서둘러 준비된 응급실 침대에 큰누나를 눕히고 누나의 과다 칼슘과 나트륨을 낮추느라 링거부터 매달았다. 오래 고달프게 휠체어에 앉은 채 부대낀 큰누나는 간호사가 칼슘 수치 확인차 자주 혈액을 채취해가는 동안 모처럼 누워서 깊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의료진은 1시간마다 누나의 혈액을 채취하고 그 결과에 맞춰 링거를 자주 바꿔달았다. 드디어 응급병동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잠을 자지 않고 도와주는 응급병동 의료팀의 수고 덕분에 큰누나는 눈에 띄게 나아지기 시작했다. 대신 주사가 꽂아진 팔이 번갈아 부어올랐다. 일단 병실에 들어왔고 의료진들의 손길이 닿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침마다 폐 엑스레이를 찍었다. 처음에 초진 의사의 주장에 잠시 귀가 얇아졌던 엄마는 아픈 누나에게 한없이 미안하다. 응급실에서 관상이나 보고 진단하는 초진 의사의 말만 믿고 그냥 돌아가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입원병동에서의 처치로 누나의 칼슘과 나트륨 수치가 아주 조금씩 낮아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엄마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무엇보다도 응급실 입원조치의 빠른 판단력을 보호자에게 넣어주신 신에게 감사기도를 했다.


큰누나는


"엄마, 나는 번번이 엄마가 살리네."


했다.


"그러니까 이상하면 미리미리 엄마한테 상태를 말해. 이게 뭐니? 자기 몸인데 둔하게!"


"나는 매일 매스껍고 울렁거리고 머리도 배도 계속 아프니까 더 아픈 건지 점점 나빠지는 건지 감이 안 와. 그냥 자고 나면 좀 가벼워질 것 같아서. 어떻게 하루 종일 날마다 아프다고 해?"


이럴 땐 누나 엄마는 간호보조 과정이라도 배우고 싶다. 너무나 몰라서 환자 보호자 역할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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