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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

by 이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를 돌보는 내 모습이 3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천사처럼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을 때, 너무 작은 아이를 어깨에 올려놓고 트림을 시킬 때, 헛구역질이 하면서도 기저귀를 치울 때가 그런 순간들이었어요. 아이를 돌보는 내 모습이 낯설어서 인지, 내가 아이와 하고 있는 행동과 감정이 마치 사진으로 보듯이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과거의 제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내가 품 안에 있는 이 아이가 나였을 시절, 나의 부모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타이머신이 있다면, 내가 처음으로 걸었을 때, 밤새 내가 자지 못해 투정 부릴 때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나의 부모님이 어떻게 나를 키워내셨을지 다시 보고 싶습니다. 내가 보고 싶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아이를 통해 추측할 뿐이죠. 이제는 부모가 된 제게 아직도 걱정과 잔소리를 하는 건, 작고 나약한 나를 돌보던 기억 때문이겠죠.


학창 시절 부모님이 참 미웠습니다. 늘 공부를 해라, 그리고 대학에 가면 어떻다, 좋은 삶은 어떻다고 말하는 것들이 모두 구식으로만 느껴졌죠. 어린 마음에 그런 사회적 편견에 갇힌 부모님이 답답했어요. 또 그 편견을 내게 강요하려는 부모님에게 거부감도 들었죠. 과거보다는 부모님을 더 많이 이해하지만, 여전히 그런 편견으로 세상을 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모님의 시대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구나 느낍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온갖 불평등과 찢어지는 가난함을 보며, 왜 그렇게 대학을 강조하고 편견들에 사로 잡혔는지 조금은 이해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이해가 쌓일수록, 나를 힘들게 하던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아쉬움을 조금씩 내려놓게 됩니다. 이제는 압니다. 지금의 나처럼 부모님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모두 각자의 시대와 사회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 나 역시 늙어가고 누군가에 이해할 수 없는 편견 가득한 사람일 거라는 사실. 내 아이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깊이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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