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처가로, 우리는 보건소로
차가운 말과 그렇지 못한 행동, 어머니의 마음
주말에는 처가에 갈 계획이었다. 차로 1시간. 먼 거리는 아니지만 1달에 1번을 가기 어렵다. 주로 이벤트가 있을 때만 방문하는데, 생일과 같은 정기적인 이벤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우리 위주의 이벤트다. 이번 방문도 그렇다. 아내는 임신 후 알레르기가 더 심해졌다.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어, 출산 후 안정기까지는 고양이를 처가로 보내기로 했다.
안타깝게 처가에는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10살이 넘은 중년의 묘는 아내인 메인 집사의 결혼 전까진 처가에 있었다. 긴 시간이었지만 장모님은 고양이와 가까워지지 못했다(혹은 않았다). 한창 에너지 넘치는 청소년 고양이는 원치 않는 선물을 준비했다. 뜯어진 벽지, 바닥에 분해된 도자기, 흰색 털 잔치 등이었다. 넘치는 선물에 장모님은 고양이를 싫어했고, 고양이는 장모님을 무서워했다.
메인 집사의 결혼과 함께 고양이도 출가하자 장모임은 기뻐하셨다. 고양이가 떠난 지 몇 달 후, '이제야 집에 고양이 털이 다 없어진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그 기쁨을 오래 유지시켜드리지 못해 죄송했다. 마침 몇 주 전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가셨다. 나였어도 새집에 털 뭉치 고양이를 타의로 들이는 일이 반갑지 않을 것 같다.
장모님은 오래는 못 봐준다는 조건과는 달리, 흔쾌한 태도로 고양이를 받아주기로 하셨다. 고양이의 안정적인 처가 안착을 위해, 묘 짐을 깨끗하게 치우고, 묘 필수품을 넉넉히 챙겼다. 슬슬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 아침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아내는 상황이 더 악화되었는다. 잠시 누워있겠다고 했다. 시간은 훌쩍 지나 오후가 되었다. 아내는 몸이 안 좋아 갈 수 없었고, 우리를 기다리며 점심을 준비하셨을 처갓집에 또 한 번의 죄송한 소식을 전했다.
다음날 장모님은 근처에 볼일 있다는 이유로, 집에 오셔서 고양이를 데리고 가셨다. 주말에도 일을 하시는 장모님이라 피곤하실 텐데... 배가 불러 저녁을 먹지 않고 가시겠다는 것을 억지로 함께 나가 함께 식사를 했다. 트렁크에 실려 가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싣고 가는 장모님 차를 보니 감사하기도 죄송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반전이 있었다. 어렵게 고양이를 보냈지만, 웬걸 여전히 아내의 알레르기는 계속되고 있다. 아마... 아직 고양이 털이 남아 있어서겠지? 매일 콧물과 재채기를 달고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이제는 의자 알레르기, 책상 알레르기 등 온갖 알레르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남편 놈의 잠귀가 참으로 어둡다.
어렸을 때 새벽에 혼자 아팠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 기억을 대부분 나이와 바꿔 먹었지만, 어린 시절 밤새 홀로 아팠던 괴로웠던 시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몸도 아픈데 온전히 세상에 홀로 있는 기분이었다. 고열과 찾아온 고통에 지쳐 잠이 들면, 온갖 악몽에 잠에서 깨리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가 긴 적이 없었다. 곤히 자는 가족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까, 이제 내가 그 곤히 자는 가족이 되었다.
요즘 아내는 자주 배가 아프다. 콕콕 찌르는 고통이 있는데, 새벽에도 이 고통이 찾아온다고 한다. 평소에는 내가 옆에서 온열 찜질과 마사지를 해준다. 문제는 새벽이다. 새벽이면 나는 현실 세계를 떠난다. 아무리 부산스럽고 아내가 아파해도 전혀 미동도 없었다고 한다. 억지로 깨워서 말을 걸어도 배터리 없는 기계처럼 한 마디를 하고 다시 잠에 들어버린다. 그 와중에 코를 골아 아내가 잠에 드는 게 쉽지 않았다. 아파서 새벽에 잠에 깨서 뒤척이는데 홀로 편히 자는 남편이 얼마나 얄미워 보였을까?
아침이면 "어제 기억나? 이런 말 했잖아."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나를 되찾는 일이 늘 반복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트리스 하나 사서 밖에서 홀로 코 골며 자는 것뿐이었다. 유튜브를 보니 새벽에 아이가 뒤척이면 남편은 반응이 늦고 아내들만 반응이 빠른 걸 보며... 오지 않은 미래지만 왠지 찔렸다.
보건소에 갔다. 코로나를 만났다.
임신을 검색하면 유용한 정보들이 많다. 혜택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레 국가 지원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보건소에 방문하면 꽤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또 사는 지역에 따라 혜택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저출산으로 점점 더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들어 기대가 컸다. 보건소에 가기 전에 먼저 병원에서 받은 임신 확인증이 필요하다.
난황이를 만나고 난 후, 아내와 보건소에 갔다. 내심 낮아진 임신율을 높이는데 기여를 한 게 아닌가 자신 만만하게 승전보를 전하는 마음으로 보건소에 들어갔건만 보건소는 정말 조~오~용 했다. 앞에는 코로나 검사소가 있었고, 온도 체크 후 들어간 보건소에는 관계자 외에 방문자가 없었다.
임신 등록을 하고, 몇 달치 약을 한 봉지 받았다. 임신 지원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시행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무료 검사 항목도 줄었고, 임신 관련 프로그램도 진행하지 않았다. 빠르게 보건소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담당자분들은 전문적이고 친절했지만, 보건소 경험은 뭔가 아쉬웠다. 내심 임신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축제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보건소에서 임신을 축하한다는 말고 간단한 이벤트를 해주면, 갓 시작하는 엄마 아빠에게 큰 응원이 되지 않을까.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코로나가 과거의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