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주인공 오애순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계장에 대통령도 몇 번을 하며, 하고 싶은 거 전부 다 해 먹겠다는 포부를 당차게 밝힙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꿈을 응원해 줍니다. 하지만 당찬 포부는 방파제에 부딪혀 흩어지는 파도처럼 사회의 벽에 부딪혀 흩어집니다. 여성이기에, 돈이 없기에, 집안이 힘이 없기에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없었고, 원치 않는 상대와 결혼을 해야 할 상황에도 처했습니다.
오애순의 시대에 비해, 지금의 우린 많은 자유권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심각한 양극화로 여전히 불공정하고, 사회적 벽들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사회적 보장제도가 많아졌고, 직업의 자유도 늘어났습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이 없어도 매체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 석학의 강의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어떤 인류보다 많은 자유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습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고객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을 주지 말라고 합니다. 실제로 6개의 잼을 선택할 수 있는 그룹에 비해 24개의 잼을 제공받은 그룹은 구매하는 비율이 1/10으로 떨어졌습니다. 너무 많은 선택권은 고객에게 선택의 부담을 주어, 선택의 회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자유권을 누리는 우리 역시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직업이, 사는 곳이 맞는 선택인제 계속되는 고민에 빠집니다. 사회적 제약은 약해졌지만, SNS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비교하며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합니다. 그것이 정말 내 삶에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필요할지 몰라 많은 선택권을 갖는 것보다, 내게 필요한 것을 추리는 선택입니다. 그 선택은 가족도 선생님도 해줄 수 없습니다. 어느 때보다 기술의 발전과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조언이 나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모두의 상황이 더욱 다양해지고, 가능성이 복잡해지기 때문이죠. 선택권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결정이 중요해집니다. 즉,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