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다 = 내게 옳은 것을 움켜쥐는 것

'내가 내 기준을 굉장히 고집하는구나'

by 이완
"참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옳다는 것을 움켜쥐고 있다는 겁니다."
- 법륜스님


몇 번은 참았지만 결국 폭발했다. 폭발 후 창피함과 씁쓸함만 남는다.


친구들과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데, 신경에 거슬리는 포인트가 있었다. 몇 번을 참다 버럭 화를 냈다. 지금은 어떤 포인트였는지 화를 내고 난 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한 친구가 차분하게 '네가 그런 걸로 이렇게 화낼 사람으로 보지 않았는데, 놀랐다'라 말한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던 느낌뿐이다. 친구의 '놀랐다'는 실망이다는 말로 들렸고, 화를 낸 사실이 너무 창피했다. 사실 아주 계획적으로 화를 내겠다 준비했다. 다시 한번 그 포인트를 건드리면 내가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친구의 말에 화를 낸 나 자신이 그렇게 창피할 수 없었다.



참기로는 끝까지 참을 수 없었다. 결국은 나 자신을 바꿔야 했다.


결혼 후 같이 생활을 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갈등이 생겼다. 우린 정리로 많이 싸웠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내가 정리에 민감하다는 걸 알았다. 아내가 내 기준에 맞게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도록 설득해 보려 했지만, 말을 꺼낼 때마다 싸움이 반복되었다. '참기'로 전략을 바꿨다.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를 보더라도 참았다. 스트레스가 났지만 차라리 내가 정리를 하려 했다. 내가 참으면 모든 것은 평화로웠다. 참다 보면 아내도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기분 좋게 일어났는데, 정리되지 않은 집안을 보자 감정이 폭발했다. 또 크게 싸웠다. 몇 번을 그런 폭발이 반복되자 서로 너무 지쳤다. 그 사람을 이루는 작은 행동일 뿐인데, 억지로 눌러 참다 보니 사람 자체도 미웠다.


악순환을 끊는 건, 내 감정을 사람이나 상황에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다짐에서 시작됐다.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나 역시 그동안 살아오며 형성된 생활 패턴을 바꾸기 어렵듯이, 아내도 똑같다는 점을 인정했다. 내 감정에 책임을 지기 시작하자, 내 기준도 변했다. 예전만큼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 사람을 있는 대로 인정하려는 것도 조금 더 수월해졌다. 우리 관계는 자연스레 더 깊어졌다.



참기는 교묘하게 상대방을 평가하고, 나를 우월하게 만든다.


돌아보면 '내가 참아야지'는

'저 사람은 어차피 저거밖에 되지 않으니, 이해해줄 수 있는 내가 그냥 이해하자.'였다.

정말 오만하다. 세상을 내 기준으로 판단했고, 참아야 할 이유를 내가 아닌 외부에서 찾았다. 내 기준이 옳은지, 저 사람은 왜 저런 기준이 있을지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옳고,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 생각했다. 내가 옳은데도 참아야 한다 생각했으니, 그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다. 나를 참게 만드는 사람을 옳게 바꾸고 싶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참는 이유는 내 기준 때문이었다.



법륜 스님은 '참기'를 이렇게 말한다.


법륜 스님의 책 '야단법석'에 참기와 관련된 좋은 문구가 있어 소개한다.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같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인식을 떠나버리면 존재는 다만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사물을 인식할 때에는 같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같다, 다르다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인식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동시에 상대적입니다.
같은 것을 너덧 가지 발견하면 굉장히 기쁘고 금방 친하게 됩니다.
계속 다른 점이 발견되니깐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 서로 다른 점이 있죠. 그 다른 것을 '그렇구나' 하고 바라보세요. 그냥 '그렇군' 하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그 자체는 그 사람의 삶입니다. 수행의 과제로 받아들여 보세요. 참으면 안 됩니다.
참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옳다는 것을 움켜쥐고 있다는 겁니다. 서로 다를 뿐이기 때문에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용서해줄 것도 없습니다.

'내가 내 기준을 굉장히 고집하는구나',
'지금 내가 나를 움켜쥐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됩니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하려고 하고 싫은 것은 안 하려고 하는데, 현실의 삶은 좋다고 다 할 수도 없고, 싫다고 안 할 수도 없습니다. 좋다 싫다 하는 그 자체가 자기 삶의 습관에서 오는 것이므로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법륜 스님은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절대적이라 믿는 인식이 얼마나 상대적인지. 상대적인 인식으로 같은 사람도 친구가 될 수도 적이 될 수도 있다. 즉 참는다는 건 내 인식 속의 사람을 창조하고 스스로 참는 행위다.

많은 문장이 참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참기가 사실은 내가 나를 움켜쥐는 행위라는 문장은 특별했다. 생활 속에서 참기를 선택하려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내 기준을 굉장히 고집하는구나
지금 내가 나를 움켜쥐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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