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앙, 내 인생의 악역을 응징하지 않는 일?

나의 해방일지의 결말은 영 슴슴했다.

by 이완

나를 위해 고통스러운 역할을 기꺼이 떠맡을 만큼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

'나의 해방일지', 오래간만에 매주 새로운 ep를 기다리는 드라마였다. 슴슴한 평양냉면 같은 맛이랄까. 보면서도 왜 이 드라마를 좋아하지 의문이었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매 편마다 악역들이 쌓아 올린 답답함의 탑이 언제 얼마나 시원하게 터질지 기대했다. 그 답들이 시원하게 무너지지 못한 엔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특히, 미정이에게 계속 부적절한 대우를 해온 빌런들이 어떤 응징(?)도 없이 드라마가 종료되는 게 답답했다. 구 씨가 시원하게 한방 먹여주거나, 빌런들의 커리어가 꼬이기를 기대했다. 또 돈을 갚지 않고 결혼식을 올리는 전 남자 친구에게 선의를 베풀고, 확실치 않은 약속을 받고 끝나는 장면도 영 슴슴했다. 끝까지 슴슴했던 드라마가 너무 아쉬웠다. 너무 현실 같아서였을까?


영화 기생충처럼 이곳저곳에 복선과 메타포를 잘 짜 놓은 드라마라, 왜 이런 식으로 결말을 내린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길래, 이렇게 찝찝한 느낌으로 그냥 끝나버리는 건가? 드라마가 뭘 전하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메시지는 2가지 같다.


'누군가를 추앙, 기대 없이 사랑하는 것'

'나를 추앙, 악역을 응징하지 않는 것'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문득 창피했다. 오랫동안 내면 공부를 하고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선고 악이 있고 스토리를 원했다. 늘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보며 유치하다 말했으면서, 어떤 식으로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는지 보는걸 즐거워했던 모양이다. 좋고 나쁨 그리고 그걸 판단할 기준도 없다는 걸 안다고 생각했는데.. 창피했다.


책, 현존 수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랑에 관한 자신의 무의식적인 정의를 통합해갈 때, 당신은 그들의 참된 모습을 인식하게 된다.

그들의 참된 모습이란,
그들이 통합되지 못한 당신의 감정적 누적물을 되비춰주는 고통스러운 역할을 기꺼이 떠맡을 만큼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덕분에 당신은 당신의 통합되지 못한 감정적 누적물을 발견하고 무조건적으로 '느끼고'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자신을 위한 악역 한 두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악역을 용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왜 내게 악역이 필요한지,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책, 현존 수업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 모든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을 진정한 사랑이라 설정하면, 악역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우린 '부정적 감정'이라 이름 붙이고, 그런 감정들을 애써 무시해 덮어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숨겼다고 해도, 그 감정은 여전히 내 감정이다.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라나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아이처럼, 감정도 사고를 친다. 어떤 사람과 상황을 통해 내가 그 감정을 다시 받아들일 맥락을 만들어 낸다.


그때 필요한 게 악역이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가 악역을 자처한다. 그런 사람, 상황이 아니라면 그 감정을 다시 만날 수 없기에, 고마운 사람이다.


드라마에서 미정이는 구 씨에게 자신을 찾아오는 부정적인 사람들을 '환대해주라' 조언한다. 감정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매번 우리에게 찾아오는 불편한 감정들이 있을 거다. 아무리 소리를 치고 화를 내고 무시해도 그들은 다시 온다.


매번 찾아오는 불편한 감정들과 아름다운 이별(혹은 통합)을 하고 싶다면, 먼저 '환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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