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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08. 2024

하고 싶은 일을 나누는 습관. 육아일기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빠가 육아 일기를 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그중 한 사람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3줄 쓰는 거 아니야?"

나는 웃으며 맞다고 답했다. 사실이다.


내가 쓰고 있는 육아 일기장이다. 5년 일기장으로, 한 장에 5년간 같은 날짜에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일기장 앞에는 자수로 꽃이 장식되어 있다. 내 취향보다는 유난히 이쁜데 사연이 있다. 혼자 쓰는 것보단 아내와 함께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내를 열심히 꼬셨다.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이쁜 일기장을 함께 샀다. 3년 일기장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 일기장은 5년 버전만 있었다. 사진처럼 일기장은 한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라 많은 내용을 쓸 수 없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4줄에 아이와 있었던 일을 남긴다. 아이가 태어난 2022년부터 일기장을 썼다. 벌써 3년 치의 하루가 쌓였다.


막연한 좋은 아빠가 될 구체적 방법, 육아일기.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들이 말하는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영상을 보면 아빠들이 많이 울던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기대와 다른 건 그뿐이 아니었다. 출산 후 아내와 아이 모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아이의 특별함 보다 불안함을 더 빨리 느낀 것 같다. 좁은 6인실에서 돌아온 가족들을 살피며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나를 너무 닮은 이 작은 생명체가 신기하고 낯설고 아프지는 않을지, 잘 키울 수 있을까 두려웠다. 막상 아이를 만나니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서도 육아일기를 쓸 생각은 없었다. 빅토리 노트를 읽고 육아일기가 내가 좋은 아빠가 될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빅토리 노트는 김하나 작가 어머니가 쓴 5년 육아 일기다. 엄마의 사랑이 담긴 5년의 기록은 김하나 작가의 안전지대였다. 내가 기억 못 하는 순간에도 내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았다는 온갖 증거가 가득한 글들이 김하나 작가에게는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 내 아이에게도 그런 단단함을 주고 싶었다. 너는 존재만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그래왔다는 사실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주고 싶었다.


육아일기를 산 건 아이가 100일 가령되었을 때다. 이미 지나간 100일간의 기록은 그 당시 매일매일 영상을 찍어 올린 유튜브 영상 덕에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쓸 수 있었다. 하나의 습관은 또 다른 습관을 돕는다.


육아 일기를 쓰는 건 쉽지 않았다. 이걸 아이에게 말하듯 써야 하나, 관찰하듯 써야 하나.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뭘 써야 하지? 아빠의 악필을 아이가 보고 좋아할까? 어제랑 오늘 너무 다른 것이 없는데. 겨우 이런 이야기를 쓴다고 일기를 쓰는 게 맞을까?

한 번씩 빅토리 노트를 찾아보면, 내 육아일기는 더욱더 보잘것이 없었다. 그 짧은 4줄도 막상 정신없는 아침에 쓰려고 앉으면 잘 생각도 나지 않고 줄들이 길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지속했다. 100일, 1000일.  시간이 쌓이자 새로운 즐거움을 만났다. 어느덧 3년의 기록이 쌓인 지금 작년의 나와 아이, 재작년의 우리 가족을 만난다. 그때 당연하고 평범하던 하루가 오늘의 나는 신기하다. 아이의 성장이 보이고, 글을 쓰는 나의 변화를 느낀다. 여전한 악필 속에 묻어있는 나도 보인다.


습관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아닐까?

단지 목표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자 하는 좋은 아빠의 모습을 퍼즐처럼 하나하나 맞춰가며 그 과정을 즐기겠다는 라이프스타일.

습관을 만드는 것이 습관이 되면 삶의 과정을 느끼고 즐기는 특별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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