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1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IMF의 광풍이 몰아치던 99년, 난 공고를 갓 졸업한 취직도 실패한 한 명의 패배자였다. 나를 포함한 무직자에다가 대학을 가지도 못 했던 찌질이들에게 몰아쳤던 광풍이 있었다. 그것은 ‘다단계 선풍’이었다. 어디서부터 누군가를 통해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다단계’는 뿌리치지 못할 유혹으로 다가왔다.
아무런 자본금도 없이 쉽게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에 현혹돼 하나, 둘 그 세계로 발을 들여 놓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나 역시 그런 흐름이랄까? 물결이랄까? 그런 것들이 존재하며 내 주위를 소용돌이치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느끼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기에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재수를 하던 5월의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병원비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지만 공고를 졸업하고 서로 무직이며 대학도 가지 못한 한심한 인생들이었기에 친하건 친하지 않건 누군가가 겪는 고통은 같은 공고생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는 그 마음으로 우리는 결속돼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서로 연락을 했고, 편의점에서 밤을 새며 알바 했던 돈, 공사장에서 욕을 먹어가며 벌은 돈 등, 서로가 발악을 하며 모은 돈을 아까워하지도 않고 그 친구에게 전달을 했다. 근 3백여만원의 돈을 모아 그 친구에게 전달한 후 그래도 우리는 정말 인간적이라며 찌질이들은 찌질이가 지켜야 한다며 서로를 자축했었다.
그 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친구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받은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울면서 전화를 한 여동생은 오빠는 다단계에 너무 심하게 빠져 집에 있는 돈도 훔쳐 갔고, 집에는 들어 오지는 않은 채 다단계 시설에서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머님에 대하여 물어보니 아프기는커녕, 그 친구가 빚진 돈을 갚기 위해 식당을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발 오빠를 그곳에 빼달라는 요청에 주소를 받아서 서울에 있는 다단계 회사로 갔다.
그곳에서 발견한 그 녀석을 멱살을 잡고 분노를 터트리며 때리고 욕을 했다. 그렇게 우리를 속이다니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미친 사람처럼 광분을 해 버렸다.
나에게 맞으면서도 그 친구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 따위 연약한 소리나 하니까 맨날 바닥에서 거지 새끼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돈은 내가 다 배로 갚아 준다며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란에 나온 다단계 직원들에게 둘러 쌓여 얻어 터진 후 회사 밖으로 쫓겨난 나는 그 서울의 대로변에서 옷은 찢어지고 입술에는 피를 흘린 채 어쩔 수 없이 타박 타박 역으로 걸어 갈 수 밖에 없었다. 내 상황과는 반대로 길 건너편, 그리고 정면에 지나가는 수 많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정스러워 보이는 커플, 바쁘듯이 걸어가는 사람들. 마치 ‘언더그라운드’에 적힌 옴진리교의 피해자 증언에 나오듯이 그렇게 토를 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해도 그 건너편에서는 다른 세상을 사는 듯이 자신의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난 그 속에서 ‘이쪽’과 ‘저쪽’의 세계의 단절, 뭔가 공간이 뒤틀려버린 그런 기분을 느꼈었다.